싱가포르가 담긴 국수 한 그릇
  •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 호수 562
  • 승인 2018.06.2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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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당이 없는 외국 여행에서 중국요리(중식)는 가장 중요한 대체재다. 일본 요리도 입에 맞기는 하지만 어느 나라를 가든 가격이 비싸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 보니 중식은 인도 음식이 영 맞지 않거나 유럽에서 좀 싸게 밥을 먹고 싶을 때 혹은 기름진 필리핀 음식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때 가장 선호하는 ‘구원투수’가 되었다.

여기저기 떠돌며 중식을 먹다 보면 알게 된다. 같은 볶음밥이라도 기본 소스나 식재료가 제각각이다. 전 세계 수많은 중식 가운데 한국 중식이 독특한 이유는 매운맛을 좋아하는 특유의 입맛도 있겠으나, 드물게 산둥 지역 출신 화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세계 화교 가운데 산둥 출신은 극히 미미하다. 산둥 사람들이 해외 진출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명윤 제공‘코코넛 커리 어묵 쌀국수’라 할 수 있는 ‘락사’.

내가 아는 어느 중국인 미식 블로거는 “한국의 중식은 마치 ‘중식의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됐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 한국이 이런 특이점을 제대로 마케팅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흔히 화교라고 하면 그저 해외에 퍼진 중국 혈통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대다수는 중국 남부 푸젠성, 그리고 광둥성 사람들이다. 아시아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간 중식도 이 지역 화교들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다. 이들 광둥과 푸젠 출신 화교들은 말레이시아인과 인도인을 만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중식을 만들어냈다. 북한과 미국 간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가 바로 그런 곳이다.

싱가포르는 국민 74.3%가 화교인 국가다. 그런데 정작 국명인 싱가포르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 ‘사자의 도시’라는 뜻이다. 여기에 인도계도 전체 인구의 9.1%를 차지한다. 현대 싱가포르의 역사는 1819년 동인도회사의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가 이 지역에 교역소를 건설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사이 싱가포르에는 화교, 말레이시아인, 인도인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각자 가져온 요리의 유산이 싱가포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 요리마다 두 개 이상의 음식 문화가 확연히 섞여 있다.

‘코코넛 커리 어묵 쌀국수’라고 부를 수 있는 락사는 싱가포르 사람들의 ‘솔 푸드’다. 쌀국수와 어묵 등 주요 재료는 중국에서 왔고, 말레이시아는 코코넛 베이스 국물을 가져왔다. 인도인들이 커리 향을 더했다. 만약 요리 하나로 그 나라의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락사는 아주 절묘한 싱가포르 요리다.

짜장면이나 짬뽕 역시 한식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중국 요리로 분류할 만한 대중적인 싱가포르 요리로는 ‘바쿠테’를 꼽을 수 있다. 한자로는 ‘肉骨茶(육골차)’라고 쓰는데, 바쿠테는 육골차의 민난어(푸젠성과 타이완에서 쓰이는 중국어 방언) 발음이다. 요리 자체는 중국의 약선 요리에 등장하는 보양탕에 가깝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고급 요리로 취급하는 것과 달리 싱가포르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대중 요리로 발달했다. 일본의 라멘처럼 화교의 손을 거치며 싱가포르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새롭게 탄생한 요리라 보면 된다.

이렇듯 중식이 널리 퍼진 이유는 세계 어디에나 있는 화교의 저력도 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요리의 ‘변화무쌍함’에 있다. 그들은 굳이 중국 본토 음식의 원형에 집착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는 배추와 무를 구하기 힘든 곳이 수두룩하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채소로 김치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김치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그만하자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짜장면이나 짬뽕 역시 한식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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