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1000년 동안 우리 미술의 주류는 불교미술이었다. 그런데 유교 사회인 조선시대를 거치며 변방으로 밀려난 불교미술은 현대에 이르러 ‘고미술’이 되었다. 그렇게 불교미술은 ‘지금, 여기, 우리’와 멀어져 있다.

그런 불교미술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지리산 화가 이호신씨가 그린 실상사 약사전의 ‘후불탱화’가 대표적이다. 민중미술의 한 형식인 걸개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이 탱화는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부처님, 보살님, 천신들, 여러 신장님과 호법 성중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얼핏 가볍고 장난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이 탱화는 불교의 정신이 현대의 화법으로 얼마든지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린 2016 서울국제불교박람회(3월24~27일)의 ‘붓다아트페스티벌’에서 선보이는 불교 현대미술 특별전 〈모던 붓다〉도 불교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였다. 백승호·이완·최두수(위 사진 왼쪽부터) 세 작가는 불교의 화두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와서 자유롭게 표현했다. 꽤 과감했다. 단순히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것을 넘어서 불교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 접근을 했다는 평가다.

백승호 작가의 작품은 사찰의 지붕을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사찰의 조경 원리인 ‘차경’을 재해석하고자 했다. ‘차경(借景)’이란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로 마당에 따로 조경을 하지 않고 건물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확대된 마당으로 간주하는 우리 전통 조경 양식이다. 작가는 그 반대의 상상력을 시도했다.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실을 하는 것이 사찰의 지붕인데, 그 사찰의 지붕을 보여주면 역으로 사찰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상상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관객은 모빌처럼 걸려 있는 사찰 지붕의 얼개를 보면서 실제 자연 속 사찰을 상상할 수 있다. 작가는 “이 방식은 차경이라는 조경술이 지닌 소통 방식의 미술적 접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불교박람회사무국 제공세 작가는 불교의 화두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와서 자유롭게 재해석했다.

‘불경한’ 불교 예술이 사회에 던지는 경고

현대사회의 물신주의를 보여주는 사진을 주로 찍어온 사진작가 이완씨도 함께했다. ‘상품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에는 비로자나불에 ‘35만원’ 가격표가 붙어 있다. 비로자나불 뒤의 부처상은 ‘38만원’이 붙어 있다. 이런 것들이 헐값에 팔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상품화된 현대 불교를 은유적으로 풍자한다. 마치 화석화된 종교는 이렇게 싼값에 팔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듯하다.

최두수 작가는 콘크리트로 작업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플라스틱 대형 화분에 콘크리트를 채워 쌓은 ‘플라스틱 콘크리트 6층 꽃탑’을 4대강 사업 현장에 세웠는데, 이 작품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찰의 주요한 석물인 탑을 다소 불경스럽게 재해석한 것이지만 탑은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욕망의 응축인 4대강 사업을 비판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불교의 ‘공(空)’ 개념을 응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불교에서 ‘공’은 고정된 실체를 부정하고 모든 존재를 관계 속에서 파악하려는 것을 말한다. 최 작가는 “요즘 금강경을 계속 들으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금강경의 설법을 작품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소주잔에 콘크리트로 산을 만들어 넣고 소주잔을 포갰다. 이렇게 하면 소주잔은 기능을 잃고 이름을 잃게 된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못하고, 이름이 있으면서도 불리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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