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3년을 맞아 정책 모음집 〈국민과 함께하는 변화와 혁신, 도약의 길〉을 발간했다. 박 대통령 자신도 지난 2월23일 대한민국 공무원상 시상식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공공기관 정상화, 창조경제, 맞춤형 복지 도입 등을 해냈다”라며 지난 3년을 자평했다. 농담도 곁들였다. “창조경제를 처음에는 대한민국 3가지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했지만 짧은 기간에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진의 평가와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책 효과 사이에는 온도차가 크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3년을 상징적인 숫자로 되짚었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이 2월23일 2016 국정과제 세미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3 정책 효과는 인사에 달려 있다. ‘인사가 만사’라고 불리는 이유다. 4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 관가에서는 여전히 ‘문고리 3인방’ 프레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청와대 문건 유출 파고를 넘은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파워는 최근 엉뚱한 곳에서 다시 불거졌다. 바로 체육계다.

3월10일 이기흥 대한수영연맹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검찰 수사 20여 일 만이다. 검찰은 지난 2월17일 연맹 임원들의 공금횡령 등 비리 혐의를 확인한다며 연맹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나섰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 과정에서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연맹 전무가 구속되었다. 이번 수사를 두고 체육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기흥 회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에 반기를 든 인물이다. 이 때문에 문체부 안에서 실세로 통하는 김종 2차관의 눈 밖에 났다고 본다. 김 차관의 대학(한양대) 5년 후배가 바로 문고리 3인방의 맏형으로 통하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다. 김 차관의 문체부 입성부터 ‘이재만 추천’이라는 꼬리표가 따랐다. 검찰은 비리 첩보에 따른 수사라고 항변하지만, ‘오비이락’ 격 수사 시점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최근에는 문고리 3인방과 함께 우병우 민정수석이 ‘키맨’으로 떠올랐다. 그가 데리고 있던 이영상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지난해 12월 검찰 인사 때 대검찰청 범죄정보1담당관에 올랐다. 전국 검찰 수사 첩보를 총괄하는 주요 보직이다. 그동안 청와대 파견 검사들은, 사표 제출→청와대 근무→검찰 재임용이라는 편법을 써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런 편법을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은 파기되었다. 나아가 검찰 재임용 때 일단 한직으로 보내 일정 기간 ‘신분세탁’을 시키는 관행도 사라졌다. 검찰 복귀 후 곧바로 보직에 앉힌 것이다.

ⓒ연합뉴스안종범 경제수석(왼쪽 두 번째)·우병우 민정수석(오른쪽 두 번째) 등 청와대 참모진이 회의를 하고 있다.

또 국정원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원 2차장은 우 수석의 ‘절친’인 최윤수 검사장이 차지했다. 둘은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사석에선 말을 놓는 사이다. 우 수석의 민정수석 승진 이후 최 검사장도 승진가도를 달렸다. 우병우 수석이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영전한 한 달 뒤 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자리에 올랐다. 최 차장검사가 지휘한 자원개발 비리, 포스코 수사 등을 두고 부실 수사 논란이 일었지만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검사장 승진 두 달 뒤 국정원 2차장으로 이동했다. 현직 검사장이 국정원 2차장을 맡기는 처음이다.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 주요 비리 정보를 한 사람(우병우 수석)과 가까운 이들이 모두 담당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키맨으로 떠오른 우 수석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후반기 권력기관 수장의 면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 강신명 경찰청장, 임환수 국세청장,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등 주요 권력기관 수장을 대구·경북(TK) 출신이 싹쓸이했다. 우 수석도 TK 출신이다.

 

37 윤병세 장관은 3월11일 현재 37개월째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최장수 외교부 수장이다. 윤 장관의 롱런 비결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선호하는 인사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윤 장관은 대선 전부터 박 대통령의 외교 안보 교사 노릇을 했다.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 참여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초대 내각 외교부 수장에 올랐다. 최장수 외교부 장관 기록을 차지했지만, 보수 언론마저 그에게 낙제점을 준다.

ⓒ시사IN 이명익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은 역대 최장수 외교부 수장이다. 오른쪽은 최경환 전 부총리.

미국·일본·중국·러시아와의 외교관계가 큰 그림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며 헝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까이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 포함된 ‘위안부 합의’ 뒤 일본 정부나 언론이 딴소리를 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이나 중국이 주도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여를 두고 갈팡질팡했다. 외교 안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여당에서조차 그의 책임론이 거론됐지만 살아남았다.  

윤 장관은 어떻게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을까? 외교부 출입기자들과 외교부 직원들 얘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이들 사이에는 윤 장관의 업무 스타일을 가리키는 별칭이 있다. 바로 ‘콘클라베(외부와 접촉을 단절한 채 투표로 교황을 뽑는 회의)’와 ‘올빼미’다. 참모진과 밤늦게까지 회의가 잦기에 붙여진 별칭이다. 회의 대부분은 대통령에게 보고 또는 직언을 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게 아니라 ‘받아 적어온’ 대통령의 말을 집행하기 위한 전술을 짜는 데 할애한다는 뒷말이 파다하다. 즉 외교 안보의 중심축이 김장수·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 군 출신으로 넘어갔고, 외교부는 집행기관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런 윤병세 장관에게 요즘 새로운 별칭이 붙었다. 박 대통령과 함께 5년 임기를 채울지도 모른다는 뜻에서 얻은 ‘오병세’다. 장관은 기록 경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집에 담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는 집권 3년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600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1월 7대 경제 성과를 발표했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 실천, 공공개혁으로 국가재정 절약·공공기관 효율화, 창조경제 통한 창업·청년 일자리 창출 본격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로 평생 사회안전망 구축, FTA(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 확대 및 경제 외교 통한 해외 진출 확대, 뉴스테이·행복주택 공급 통한 주거 안정 강화, 농수산업 미래 성장 산업화’ 등이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언론의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피부에 와 닿는 수치부터 살펴보자. 가계부채는 지난해 연말 1200조원을 돌파했다. 2012년 963조원에 비해 3년 만에 250조원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역대 정부와 비교할 때 가장 빠른 증가 속도다.

국가부채도 가파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2012년 말 425조1000억원에서 지난 2월엔 60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예산 386조원의 1.5배가 넘는 규모다. 국가부채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빌린 돈을 합산한 개념이다. 여기에 공기업 부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 초대 경제팀을 이끈 현오석 전 부총리는 출범과 함께 긴축 기조를 밝혔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출범 한 달 만에 17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그를 이은 최경환 경제팀은 경기를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2015년 추경예산 21조원을 비롯해 장관 재임 기간에 무려 95조원을 썼다. 이 같은 재정정책을 두고 비판이 일자 최 장관은 퇴임하면서 “통상적인 속도보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쓴 것은 16조원 정도뿐이며, 이런 마중물이 없었으면 한국경제 성장률은 1%대에서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정부는 우리나라 국가부채 절대 규모가 GDP의 40%대로 아직 양호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가파른 증가 속도다. 2014년 7월 500조원을 넘어선 국가부채가 불과 1년7개월여 만에 100조원 정도 늘어났다. 증가한 국가부채의 여파는 차기 정부가 떠안게 생겼다. 이런 속도라면 2019년에는 채무 규모가 76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9.2 빚내서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특히 지난 3년간 청년 고용에서는 전혀 마중물 노릇을 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청년(15~29세) 일자리 공약을 내세웠다. 공공부문 청년 일자리를 확대하고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등 장밋빛 공약을 내걸었다. 실제로 정부 출범 이후 청년 고용 대책을 잇달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2013년 8.0%였던 청년실업률이 2014년 9.0%, 2015년 9.2%로, 1999년 통계 기준이 바뀐 뒤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 청년 세대가 느끼는 체감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제 청년실업률을 20%대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2015년 9월14일 청년단체 관계자들이 청년 일자리와 관련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년실업률 상승은 지난해 20~30대 청년 가구의 소득 관련 통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2인 이상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소득은 431만6000원으로 2014년보다 0.6% 줄었다. 20~30대 가구 소득이 줄어든 것은 2003년 가계 동향 조사가 시작된 뒤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3년 20~ 30대 가구 소득 증가율이 7.4%였다가, 2014년 0.7%로 증가율이 뚝 떨어지더니 지난해에는 급기야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청년실업률이 끼친 영향으로 풀이된다. 청년실업→소득·지출 감소→경제성장률 감소→고용 감소라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 실업 해결책으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과 노동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또 공공기관부터 민간까지 임금피크제를 확대해 그만큼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노동·공공 분야 구조개혁 핵심 과제인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을 전체 313개 공공기관에서 완료했다”라며 “고임금피크제로 절약한 재원을 이용해 2016년 4441명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비스법이 통과되면 과연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냐를 두고 벌써부터 찬반이 엇갈린다. 청년 고용 통계는 늘지 몰라도, 비정규직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하고 첫 직장을 잡은 청년층 400만명 가운데 20.3%(81만2000명)가 1년 이하 계약직 일자리에 취업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도 신규 채용 청년층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2008년 54%에서 2015년 8월 기준 64%로 10%포인트나 늘었다.

이러한 각종 부정적인 수치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견고하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 지지율 42%에서 시작했다. 같은 시기 김대중 대통령 71%, 노무현 대통령 60%, 이명박 대통령 52%와 비교해보면 가장 낮은 지지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집권 4년차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3%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시기 김대중(71% →27%), 노무현(60%→27%), 이명박(52%→ 43%) 대통령이 모두 하락세를 기록했지만, 박 대통령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소폭 올랐다.

뭘 해도 무너지지 않는 40%대 콘크리트 지지율. 조·중·동 등 보수 언론마저 노골적인 총선 개입이라며 비판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 대통령이 총선 한 달 전 대구 방문을 강행한 데는 이처럼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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