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때문에 생겨난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만 3~4세 누리과정 지원을 시작한 이후 4년 내내 여야가 싸우고, 중앙정부와 시도 교육감이 다투고, 보육기관이냐 교육기관이냐를 놓고 지루한 법리 논쟁을 계속하더니, 급기야 현직 교육감이 멱살을 잡히는 폭력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난 6월9일, 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세울 것을 요구하며 시위 중이던 전북 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들이 의회 정례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멱살을 잡아끄는 등의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감과 부교육감 등 여러 사람이 다쳤다.

김승환 교육감은 이재정 경기교육감, 장휘국 광주교육감 등과 함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강제하는 정부에 앞장서서 맞서다 이런 봉변을 당했다. 교육과 학예를 총괄하는 현직 교육감이, 그것도 민의의 전당인 도의회 본회의실 앞에서, 온종일 영유아들을 보살피며 생활하는 어린이집 관계자들에게 폭행을 당한 놀라운 일인데 어찌된 일인지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

같은 사태를 보는 교육감들과 정부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교육감들은 ‘시도 교육청에 누리과정 예산을 떠넘겨 대립과 갈등을 부추긴 정부의 무책임’이 폭행 사태의 근본 원인이므로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긴급 국고 지원을 요구한다. 반면 교육부는 ‘누리과정 지원은 어린이집 관계자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절박한 문제’이므로 ‘시도 교육청이 조속히 누리과정 예산 편성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책임을 교육감에게 돌린다.

ⓒ박해성 그림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의 골을 감안할 때 사실 예견된 사태다. 점점 격앙되어가는 이해당사자들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제2, 제3의 비슷한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통령의 결단이 아니면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이 해묵은 문제 때문에 교육계는 몇 년째 발목이 잡혀 있다. 당사자들의 갈등뿐만 아니라 혁신교육과 사교육비 절감, 학교 민주주의와 학생 인권 등 교육 개혁과 교육 자치의 시급한 의제들이 누리과정이라는 블랙홀에 걸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꿈틀대지 못한다.

누리과정은 모든 유아에게 생애 출발선에서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경감하여 유아교육·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2013년부터 전면 시행된 제도다. 무상보육은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보편적 복지의 기본이므로 대통령의 훌륭한 공약이자 업적임에 틀림이 없다. 문제는 돈이다. 매년 4조원에 이르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지원하는 누리과정 소요액을 쉽게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 정부와 교육청이 서로 떠넘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국회가 보육대란 갈등 해결해야

시도 교육청의 처지는 딱하다. 대다수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전전긍긍한다. 어찌어찌 편성한 교육청도 속내를 따져보면 돌려막기다. 별도 재원도 없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또한 20.27%로 꽁꽁 묶여 있으니 지방교육채를 발행해서 고비 고비를 넘긴다. 경기교육청을 보니 누리과정 전면 시행 이후 예산액 대비 부채비율이 50%에 육박하는 심각한 재정위기다. 또한 교육 환경과 교수·학습에 쓰여야 할 돈을 대폭 줄이니 이는 곧 유·초·중등 공교육 부실로 이어진다.

교육청 처지에서는 어린이집은 유아교육법상 학교가 아니므로 법률상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는데 정부가 지원하라고 강제하니 더욱 억울할 노릇이다. 정부는 보육의 개념에 교육이 포함되므로 어린이집 또한 교육기관이며 따라서 지원은 시도 교육청의 법률적 의무라는 다소 생경한 논리로 밀어붙인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소중한 복지정책을 정착시킬 특단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당장은 정부가 추경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어린이집 ‘생존권’을 긴급 지원해야겠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매년 반복되는 보육대란 갈등 해결은 결국 국회 몫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하여 교육재정을 확충하고 보육·교육 기관의 지원 주체를 명확하게 하는 법률 정비 이외에 해법은 없다. 더 이상의 소모적 갈등이나 폭력 사태가 나오지 않도록 국민이 부여한 의회의 권능을 발휘해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기자명 안순억 (성남 운중초등학교 교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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