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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라이따이한 친부인지 대리소송을 맡았던 박오순 변호사(사진)는 “라이따이한은 베트남 파병 당시 국가에 소속된 군인 때문에 시작된 문제였으나, 라이베리아의 한국계 사생아 경우는 아동별 사안이 개별적이라 접근하기 쉽지 않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계 사생아 문제는 1960년대 베트남 파병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 이후 한국 어업기지 확장에 따라, 한국 배가 닿는 항구마다 문제가 어김없이 발생했다. 건설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중반 대우건설이 아프리카 진출의 문을 열자 ‘한몫 단단히 잡아보겠다’고 들어간 한국계가 점점 늘어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케냐·가나 등을 거쳐 라이베리아까지 한국계 상점이 들어선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시아 인근 국가에서 시작된 한국계 사생아 문제가 기업과 개인 사업자의 해외 진출 바람을 타고 아프리카까지 건너간 셈이다. 

라이베리아 지역을 관할하는 코트디부아르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통계는커녕 한국계 사생아 문제에 관한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접경국인 가나의 경우 수도 테마를 근거지로 한국계 선원이 모이면서 현재 80명 이상의 한국계 사생아가 있다고 추정되지만, 전체 아프리카 내에 얼마나 많은 한국계 사생아가 방치돼 있는지 알 수 없다.

박 변호사는 “라이따이한의 경우 같은 아시아권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은 후에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의 경우는 국적을 부여받는다 해도 한국에 적응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양육비 청구소송만이 의미가 있는데, 이마저도 여건이 돼야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베트남 라이따이한의 선례에서 배울 수는 있다. 한국계 사생아에게 필요한 것은 생부에 대한 사회적 처벌보다 피부에 와 닿는 도움이다. 베트남 라이따이한을 돕기 위해 1995년 7월에 만들어진 ‘베트남 한인 2세와 함께 가는 모임(코베트)’이 그  사례다. 이들은 현지에 병원을 지어 운영하면서, 결혼을 주선하거나 직업교육을 맡아 한다. 박오순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에 버려진 사생아 문제를 개인 문제라고 단정짓는데,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공동체적인 ‘책임의식’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기자명 라이베리아·강은나래 (자유 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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