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해양수산과학계의 황구라’라고 불리는 황선도 박사는 군산에 위치한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서해지사에서 생태복원실장을 맡고 있다.
“뭐 나 같은 사람을 만나러 언론사에서 와요?”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어찌어찌 약속을 잡았는데, 이튿날 아침 갑자기 “오늘 내려올 수 있느냐”라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얼마 전 기자가 통영의 난개발에 관해 쓴 기사(〈시사IN〉 제501호 ‘어선 없는 항구가 관광 미항이라고?’)를 읽었다고 했다. “군산은 통영보다 더합니다. 위인전 쓸 것도 아닌데, 내 이야기 말고 바다 이야기 합시다.” 곧바로 군산행 버스에 올랐다.

황선도. 그는 해양수산 과학자다. 군산에 있는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서해지사에서 생태복원실장을 맡고 있다. 2013년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부키)라는 책을 펴내며 이름을 알렸다. 바다 생물에 관한 전문지식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어 잔잔한 파도를 일으켰다. 입담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이 그를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부를 정도다. ‘해양수산과학계의 황구라’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최근에는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서해문집)를 4년 만에 펴냈다. 멍게, 개불, 소라, 홍합, 삼치 등 우리 식탁에서 ‘쓰키다시’ 취급을 받는 ‘비주류’ 바다 생물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를 만나 책 속 이야기나 실컷 나눌까 싶었다. 요즘 이자카야(선술집)에서 귀하신 몸 대접을 받는 성게가 왜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지, 짝퉁 다금바리 논란의 진실은 뭔지, 하찮아 보이는 멍게가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고등 생물인 까닭 따위를 두고 ‘황구라’의 수다에 푹 젖어볼 요량이었다.

황선도 박사는 “그런 이야기는 책을 보면 다 나온다”라며 취재진의 팔을 잡고 군산항으로 향했다. “봐요, 이게 다 토사예요. 금강 하굿둑이 생긴 이래 토사가 밀려와 쌓이면서 항구가 이렇게 변한 거예요.” 그랬다. 포구 앞에는 거무튀튀한 토사가 쌓여 있었다. 마치 죽처럼 질척거린다고 해서 바닷가 사람들은 ‘죽펄’이라 부른다. 어쩌면 ‘죽어 있는 개펄’일 수도 있었다. 밀려오는 토사를 퍼 나르기 위해 항구에는 심지어 준설선이 정박해 있었다. 썰물 때면 토사에 배가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해산물 파시와 선술집으로 여느 포구 못지않게 들썩거렸던 군산항은 이제 을씨년스럽게 변했다. 군산이 근대문화유산 여행지로 각광받으면서 주말이면 웬만한 식당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여행자가 붐비지만, 정작 항구로서 군산은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이제 대다수 고깃배는 멀리 떨어진 군산외항으로 거처를 옮겼다.

충남 서천군과 전북 군산시를 잇는 금강 하굿둑이 들어선 건 1990년이다. 바다로 흘러가는 담수를 막아 농업용수를 공급한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농업 상황이 변한 지금도 유효한지, 또 다른 대안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황선도 박사는 지적한다.

“물고기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그 뒤로 27년 동안 하굿둑은 강과 바다를 갈라놓았다. 강과 바다가 섞이면서 그 어느 곳보다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기수역’은 사실상 사라졌다. 황 박사는 “물고기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라고 말한다. 물고기, 그 가운데에서도 몸값이 비싼 장어의 눈으로 본 세상은 어떨까.


나는 뱀장어다. 내 고향은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내 조상이 살았던 한국, 일본, 타이완으로 가기 위해 해류를 타고 수천㎞를 헤엄친다.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한국 쪽으로 방향을 잡은 나는 대개 2월에서 5월 사이 금강 하굿둑에 도착한다. 먼 거리를 여행했지만, 여전히 내 몸집은 바늘 크기만 하다. 한국 어민들은 이런 나를 실뱀장어라 불렀다. 인공부화가 안 되는 까닭에 내 몸값은 꽤 비쌌다. 나를 잡아 양식장에서 키운 것이 사람들이 즐겨 먹는 ‘민물장어’다. 운 좋게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은 나는 육지로 흘러들어가 한국의 강을 유영한다. 그렇게 낚시에 걸리지 않고 6년쯤 산 뒤 알을 낳기 위해 마리아나 해구로 먼 여행을 떠난다.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 다시 강에서 최후를 맞는 연어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길을 잃었다. 금강에 거대한 하굿둑이 생겨버렸다. 홍수 때 배수갑문이 열린 틈을 타 강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한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가지 못한다. 인근에 산업단지와 화력발전소가 생기면서 서식지도 망가졌다. 그 뒤로 나와 내 친구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바늘 크기만 한 내가 한 마리 값이 7000원이고, 1㎏에 4000만원까지 한다니 웃어야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사람들은 나만 보면 눈에 불을 켠다. 나는 예전의 나 그대로인데, 세상이 바뀌고 갈 곳을 잃었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가려던 꿈이 스러져간다.

ⓒ연합뉴스금강 하구에 설치된 실뱀장어 잡이 그물망.
황선도 박사는 지난 20여 년간 ‘민물장어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달렸다. 뱀장어 산란장을 취재하기 위해 마리아나 해구 탐사선에 올랐고,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연어 중심으로 설계한 표준어도(물고기가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수로)를 실뱀장어같이 작은 물고기가 다닐 수 있는 ‘한국형 어도’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하천에 만드는 콘크리트 호안이 물고기의 생명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알렸고, ‘바다 식목일’ 행사를 통해 물고기 서식지에 해초가 풍성해지도록 했다. 물론 이것은 모든 물고기를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 바다가 황폐화된 역사는 우리 산업이 발전한 역사와 정비례한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인천, 당진, 목포, 여수, 울산, 포항 등 바닷가에 ‘임해공업단지’를 만든 것이 시초였다. 산업 발전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군 대신 바다는 50년 넘게 몸살을 앓았다. 망가지는 바다를 두고 환경 보존과 개발 논리가 대립했지만, 번번이 자연이 양보해야 했다. 4대강 사업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길고 긴 갈등의 역사다. 황 박사의 말마따나 저 하굿둑이야말로 4대강 사업보다 더 오래된 환경 파괴의 상징이다.

어민들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과거 돈 되는 물고기는 치어든 뭐든 가리지 않고 싹쓸이하는 어민도 적지 않았다. 동해안 명태가 씨가 마르자 정부에서 노가리(명태 새끼)잡이를 금지했더니, 어민들이 노가리가 명태 새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쌍끌이 어선으로 어장을 초토화한 건 중국 어선 이전에 우리 어선이었다.

지금도 일부 대형 어선 소유자들은 무슨 무슨 협회를 만들어 지역에서 힘깨나 쓰고 다닌다. 황 박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수부 장관을 할 적에 고대구리(소형 저인망 싹쓸이) 조업을 금지했다. 그거 정말 잘한 거다. 맞아죽을 각오하고 말하는데, 일부 어민들도 각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 바다에는 희망이 없는 걸까. 아니다. 황 박사에 따르면 서식지 파괴와 남획으로 우리 어장이 가장 망가졌던 때는 2000년 전후다. 그전에 이미 징후가 나타났지만,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다. 해양수산업 관계자가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정부가 일부 어선을 사들여 남획을 막고, 인공어초 등을 설치해 서식지 회복에 힘썼다. 망가진 시간만큼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 아주 서서히 그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게 황 박사의 생각이다. 황 박사는 “해양은 수산의 토대이고, 수산은 해양의 결과다”라고 강조한다.

이튿날 수산자원관리공단 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개인 컴퓨터 속 파일 몇 가지를 보여줬다. 그런데 진정 ‘황구라’다운 풍모가 거기 숨어 있었다. 말하자면 ‘바다 도시 살리기 프로젝트’인데, 그 내용이 기발했다. 가령 사진 촬영지로 각광받는 군산의 철길을 되살려 바다 건너 서천군 장항읍까지 왕복하는 ‘바다 트램’을 설치하자는 제안이다. 낮에 군산에서 놀다가 장항읍에서 식사하고 저녁놀을 보며 되돌아오는, 썩 낭만적인 코스였다. 물론 이는 군산시와 서천군, 더 넓게는 전라북도와 충청남도가 지자체의 벽을 넘어야 가능한 프로젝트다.

4대강 살릴 ‘물길자유구역위원회’ 어때요?

군산 시민이 즐겨 찾는 월명산에서 문화 예술가들이 주최하는 캠핑 페스티벌을 열자는 제안도 있었다. 페스티벌 기간 여행객들에게 쿠폰을 발급해 지역 식당 등에서 쓸 수 있도록 하면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금강 하구를 사랑하게 된 뒤에야 하굿둑 문제를 어찌할지 여론을 모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참신하고 치밀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그는 ‘물길 자유구역’이라는 꽤 창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굿둑과 4대강 사업으로 망가진 강과 바다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범정부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가칭 물길자유구역위원회를 대통령 또는 총리 직속으로 만들어 부처와 지자체를 뛰어넘는 ‘자연 복원’ 사업을 추진하자는 대형 의제였다.

“물고기 박사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할 겁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자꾸 이런 생각이 떠올라요. 물고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인간 세상에 대해 말해야겠다고나 할까. 이렇게 떠들다 유비 같은 사람을 만나면 쓰임을 당할 테고, 아니면 계속 물고기 박사 하는 거죠 뭐(웃음).”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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