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거래로 120억원대 차익을 누린 진경준 검사장의 투자 자금은 넥슨에서 나온 것이었다. 진 검사장은 2005년 비상장주인 넥슨 주식 1만 주를 4억2500만원에 매입해서 지난해 126억원에 팔았다. 공직자윤리위원회 조사 결과 최초 매입자금 4억2500만원마저 넥슨이 대출해준 돈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는 진 검사장과 관련 인물들에 대한 계좌 추적 영장을 발부받아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함께 청구한 진 검사장의 서울 도곡동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됐다. 앞서 지난 4월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진 검사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했다.

일단 검찰은 뇌물 혐의 대신 ‘수뢰 후 부정처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 주식을 뇌물로 보더라도 취득 시점인 2005년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1억원 이상 뇌물죄의 공소시효는 2007년 법이 개정돼 15년으로 늘었지만 진 검사장이 주식을 산 당시에 공소시효는 10년이었다. 수뢰 후 부정처사는 공무원 등이 뇌물을 받은 뒤 직무와 관련된 부정행위를 의미하는데, 공소시효는 부정한 행위를 한 때로부터 10년이다. 진 검사장이 수사와 관련해 넥슨에 편의를 제공한 사실이 밝혀지면 형사처분이 가능하다.

ⓒ연합뉴스진경준 검사장(왼쪽)은 2005년 넥슨으로부터 4억2500만원을 빌려 넥슨 주식 1만 주를 산 것으로 드러났다. 진 검사장은 넥슨의 김정주 회장(오른쪽)과 친분이 두텁다.

검찰이나 법무부는 처음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재산 공개 이후 파문이 커지자 진 검사장은 지난 4월 초 법무부에 사표를 냈다. 법무부는 당초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으나 여론에 밀려 사표 수리를 보류했다. 법무부는 또 “재산 검증은 공직자윤리위 소관”이라며 자체 감찰에 나서지 않아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샀다.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지난해 검사장 승진 당시 민정수석실이 부실 인사 검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따랐다.

그러나 진 검사장이 공직자윤리위 조사에서 한 진술이 허위로 밝혀지며 검찰 수사까지 나아갔다. 진 검사장은 넥슨 주식을 매입한 4억2500만원에 대해 처음에는 “원래 가지고 있던 돈”이라고 해명했다. 그 뒤 공직자윤리위 조사에서는 “내 돈과 장모에게 빌린 돈을 합쳤다”라고 말을 바꿨다. 그런데 이마저도 거짓말이었다. 공직자윤리위 조사에 따르면, 넥슨은 2005년 진 검사장, 함께 주식을 매입한 박성준 전 넥슨홀딩스 감사, 김상헌 네이버 대표에게 총 12억7500만원을 빌려줬다.

ⓒ연합뉴스넥슨 사옥.

당초 ‘개인투자자 간의 거래’라며 선을 긋던 넥슨도 공직자윤리위 조사 결과가 나오자 말을 바꿨다. 넥슨은 “주식 매입 자금을 빌려주기는 했지만 4개월 만에 모두 갚았다”라고 해명했다. 넥슨 측의 말을 종합해보면, 당시 넥슨 미국 지사장이던 이 아무개씨가 넥슨을 떠나면서 지분을 매각하려 했고 급하게 투자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대출해주게 됐다고 한다. 즉 주식이 외부로 유출되는 걸 막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진 검사장과 함께 주식을 매입했던 박성준 전 감사는 진 검사장,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회장과 서울대 동창으로 친구 사이이며 김상헌 네이버 대표는 김 회장과 친분이 두텁다. 진 검사장과 박 전 감사, 김상헌 대표는 하버드대 대학원 동문이기도 하다. 주식을 판 이 지사장은 퇴직 후 미국에서 게임업체 ㅋ사를 운영했다.

회장 부부 지분 69%인데 ‘경영권 방어’ 때문?

당시 넥슨 지배구조에 비춰보면 경영권 방어 차원의 주식거래라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5년 김정주 회장과 부인 유정현씨가 보유한 지분이 69%에 달했던 데다, 이 지사장이 매각한 주식 지분은 0.69%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넥슨은 “주식이 거래된 11년 전에는 작은 회사였다. 외부 투자자가 주식을 이용해 상장을 압박하거나 게임 개발에 참견하는 것을 방지해야 했다. 외부 간섭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에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라고 밝혔다.

주식거래 당시인 2005년 넥슨은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게임업체들이 앞다투어 코스닥에 상장하는 가운데 비상장으로 남아 있는 넥슨 주식은 성장 가능성이 큰 주식이었다. 바로 전해인 2004년 메가 히트를 기록한 게임 〈메이플 스토리〉를 인수했다. 주식 매수 희망자를 찾기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급하게 투자자를 찾아야 했다 하더라도 ‘왜 하필 진 검사장이었느냐’라는 의문이 남는다. 진 검사장은 김정주 회장과 서울대 동창으로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지만 넥슨과는 무관한 인물이다. 이에 대해 넥슨 홍보팀은 “당시 컨설팅 업체에 다니고 있던 박성준 전 넥슨홀딩스 감사가 진 검사장과 김상헌 네이버 대표를 투자자로 소개했다”라고 간략하게 해명했다. 자금까지 대여해준 의혹과 관련해 “그 외의 투자자에게 자금을 빌려준 적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넥슨 관계자는 “모른다. 그리고 밝힐 이유도 없다”라고 답했다.

진 검사장에게 흘러들어간 돈이 대여금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넥슨은 진 검사장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면서 차용증도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진 검사장이 넥슨에 변제를 했는지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야 할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진 검사장이 사들인 주식이 실제로는 김 회장의 ‘차명 주식’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넥슨이 주식거래에 직접 개입한 만큼 김정주 회장의 소환 조사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은 김 회장 이외에도 관련자들 소환을 검토 중이다. 검찰 수사의 초점은 ‘대가성 여부’ 입증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진 검사장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서울대 법대 대학원에서 ‘금융 프라이버시권’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금융수사 전문가다. 2009년 금융·증권 범죄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에 올랐다. 넥슨은 이런 진 검사장을 지난해까지 주주로 두고 있었던 것이다. 진 검사장에게 ‘보험’을 들려 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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