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특집 부록

필리버스터 이후의 민주주의는 다르다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다섯 번의 트림

김광진 의원

은수미 의원

박원석 의원

신경민 의원

전순옥 의원

김용익 의원

권은희 의원

진선미 의원

추미애 의원

홍종학 의원

심상정 의원

임수경 의원

필리버스터 참여 의원

 

 

여러분, 지금 스마트폰에 무엇이 보관되어 있습니까? 솔직히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남부끄러운 아주 유치한 대화도 있습니다. 친구와 나눈 험담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혼자만의 메모도 있고 업무상 중요한 기밀도 있습니다. 20대에나 어울릴 하늘하늘한 봄 원피스를 검색했다가 제 나이를 되돌아보고 후회한 기록도 있고 집에서 혼자 불러서 녹음해본 노래도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국민감시법이 통과된다면 누군가 저의 이런 사생활들을 속속들이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사생활, 여러분의 카톡 대화와 검색 내역도 국정원의 어두운 서랍 속에 들어가 어떻게 저장되고 활용될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책상을 열 번 치셨다고 하셨습니까? 저는 제 가슴을 열 번 치고 싶습니다(가슴을 치며).

제가 19대 국회에서 가장 애쓴 것 중의 하나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 규명입니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법을 발의하기 전 피해자들과 같이 만나서 고민한 것은 4년이 다 되어가고 (관련법을) 발의한 지도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제가 어떻게든 끝내 해결하고 싶은 문제입니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부랑인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납치해 가둔 사건입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강제노역, 폭력, 성폭력에 시달려야 했고 공식적인 피해자들만 513명에 이릅니다.

ⓒ연합뉴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왜 형제복지원에 끌려가게 되었을까요? 바로 ‘의심스러워서’입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부랑인으로 의심되어서 만에 하나라도 사회질서를 해칠까 의심스러워서 형제복지원에 갇힌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집 앞에서 놀고 있던 아이였거나 도시에 왔다 길을 잃은 지방 사람이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역전에서 맴돌던 실업자 빈민이었고 하루의 피로를 술로 풀고 귀가하던 노동자였습니다.

국가의 의심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의심은 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것입니다. 국가는 가난한 사람을 의심하고 약한 사람을 의심합니다.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서 권력 있는 사람들은 의심받지 않았습니다.

해방 후에 극심한 가난과 혼란 속에서 그저 쌀을 얻고자 했던 사람들은 북한군에 합류할 의심이 든다고 학살당했습니다. 국민보도연맹 이야기입니다. 박정희 정권의 편이 아니라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고 의심되어 사법살인을 당합니다. 인민혁명당 사건 이야기입니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탈북한 유우성씨는 간첩으로 의심받아야만 했습니다. 최근의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입니다.

의심받는 사람은 늘 빈민이고 여성이고 탈북자이고 가난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입니다. 의심은 늘 정권의 반대편에 선 사람과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기 십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은 철저히 합리적이어야만 하고 정보관리는 반드시 통제되어야만 합니다. 비합리적인 의심과 통제되지 않는 정보는 권력자가 약자에게 휘두르는 칼이 됩니다. 의심은 합리적이고 평등해야 합니다. 정보를 관리하는 행정부는 국민에게 통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결코 물러날 수 없는 법치주의의 기본원칙입니다.

테러는 정보를 독점하는 비밀스러운 조직에 의해 예방되지 않습니다. 테러는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삶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국민들의 힘으로 예방됩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대한민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국민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움직일 때 막을 수 있습니다. 그 동력은 국민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하고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박근혜 정부는 테러 예방이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국제관계에서의 적을 늘리고 있고 국민에게 더더욱 살기 싫은 사회, 떠나고 싶은 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국민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고 싶다면 국정 방향부터 다시 세워야 합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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