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20일은 미국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의 20주기이다. 그 일환으로 많은 책이 번역돼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지구의 속삭임〉은 특별하다. 외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지적 생명체에게 메시지를 보낸 역사적 사건에 대해 기록했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과 과학자 5명은 근 40년 전인 1977년 지구의 각종 정보를 LP 레코드에 담아서 무인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에 부착해 우주로 보냈다. 이 책은 그 레코드의 제작 과정과 내용을 담고 있다.

‘보이저 골든 레코드’라고 불리는 이 음반에는 음악 27곡,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 지구와 생명의 진화를 표현한 소리 19가지, 지구환경과 인류 문명을 보여주는 사진 118장이 담겨 있다. 놀라운 사실은 레코드에 사진까지 담았다는 점인데, 주파수를 변조해서 영상을 물리적인 홈으로 깎아넣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 심지어 사진 118장 중 20장이 컬러였다는 점은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떠올리기 어려운 발상이다.

음반 내용도 흥미롭지만 책에서 더 인상적인 부분은 적은 예산과 짧은 기간에 어떻게든 우주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이다. 수억 달러가 투입된 거대한 보이저 프로젝트에서 이 레코드의 제작과 부착은 결코 중심적인 일이 아니었다. 작은 금속 레코드 하나지만 탐사선에 무게를 더하고, 이는 연료 양이나 방향을 컨트롤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귀찮은 존재다. 게다가 우주의 크기나 보이저의 느린 속도를 감안할 때 이 레코드가 머지않은 미래에 외계 어딘가의 지적 생명체에게 도달할 가능성은 무시할 정도로 낮다. 즉 실용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지구의 속삭임〉
칼 세이건 외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 세이건과 동료들이 이 작업에 열정적으로 나선 것은, 동으로 만들어 금도금을 한 레코드가 진공의 우주 공간에서 10억 년이나 손상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먼 미래의 언젠가 외계 생명체들이 이 레코드를 발견한다면 아득한 옛날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들이 존재했다는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칼 세이건은 책의 에필로그에 조금은 낭만적인 이런 의미들을 잔잔히 풀어놓았다. 하지만 아마 이 레코드는 외계인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별을 사랑하는 과학자들이 우리 지구인들을 위해 벌인 일종의 제스처였을 것 같다.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이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분명히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부디 그 꿈을 잃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속삭임’을 역설적이고도 드라마틱하게 담은 게 아닐까.
기자명 원종우 (과학저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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