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단종됐지만 예전에는 꽤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국산 양주들이 있었다. 이 양주들은 금세 취하는 맛에 주머니가 가벼운 청춘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아침이면 두개골을 사정없이 쪼개놓기로 악명이 높았다. 짬뽕 국물이 주된 안주였던 대학가에서만 팔릴 것 같던 이 술들은 의외로 회사에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는 복덩이였다. 오랫동안 주류 판매량 상위 차트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술들은 대부분 유흥가의 거나한 술자리에서 세 병째나 혹은 네 병째 나온 고급 외제 양주로 둔갑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이면 밤새 부적절한 접대를 받았던 힘센 분들의 두개골도 공평하게 공격해 약간의 정의를 실현했을 테고.

국산 양주 외에도 업주가 말하기 싫어하는 불편한 진실을 품은 상품은 의외로 많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기나 애인의 벗은 몸을 사진으로 찍어서 간직하기 힘들었다. 비싼 돈을 들여 인화와 현상 시설을 갖추지 않는 한 기술자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음란물법에 저촉돼 철창신세를 지거나 적어도 기술자의 음흉한 웃음과 뒷담화를 감내해야 했다. 그러다 1948년에 폴라로이드 사가 랜드카메라를 내놓았다. 이 카메라는 단 몇 분 만에 주인에게 현상된 사진을 안겨주었다. 이제는 아마추어도 얼마든지 눈치 보지 않고 누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는 신호탄이었다. 폴라로이드는 가족이 들판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즉석에서 현상해 들여다보며 기뻐하는 모습에 광고의 초점을 맞췄지만, 정작 사람들이 자사 카메라를 어떤 용도로 더 많이 사용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1966년에 폴라로이드가 내놓은 새로운 모델 이름이 ‘스윙어’였는데, 이는 성적으로 분방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간의 유난스러운 성적 취향 덕분에 득을 보는 회사들은 그런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이 들으면 위로가 될 만한 얘기가 있다. 사실은 인류의 역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만한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자체를 끌어가는 중요한 힘 가운데 하나가 성욕, 구체적으로는 포르노라는 사실이다.

ⓒ한성원 그림

인터넷은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니면서 운명적이라고 할 만한 태생의 비밀이 있다. 지금은 경로 우대를 받을 나이쯤 된 스웨덴의 레나 셰블롬이란 여성은 1968년 열여덟 살 꽃다운 나이에 미국 나들이를 했다. 흑갈색 머리의 미인이었던 그녀는 성인 포르노 잡지 〈플레이보이〉의 모델이 돼달라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스웨덴 억양’이란 제목이 붙은 그녀의 누드 사진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즈음 로스앤젤레스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은 중요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호 발사에 충격을 받아 미국이 설립한 국방부 고등연구계획부가 나중에 인터넷으로 발전하는 아르파넷(ARPAnet)에 전송할 화상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이 대학에 맡긴 것이다. 정물 사진에 질린 연구진 중 한 명이 밖으로 뛰쳐나가 〈플레이보이〉 한 부를 사서 들고 왔는데 거기에 실린 사진의 주인공이 셰블롬이었다. 당시 전부 남자에다 젊었던 화상처리 연구자들은 알고리즘과 씨름을 하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셰블롬과 사랑에 빠졌다. 화상으로 그녀의 누드 사진을 받아본 연구자들은 이 통신망이 세계화할 가치가 있다는 데 열렬히 공감했다.

1989년 상업 인터넷이 출현한 뒤 인터넷이 인간의 은밀한 욕구를 채워주는 데 유능한 매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1995년 텍스트 위주의 유즈넷에 올라온 내용은 섹스와 포르노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게시판은 섹스 채팅룸이었다. 1994년 8월 플레이보이 사는 웹사이트를 개설한 최초의 대기업이 되었다. 2009년 전체 검색어 중 25%가 성인 콘텐츠였고, 전체 웹 사이트의 3분의 1이 포르노 사이트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인 사이트인 포르노 허브에는 2015년 시간당 240만명이 접속했다. 포르노 업체는 대부분 비상장이어서 수입을 추적하기 힘들지만 전체 시장 규모가 연간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수입의 60% 정도는 미국 업자의 손에 들어간다. 유교의 나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우리나라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포르노 강국이며 중국은 눈부시게 떠오르는 신인왕이다.

최근 들어 이 업계는 음반업계나 할리우드가 직면한 것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바로 불법 다운로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업종이 업종이니만큼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힘을 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약점은 무시하지 못할 강점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일찍부터 모든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왔다. 포르노 업자들은 폰섹스 사업에 비교적 안전한 신용카드 자동결제 방식을 최초로 도입했다. 그 외에 접속하기를 꺼리는 수많은 유저를 안심시킬 수 있는 잡다한 전자화폐를 고안해낸 것도 그들이었다. 그들 덕분에 전 세계의 온라인 판매 기업은 시장점유율을 날로 높여가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역시 포르노 업자에게 감사를 표해야 옳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두 회사는 아직도 IT 기업으로서는 유망하지만 수익모델은 찾기 힘들다는 얘기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포르노 회사들은 한 웹사이트를 다른 웹사이트에 광고하는 제휴 시스템을 개발했다. 방문자가 A 사이트에 있는 링크를 따라가 B 사이트에 도착하면 B 사이트가 A 사이트에 소개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구글의 문맥 기반 광고 시스템의 토대가 되었다.

출범한 지 겨우 12년 만에 세계 6위 기업으로 성장한 페이스북의 신화 역시 포르노 업자의 ‘지원’이 없었다면 빛이 바랬을 것이다. 2006년 10억 달러에 야후에 넘어갈 뻔했던 페이스북은 2008년 검색 광고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날개를 달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페이스북의 광고 사업 역시 포르노 업체가 개발한 광고 시스템에 힘입은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두 회사가 가진, 아무도 따라오기 힘든 압도적인 수의 전 세계 유저에 대한 데이터가 포르노 업자의 상상력과 만나자 현금을 찍어내는 기계가 되었다.

4월11일자 〈타임〉 커버스토리를 보고 결국 터질 일은 터지는구나, 생각했다. 표지 제목은 ‘포르노’, 부제는 ‘어째서 인터넷 포르노와 함께 자라난 젊은이들이 포르노를 쫓아내려는 운동을 옹호하는가’였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포르노에 양가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젊은 기자 시절 외국에 나가면 종종 포르노 비디오를 사다달라는 부탁을 받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포르노를 사서 보는데 우리는 어째서 숨어서 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군부독재가 국민을 아이 취급한다는 생각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청소년기를 포르노에 절어 보낸 이들에게서 터져나온 비명

그래서 은연중에 마음 한구석으로 포르노 허용을 민주화의 정도를 재는 잣대 중의 하나로도 여기게 되었다. 포르노를 께름칙하게 여기면서도 단호하게 금지하기를 꺼리는 나의 이런 애매한 태도는 분명 사내아이 두 명을 기르는 데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청소년기를 인터넷의 태동과 폭발을 경험하며 보낸 두 녀석은 아마도 포르노의 무차별 폭격을 받았음에 분명하다. 한국뿐 아니라 성 혁명의 물결에 휩쓸렸던 미국과 유럽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2015년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14세에서 17세 사이 영국 소년의 40%가 일상적으로 포르노를 보면서 보낸다. 미국 뉴욕 대학 최근 조사는 미국 남성 중 거의 절반이 13세 이전에 포르노와 만난다고 말해준다. 미국과 유럽의 연구들은 청소년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 포르노를 접하며 결혼한 뒤에도 습관적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포르노를 들여다본다고 보고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포르노로 샤워를 하고 지내다가 그 해독을 깨달아 지금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포르노를 끊으려는 이들을 돕는 운동에 적극 나선 이들이 털어놓는 경험담은 대체로 일치한다. 그들 가운데는 열 살도 되기 전에 포르노를 접한 이들이 드물지 않다. 포르노는 여드름과 숙제만큼이나 익숙한 삶의 일부였다. 수업 시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학교 컴퓨터에서 포르노를 봤고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상대가 생겼을 때 문제가 생겼다. 마음은 격렬하게 상대에게 끌렸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포르노를 끊고 실제 상대와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렸다. 학계나 대중매체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청소년기를 포르노에 절어서 보낸 당사자들에게서 비명이 터졌다는 게 주목할 만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시각적 음란물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젊은 세대,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일까. 미국 건강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1992년에는 40세 이하 남성 중 5%만이 발기부전을 호소했다. 최근 각 나라 연구소에서 이 수치는 가파르게 치솟는 중이다. 스위스의 한 연구에서 18세에서 25세까지 남성 중 3분의 1이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몇 년 동안 상담실 문을 두드린 미국 하버드 대학 여학생의 공통된 질문이 ‘포르노에 빠진 남자친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였다. 전 세계에서 남성 학력이 떨어진 것도 포르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제기되었다.

뇌가 채 성숙하기 전인 청소년기에 지나치게 많이 포르노에 노출되면 성인이 돼서 실제 성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학계에서는 포르노 중독보다는 스트레스와 약물 남용이 발기부전의 주범이라는 의심을 더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기에는 연구 결과 자체가 놀랍도록 적다. 연구자들은 언젠가부터 인터넷의 해악에 관한 연구에는 돈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고 푸념한다.

학계의 논란이야 어떻든 10년 넘게 성적 조건반사 실험의 기니피그 신세가 돼왔다는 데 분노한 당사자들의 반격은 시작되었다. 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그룹을 결성하고,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해서 배포한다. 포르노의 가장 열렬한 소비층이었던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 시대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건드릴 기세다. 지금까지 재력에서나 기술력에서나 인터넷을 지배한 세력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이베이나 아마존이 아니라 포르노 기업이었고, 이제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참고한 활자:〈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문학동네), 〈타임〉, 〈이코노미스트〉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