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아니었으면 했어요. 너무 비참하잖아요. 정말 버려졌던 거구나…. 아이들이 ‘엄마, 정신 차려. 이런 나라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로 아들 건우군을 잃은 김미나씨는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고통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김씨는 11월16일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7시간의 행적, 꼭 밝혀야 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곳은 청와대와 200m 거리다. 김씨 뒤로 청와대 입구를 빈틈없이 막은 경찰의 모습이 보였다. 이날 경찰은 ‘7시간 문구는 대통령 경호상 위해 소지가 있다’며 청와대 앞 분수대로 향하던 유가족을 제지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 행적에 관한 ‘7시간 의혹’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8분,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했다. 청와대가 이 문제와 관련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 과정에서 제출한 ‘4·16 세월호 사고 당일 시간대별 대통령 조치사항’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로부터 1시간12분 뒤인 오전 10시 국가안보실로부터 첫 보고를 받았다. 서면 보고였다. 오전 10시15분 안보실이 두 번째 유선 보고를 할 때 박근혜 대통령은 첫 지시를 내린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 이어 오전 10시30분 박 대통령은 해경청장에게 전화로 지시한다.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 1분 뒤 세월호는 완전히 전복됐다.
 

ⓒ시사IN 조남진11월16일 한 세월호 유가족이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히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오전 10시30분 지시를 끝으로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현장에 나타나기까지 7시간 가까이 박근혜 대통령은 구조와 관련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안보실과 비서실로부터 총 15차례 보고가 올라갔는데, 모두 서면 혹은 유선 보고였다. 첫 보고를 받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15분까지 대통령 대면 보고나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거나 열리지 않았다. 오후 5시15분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중대본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은 것인가’라는 의혹이 일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소재를 청와대 비서실장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드러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위치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김기춘 비서실장, 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는 대통령이 당일 경내에 있었다고 밝힐 뿐 집무실인지 관저인지는 경호상 밝힐 수 없다고만 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은 (집무실이 아니라 생활공간인) 관저에 있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청와대는 11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주로 '관저 집무실'을 이용했다고 참사 2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밝혔지만,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인사들은 '관저 집무실'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소재조차 불명확하니 소문이 난무했다. 가토 다쓰야 〈산케이 신문〉 전 서울지국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소문을 칼럼에 썼다가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씨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5년 12월 무죄판결을 받았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 11월16일 일본 도쿄 유라쿠초에 있는 일본외국특파원협회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정윤회씨와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있지 않았다고 재판에서 증명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해당 소문이 허위라고 재판 도중인 2015년 3월30일에 갑자기 판단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윤회씨와 역술인 이세민(본명 이상목)이 그날 이씨의 평창동 자택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것에 대해 당사자 두 사람과 동석자 원 아무개씨 간 진술이 크게 다르지 않은 점 △정윤회씨 통화내역 조회 결과 2시20분께 발신 장소가 이세민씨 집에서 직선거리로 1.4㎞ 떨어진 곳인 점 △대통령경호실이 작성한 ‘출입기록 확인요청 답변 공문’에 정윤회씨가 2014년 4월16일 청와대에 출입한 기록이 없다고 기재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정윤회씨 진술이 검찰과 법정에서 번복되었다. 정씨는 검찰 조사 때는 세월호 참사 당일 집에 있다가 저녁 약속에 갔다고 진술했다. 진술이 바뀌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청와대2014년 4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세월호 보고를 받고 있다.

이런 판단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가토 전 지국장의 변호를 맡은 박영관 변호사는 “판결 선고도 아닌데 재판 중간에 판단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의아했다. 판단 근거는 사실상 재판에 나온 세 명의 진술밖에 없다. 재판부가 부담이 컸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 등이 기록 없이 청와대에 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시사IN〉은 가토 전 지국장에게 관련 내용을 묻는 이메일을 보냈지만 그는 “언론 대응은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라고 답해왔다.

청와대, 서면 보고 자료 공개 안 해

이 판결을 끝으로 잠잠하던 7시간 의혹이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청와대 굿’설이나 ‘성형시술’설에 대해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해도 의혹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는 서울 강남 차움의원의 최순실·순득씨 진료기록부를 조사한 결과 “박 대표, 대표님, 안가, VIP, 청”이라는 단어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총 29회 기재되는 등 박 대통령 주사제를 대리 처방받은 정황을 확인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변호하는 유영하 변호사는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언급했다.

여야가 최순실 특검과 국정조사에 합의하면서 7시간 의혹이 특검에서 규명될지 관심이 모인다. 특검법은 세월호 7시간을 수사 대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관련 사건까지 모두 수사하기로 했다. 권영빈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진상규명위원장은 “특조위는 컨트롤타워로서 청와대가 구조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규명하려 했지만 정부·여당이 대통령 조사를 금기시했다. 7시간 의혹이 특검법 수사 대상에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아 제대로 수사되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보고·지시 내용 등을 공개하라는 녹색당 소송에서 청와대는 구두 보고·지시는 따로 녹음하지 않아 기록이 없다고 했다. 서면 보고 자료에 대해서는 공개될 경우 업무에 현저한 지장이 초래된다는 주장을 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세월호 유가족인 건우군 어머니 김미나씨는 “저희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적인 시간은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공적인 시간을 알려달라는 거예요. 자기들이 진실이라면 당연히 반박을 할 텐데 하나도 제대로 해명을 못하고 있잖아요. 정말 보고를 받았다면 그렇게 할 수가 없는데….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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