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직접 상대해본 사람들이 떠올리는 영화는 정작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가 아니라고 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여배우 드루 배리모어의 미소가 너무 천진해 안타까웠던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게임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결한 이세돌 9단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것저것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철학자들은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발견하게 되는 ‘딱 내 타입’을 ‘비개인적 친구’라고 부른다. 비개인적 친구는 나와의 관계 초입에서만 대체가 가능하다. 공통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지지고 볶는 역사를 거친 뒤에는 대체 불가한 진정한 친구(종종 ‘웬수’라고 부르기도 하는)가 된다. 영화 〈첫 키스만…〉에서 그에게 그녀는 점점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지만 사고로 장기 기억 능력을 상실한 그녀에게 그는 언제나 비개인적 친구로 머물게 된다.

혼신의 힘을 짜내 다섯 판이나 ‘세기의 대결’을 벌인 이세돌 9단은 아마도 알파고가 남 같지 않았을 것이다. 가슴속에 복잡한 감정을 저장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알파고를 상대하는 내내 〈첫 키스만…〉의 남자 주인공이 겪는 것과 같은 상실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인공지능에는 역사를 간직하는 기능이 없다. 그동안 이세돌 9단이 보여준 표정, 한숨, 고갯짓, 거기에 함축된 감정의 기복, 여기에 곁들여지는 훈수꾼들의 왁자한 논평까지. 알파고에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한성원 그림

인공지능 대화 로봇에도 오래된 대화를 저장하는 기능이 없다. 놀랍게도 심리 치료에 이용하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필요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런 역사를 정확하게 재처리할 만한, 혹은 압축할 능력이 없어서다. 프로그래머들은 우리의 일상 대화가 의외로 ‘상태 독립적’이어서 대화 내용을 바로바로 삭제해버려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의 대화라는 게 대개는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 1000번을 더 둔다고 하더라도 알파고에게 이세돌은 비개인일 뿐이다.

예전에 인터뷰를 하고 시간이 있을 때면 상대와 나의 숨소리까지 풀어보곤 했다. 그러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남의 말을 잘 듣고 거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때로는 재치 있는 유머까지 곁들이는 재주가 있다고 자부해온 터였다. 하지만 녹취록은 그런 자만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말해주었다. 나는 나대로, 그나 그녀는 자기들대로 하고 싶은 얘기를 떠들고 말았다는 사실을 녹취록은 생생히 증언할 때가 많았다. 내가 인터뷰를 풀면서 알게 된 것과 똑같이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대화봇을 운영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소통에 서툰 존재인지 절실하게 깨닫는다고 한다.

인공지능에 관해 영화나 미디어가 유포하는 정보나 공포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은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이나 〈매트릭스〉의 매트릭스처럼 극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훨씬 지루하고 둔한 타입이다. 이런 비교를 해보면 좀 더 알기 쉬울 것이다. 인간은 예로부터 새처럼 날기를 원했다. 결국 꿈을 이뤘지만 정확하게 새를 모방한 방향은 아니었다. 유체역학과 화석연료 엔진을 이용한 보다 둔중하고 섬세하지 못한 모델을 선택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뇌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외장 머리를 갖고 싶어 했는데 궁리 끝에 선택한 모델은 진짜 뇌와는 거리가 있다. 세상만사를 수로만 표시하는 컴퓨터, 즉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한 방식이다. 이와 대비해 과학자들이 ‘젖은 기계(웨트웨어)’라고 부르는 인간의 뇌와는 사뭇 다른 형태다. 결국 앞으로 비행기가 새를 지배하리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구속하리라고 말하는 것은 차원이 맞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앞으로 젖은 기계로 진화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나 그러기에는 아직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것이 연구자 다수의 생각이다.

이번 대결이 끝난 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CEO는 “아직 인공지능은 초기 개발 단계일 뿐이다”라고 말했는데 단순한 겸양의 말이 아니다. 인공지능 분야는 구글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e베이 등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창업자들이 모두 뛰어들었을 만큼 뜨거운 분야지만 갈 길이 멀다. 이들 중 가장 앞서가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이 거둔 성과는 우리에게 지금 인공지능이 어디에 서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177억 달러(약 21조원)라는 가늠하기 힘든 자산을 보유한 폴 앨런은 현재 인간의 뇌와 관련한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는 이를테면 비행기와 새를 동시에 연구해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접점에 반드시 도달하고 말리라는 통찰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는 인공지능과 뇌신경학을 연구하는 각각의 팀을 꾸린 뒤 그들이 정기적으로 한자리에서 만나 뇌에 대해 토론하도록 만들었다.

폴 앨런의 인공지능 팀이 세운 1차 목표는 뉴욕 고등학교 생물 시험을 통과하겠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저장하고 토해내고 패턴을 발견하는 데는 능하지만 ‘왜?’라는 단순한 질문 앞에 무너지곤 한다. 공교롭게도 컴퓨터는 인간이 약한 분야에는 능하지만 인간이 잘하는 분야에서는 허둥댄다. 이를테면 초등학생이라도 금세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사람은 숨을 쉰다’는 간단한 문장을 이해하는 데도 힘겨워한다. 컴퓨터의 ‘머릿속’에서는 ‘죽은 사람도 숨 쉬나?’ ‘숨의 분자는 하나일까?’ 따위, 수많은 갈피를 잃은 생각들이 오가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꼬여버리고 만다. 컴퓨터는 요약·생략·비약·직감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 눈치 없기로는 세상에 따라올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지난해 1월1일부터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 폴 앨런 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아리스토는 현재 뉴욕 시 고등학교 생물 시험 8단계 과정 중 3단계를 통과하고 4단계에 도전하고 있다. 3단계 성적은 C학점, 73.5% 수준이었다. 연구자들은 8단계까지 모두 통과하려면 앞으로 5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폴 앨런이 뇌신경학 연구팀에게 주문한 과제는 단순하다. ‘정보가 뇌 속에서 어떻게 코드화하는지 알아내라.’ 앨런은 이 연구를 위해 업계의 급여 질서가 크게 흔들릴 만큼 투자를 했다. 이 팀은 몇 년 동안 고통스러울 만큼 끈질기고 섬세하게 실험 쥐와 시신 기부자의 뇌 조각을 분석하고 지도화했다. 그러고는 당초 약속한 대로 연구 결과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무료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2006년 공개한, 쥐의 뇌에서 전류가 어떻게 흐르는지 나타낸 3장의 지도는 지금까지 1만8000개에 이르는 과학 논문에 인용됐다. 2010년부터 인간 뇌에 대한 지도화 기록도 계속해서 공개 중이다. 현재 연구자들은 뇌가 보여주는 좀 더 쉽게 ‘만질 수 있는’ 현상인 자폐와 정신분열 등에도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자들과 뇌신경학 연구자들은 일종의 레이스를 펼치는데 이 두 분야는 언젠가 통합되리라고 폴 앨런은 자신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그거야 아무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거울 같은 존재’ 아닐까

인공지능은, 현재로서는 우리의 직업을 빼앗아가거나 아예 노예로 만들어버릴지 모른다며 걱정스럽게 바라봐야 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거울 같은 존재에 가깝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결하기 20년 전인 1996년에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세기의 대결’이 벌어진 적이 있다. 실리콘밸리의 원조 거인이었던 IBM이 그들이 개발한 인공지능 딥블루를 앞세워 당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체스 선수라는 평가를 받던 게리 카스파로프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카스파로프는 첫판에서 맥없이 나가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나 그 뒤 게임을 잘 치러 4-2 완승을 거두었다. 1년 뒤 딥블루와 카스파로프는 재대결을 펼쳤는데 마지막 승부를 결정짓는 판에서 카스파로프는 자기의 체스 경력상 가장 일찍 손을 들고 말았다. 시합이 끝난 뒤 사람들은 ‘체스는 하찮은 게임이었다’거나 거기서 몇 발자국이나 더 나아가 ‘인류는 끝장났다’고 소동을 피웠으나 정작 카스파로프 자신은 담담했다. 그는 자기가 졌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딥블루가 이긴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세돌 9단도 연달아 세 판을 진 뒤에 ‘인류가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라고 말했는데 아마 카스파로프와 같은 뜻에서 한 말이 아닐까.

체스나 바둑 게임 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판을 읽고, 룰을 익히고, 최선의 수를 찾으면 그만이다. 이 모든 것은 컴퓨터가 좋아하는 숫자로 번역할 수 있다. 프로그램 개발자에게는 또 하나의 무기가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책(book)’이라고 부른다. 메모화 기법이라고 하는데, 자주 사용된 함수의 결과들을 저장해놓았다가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문서나 문자를 작성할 때 나타나는 자동 교정 기능이 초보적이다. 바둑계에서 굳어진 수많은 정석과 입신의 고수들이 그동안 둔 수십만 번의 기보가 있다면 자동 교정 이상의 마법을 발휘할 수 있다. 체스의 경우 초반 34수까지와 말의 수가 줄어든 종반에 실수를 범하면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의 신비주의 탓에 알파고의 많은 것이 비밀에 싸여 있지만 원리는 같을 것이다. 중반에 묘수를 낸 네 번째 판에서만 이세돌 9단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체스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초반이나 종반에 함정을 파놓고 인간이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셈이다. 카스파로프는 “다행스럽게도 초반과 종반의 두 끝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동응답 상태를 벗어난 지점에서만 우리의 진정한 인간성이 불꽃을 튀긴다.

카스파로프가 장담한 대로 초반과 종반은 결코 만나는 일이 없을까? 대화 로봇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이들은 이 질문에 특히 자신 없어 한다. 자동화와 기계화, 표준화 일변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과 ‘책’을 점점 구분하기 힘들어져간다고 그들은 말한다. 연구자들조차 대화봇에게 속아 밤을 새워가며 연애편지를 쓰거나 침식을 잊고 싸우기도 한다. 대통령이나 유명인 가운데도 로봇처럼 말하는 이가 늘어가고 있지 않은가. 좀비 영화가 바로 그런 세태의 메타포이다. 인공지능은 우리를 위협하는 대신 이렇게 조용히 묻는 듯하다. ‘나와 네가 다른 점이 뭐니?’

참고한 활자:〈가장 인간적인 인간〉(책읽는수요일), 〈워싱턴 포스트〉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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