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천공항에 필요한 건 ‘비정규직 방지법’


국내 15개 공항 경비요원 87% 아웃소싱

 

 

3월22일 벨기에 브뤼셀 국제공항에서 IS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테러가 발생해 11명이 숨졌다. 이를 계기로 지구촌 전역에 ‘공항 테러’ 공포가 다시금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관문 인천국제공항은 과연 테러 위험으로부터 안전한가.

“감시 장비 몇 대 보완한다고 해서 공항 테러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 인사가 ‘돈을 줄 테니 너희만 아는 비밀 통로로 좀 빼내달라’고 보안요원을 회유하는 일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공항보안 강화대책에 대해 인천공항에서 3년째 보안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 아무개씨(31)가 한 말이다.

3월10일 정부는 공항테러 예방대책의 일환으로 인천공항 출국심사장에 보안 셔터를 설치하고 보안검색장에는 감지 센서를 만들어놓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들어 인천공항을 통한 외국인 밀입국 사건이 꼬리를 물면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강행해온 정부의 입장이 무색해지자 내놓은 대책이다.

지난 1월21일 새벽, 일본에서 인천공항을 경유해 중국으로 가려던 중국인 부부가 인천공항에서 사라졌다. 여객터미널 3번 출국장 내 상주직원 전용 출입문을 통과한 뒤 보안구역과 일반구역을 가르고 있는 최종 출입문의 잠금장치를 9분간 흔들어 손상시킨 뒤 빠져나간 것이다. 주변에 공항 보안요원이 있었지만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해당 보안요원은 중국인 부부가 워낙 대범하고 자연스럽게 문을 흔들어 열쇠 수리공이나 청소부려니 여기고 그냥 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2층 출입국심사대에서 ‘환승자격 입국(중국행 여객기로 갈아타기 전에 잠시 한국으로 입국하는 것)’을 거부당한 상태였다. 이 사실이 보안요원들에게 통보만 되었어도 현장 검거가 가능했다.

ⓒ연합뉴스박근혜 정부는 경영 합리화라는 명분하에 보안인력을 아웃소싱 방식으로 채우고 있다.

1월29일 새벽에는 베트남 출신 남성 밀입국자가 아무런 제지 없이 인천공항을 빠져나간 사실이 12시간 지난 뒤에야 파악됐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 사실을 인천공항공사 산하 대테러상황실에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잠적한 이 베트남인에게는 뒤늦게 수배령을 내려 도주 5일 만인 2월2일에야 대구에서 검거했다.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는 보안요원들은 국토부가 내놓은 전자감지 장비 보완 위주의 보안강화 대책이 근본을 도외시한 미봉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현재 인천공항의 현장 보안과 경비를 맡은 인력은 2200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전원이 외주 인력공급업체 용역 직원이고 공항공사 소속 보안 정규 직원은 주로 감독관 구실을 하는 76명에 불과하다.

외주업체에서 대테러 보안 특수교육을 받고 투입되는 비정규직 보안요원들의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인천공항에서 10년째 보안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황 아무개씨(37)의 급여는 200만원 남짓으로, 올해 고교를 졸업하고 갓 입사한 신입 보안요원과 별반 차이가 없다. 황씨는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공항 보안요원들에게 테러 예방 사명감과 자부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들어와서 한 달도 채우지 못한 채 떠나는 요원이 적지 않을 만큼 이직률이 높고, 전문성도 낮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항 보안요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외부 유혹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근무하는 보안요원 김 아무개씨는 “정부가 백날 테러 대책을 외쳐도 우리들 사이에는 ‘100명의 보안요원이 1명의 도둑조차 잡기 힘든 상황’이라는 자조가 널리 퍼져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이동식 X레이를 동원해 수하물 검색 시범을 보이고 있는 공항보안대 대원들.

‘거액’에 유혹당할 수 있는 임금 구조

인천공항의 테러 위협은 입국장 보안구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테러리스트가 마음만 먹으면 쉽사리 밀입국할 수 있는 환경 외에도 항공수화물을 통한 폭발물이나 위험물질 반입 우려도 상존한다. 지난해 가을 발생한 러시아 여객기 공중폭발 사고도 IS와 결탁한 이집트 공항의 수화물 검색 보안요원이 몰래 반입한 폭발물이 원인이었다고 지목된 바 있다.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승객의 짐은 위탁수화물 파트 보안요원들이 전수 검색을 한다. 1년7개월 동안 인천공항에서 위탁수화물 검색을 담당하다 열악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민간회사 보안경비직으로 자리를 옮긴 김 아무개씨(35)는 이렇게 말했다. “보안요원이 위탁화물에서 위험물질을 적발하면 곧바로 공항경찰대와 공항 상주 국정원 직원, 폭발물감식처리반(EOD)에 연락해 3개 기관 ‘합심(합동심문)’에 들어간다. 국정원이 주도하는 합심을 통해서 화주를 찾아내 위험물 기내 반입을 포기하게 한다. 거부할 경우 짐은 압수하고 사람만 출국시킨다.”

김씨가 인천공항 위탁수화물 검색대에 근무하던 지난 한 해 동안 적발된 ‘유사 폭발물’은 단 한 건이다. ‘안보 위해 물품’은 수시로 나왔다고 한다. 대개 실탄과 도검류였는데 한국에 파병 나온 외국 군인들의 짐에서 주로 나왔다. 민간인이 화주인 경우엔, 선물로 받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테러리스트가 작심하고 보안요원에게 접근해서 테러 위험물질을 기내에 반입토록 사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수화물 검색 보안요원이었던 김씨는 근무 경험을 통해 볼 때 “만일 보안요원이 거액에 매수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위탁수화물 검색 과정 자체에는 별 허점이 없다. X레이 판독실을 거치는 탁송화물의 경우, 짐 하나하나를 모두 검색한다. 모니터 판독 역시 개인이 아니라 20명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이루어진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다. “매수된 보안요원이 X레이 검색대를 통과한 짐 안에 위험물질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테러방지법 제정을 강행한 박근혜 정부의 입법 취지대로라면 테러 위험은 공항과 항만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공항에 근무하는 보안인력 구조를 살펴보면,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공항을 테러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시키고 말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 때까지는 공항공사가 직접 고용한 청원경찰이 보안·경비업무를 전담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부터 비용 절감과 경영 합리화라는 명분하에 인건비가 적게 드는 아웃소싱 방식으로 보안 인력을 채우고 있다(오른쪽 기사 참조).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테러방지법에 규정된 항공기 납치, 민항기에 대한 불법행위는 이미 존재하는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제대로 테러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경찰과 검찰, 국정원 등 관련 기관에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순서다. 대통령도 정부 수반으로서 현재의 대테러 체계가 부실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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