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부터 영화나 드라마 홍보 포스터에 기계 활자가 아닌 사람 손으로 직접 쓴 글씨가 더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부분 붓의 결이 드러나는 거친 글씨체로, 영화의 성격을 드러내고자 하는 듯하다(물론 최근에는 많은 영화 포스터가 천편일률적인 손글씨를 써서 재미가 반감되기도 한다). 이런 것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 캘리그래피(Calligraphy)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멋진 글씨는 써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다이어리나 노트를 꾸밀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카드를 써줄 때도 무척 유용하다. 이런 개인적인 용도뿐만 아니라 카페 메뉴판, 기업체의 이미지 로고(CI), 제품 포장지 등 손글씨가 활용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캘리그래피는 글씨를 예쁘게 쓰는 기술로, 좁게는 서예부터 넓게는 활자 이외의 모든 서체를 가리킨다. 영문 위키피디아의 정의는 이보다 좁은데, 펜촉이 두꺼운 필기구나 붓 등을 이용해 글씨를 쓰는 것을 캘리그래피로 정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캘리그래피라는 단어는 가독성보다는 심미성에 비중을 둔 ‘예쁜 손글씨’ 전반을 가리킨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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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캘리그래피 체험을 하고 있는 학생들. 캘리그래피는 도구의 조합에 따라 무한히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해서체·초서체 등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자 캘리그래피도 있지만, 현재 인기가 있는 것은 영문 캘리그래피와 한글 캘리그래피가 대부분이다. 감성적인 문구를 손글씨로 적어 어울리는 사진과 편집하면 인기를 얻기도 하고, 손글씨 자체가 유료 컴퓨터 폰트화되거나 캘리그래피를 활용한 문구 제품이 발매되는 경우도 있다. ‘밤삼킨별’의 문구류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캘리그래피에 필요한 도구는 손, 필기구, 종이가 전부다. 간단한 듯하지만, 도구의 조합에 따라 무한히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인터넷에서 캘리그래피 도구를 검색하면 그 종류와 가격이 얼마나 다양한지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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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커뮤니티들. 맨 위부터 펜후드, 스놉, 티애 김은정씨의 블로그.
다음 카페 펜후드(cafe.daum.net/mont blank)는 만년필 전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지만, 캘리그래피를 하기 좋은 펜에 대한 정보도 많다. 다양한 잉크 정보도 쌓여 있다. 트위터 ‘스놉’의 문방구 계정 (twitter.com/stationary_snob)은 캘리그래피 강좌를 운영하는 강사이기도 한 스놉이 캘리그래피 관련 도구를 비롯해 여러 문구류를 소개한다. 그 도구를 활용한 멋진 손글씨를 감상하는 것은 덤이다. 베스트펜(www.bestpen.co.kr)에서도 캘리그래피 도구를 구입할 수 있다. 인기 있는 제품의 경우 후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이런 다양한 도구가 있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펜촉에 잉크를 찍어 쓰는 딥펜과 붓의 불편한 점을 개선해 만든 붓펜이다. 두 종류 모두 필압에 따라 획의 굵기가 달라져 다양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씨를 쓸 수 있다.

딥펜은 펜촉의 모양과 경도에 따라서 다른 글씨가 나온다. 다양한 상표와 색상의 잉크에까지 눈을 돌릴 경우 통장이 ‘텅장(텅 빈 통장)’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붓펜 역시 1000원대의 저렴한 스폰지팁 타입부터 붓의 결이 살아 있는 고급형까지 다양하다. 처음에는 저렴한 붓펜으로 시작해 손에 익힌 후 점차 비싼 도구로 나아가는 것이 경제적이다. 하지만 모든 덕질이 그러하듯 가격을 무시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사게 된다.

나무젓가락으로도 가능한 캘리그래피

매번 잉크를 찍어야 하는 딥펜과 달리, 만년필은 카트리지나 잉크통을 꽂아두고 사용해 편리하다. 펜촉의 굵기도 다양하거니와 캘리그래피 전용 만년필(펜 끝이 일반 만년필보다 넓은 로트링 아트펜이나 파일럿 페렐레 등)도 나오므로 용도나 취향에 따라 알맞은 펜을 골라 사용하면 된다. 이마저도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캘리그래피 전용 마카펜도 출시되어 있다. 지그 캘리그래피(Zig calligraphy) 펜이 가장 대표적이다. 촉이 납작한 형태이고 색도 금색·은색까지 있을 정도로 다양해 매번 48색, 72색 세트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돈 쓰기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캘리그래피를 즐길 수 있다. 다이어리 꾸미기 카페 등에서는 이른바 ‘컴퓨터용 사인펜’의 촉 윗부분을 칼로 비스듬히 잘라내 종이에 닿는 면적을 넓게 만들어 나름의 캘리그래피 마카로 쓰는 사람들도 많다. 꼭 비용 절감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 나뭇가지를 깎거나,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거친 면으로 캘리그래피를 시도하기도 한다.종이는 보통 보풀이 일어나지 않고 뒤에 잉크가 배어나오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일반 인쇄용지에 연습하기도 한다. 다만 종이를 긁는 딥펜이나 만년필은 보풀이 일어나는 종이를 사용할 경우 펜촉 틈 사이에 종이 보풀이 끼게 되면 청소를 해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재료를 구입하고 캘리그래피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겠다면 워크숍에 참여하면 된다. 이탤릭체·고딕체 등 어느 정도 정해진 기본 글씨체가 있는 영문 캘리그래피와 달리, 한글 캘리그래피에는 정해진 서체가 없다. 현재 운영되는 캘리그래피 워크숍은 서예를 공부하고 그를 바탕으로 가르치는 강좌와 손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워크숍을 열어 가르치는 경우로 크게 나뉜다. ‘캘리그래피’ 혹은 ‘캘리그라피’를 검색해 마음에 드는 글씨를 쓰는 분의 워크숍을 신청해 배우면 된다.영문 캘리그래피는 국내에서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그중 티애 김은정씨가 특기할 만하다(brushinstory.com). 그녀는 북미 지역에서 영문 캘리그래피 정식 과정을 수료하고 미국인들에게 특강을 진행할 정도로 실력자이다. 블로그에서 강의를 신청하면 공방에서 직접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일단 혼자 해보고 싶다면 책자나 영상을 보며 독학하는 방법도 있다. 앞서 말한 김은정 작가도 〈혼자 배우는 영문 캘리그라피〉(한빛라이프)를 냈고, 〈특별한 날에 캘리그라피〉(한빛라이프)라는 책도 있다. 그 외에도 ‘캘리그래피’로 검색하면 출판된 자습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영어가 많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영문 캘리그래피를 독학하는 것은 더 쉽다. 구글·유튜브·인스타그램 혹은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Calligraphy’를 검색하면 많은 자료가 나온다. 글씨 ‘존잘님’들이 직접 글씨 도안을 올려주기도 하고(보통 ‘free calligraphy template’로 검색하면 된다), 글씨를 쓰는 손을 집중적으로 찍은 영상도 많아서 어떤 식으로 획을 마무리하는지, 손을 어떻게 꺾는지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이런 영상은 직접 쓰기는 귀찮지만 손글씨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게으른 사람들에게도 강력히 추천한다. ※ 이번 호로 ‘뭐 하고 놀까’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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