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우리 나이로 87세이셨다. 아버지는 나이 든 이들에게는 집 안의 딱딱한 바닥이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 한 발을 들고 바지를 입으려다가 뒤로 넘어져 머리를 다친 뒤 회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치매 초기 단계여서 아버지 앞에는 험난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의 시간을 많이 단축한 셈이니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3명 중 1명은 매년 집에서 심하게 넘어진다. 영국에서는 1년에 2000명 남짓한 노인이 넘어져서 사망하며, 30만명이 부상을 당한다.

아버지는 허망하게 돌아가셨지만 조상들보다는 오래 이승에 머무셨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71세에 돌아가셨다. 또 그 아버지는 회갑연도 치르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소중하게 간직해온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오래 사셨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30년 차이 나는 나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인구 통계학에서 중요하게 치는 기준 연도인 2050년까지 숨을 쉴 수 있을까. 그러자면 아버지보다 5년 더, 92세까지 버텨야 한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을 세운 로마인의 기대수명은 25세였다. 1900년까지 전 세계 기대수명은 30세에 불과했다. 지금도 빈곤과 기아, 전염병에서 놓여나지 못한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1980년대에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100년 전만 해도 미국은 30%가 넘는 신생아가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죽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오랜 세월 일흔 살 넘은 이는 말 그대로 희귀한 존재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100살 먹은 이를 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게 됐다. 유엔의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전 세계의 100세 이상 노인은 2010년 18만명에서 2050년 35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장수 시대를 선도하는 일본에서는 2050년에 100세 이상 노인이 100만명을 넘어서리라고 본다. 인구 대국인 중국과 인도의 고령화 속도가 일본을 추월할 기세여서 앞으로 이 지구는 그야말로 노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한성원 그림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수백만 년 동안 간신히 종을 보존할 정도의 시간만 주어졌던 인류에게 20세기에 싹이 터 21세기에 활짝 열리게 된 100세 시대는 경이로운 경험이다. 일찍이 죽음이 삶으로부터 이렇게 멀리 도망친 적이 없었다. 한 번도 겪어본 일이 없다는 점에서 빈부 격차나 기후변화와는 또 다른 도전이다. 고령화는 이제 예전처럼 당사자인 노인과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뒤흔들고, 그리고 세계화를 맹렬히 추동해가는 에너지다. 계속해서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영화 제작자와 작가를 먹여 살릴 소재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고령화에 대처하느냐 못하느냐는 기업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될 것이다. 기업 자체가 고령화 문제를 앓고 있기도 하다. 세계 유수 기업의 오너와 임원 중에 100살 안팎의 이들이 늘어간다. 석연치 않아도 그들의 정신이 온전한지 감히 의문을 제기하지 못해 밑에서는 끙끙 앓는다. 자식 세대의 나이가 70을 넘기면서 후계 문제 계산이 복잡해졌다.

고령화는 국적이나 인종, 피부색이나 종교를 모두 뛰어넘어 전 세계 인류를 재배치할 기세다. 전 국민 나이의 중앙값이 50에 육박하는 유럽의 각국은 좋든 싫든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남미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나이의 중앙값이 아직 10대 후반에 불과한 나라가 많은 아프리카의 인구는 곧 아시아 인구(39%)를 뛰어넘을 것이다. 2100년에 10대 인구 대국 중 다섯 자리는 아프리카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 무렵 전 세계 14세 이하의 48%는 아프리카인이리라. 그에 비하면 유럽 각국은 산업의 거의 전 분야가 구인난에 허덕인다. 독일은 수학과 컴퓨터 분야에만 인력이 17만여 명이나 부족하다. 2020년까지 부족분은 4배로까지 늘어날 것이다. 스웨덴 정부가 공식적으로 열거한 숙련 노동자 부족 분야가 수십 군데다.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한 것은 어쩌면 유럽에는 시의 적절했는지 모른다. 무슬림 가운데서는 교육열이 높은 편인 시리아 난민 가운데 5분의 1이 고학력자다. 인류의 발상지라는 아프리카가 다시 전 세계에 ‘종자’를 나눠주게 된 것은 공교로운 일이다.

유럽에서 고령화가 심각하기로는 첫째를 다투는 스페인은 과거의 식민지인 남미에 젖줄을 대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촌처럼 이미 아기 우는 소리가 그친 지 오래인 스페인의 시골은 에콰도르를 비롯해 무려 30여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로 붐빈다. 2050년에 스페인의 백인 인구 6명 중 1명은 과거의 식민지에서 온 남미 여성의 부축을 받으며 산책을 해야 할 것이다. 스페인으로 노동자들이 몰리면서 덩달아 남미의 농촌에도 아이들과 노인만 남게 됐다. 80만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한국으로 몰려가는 바람에 노인과 아이들만 남기고 텅 비어버린 중국의 옌볜 자치구처럼. 아프리카나 남미가 마냥 지구인의 나이를 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이 지역에서도 도시화와 고령화가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 2월22~29일자에서 고령화 문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그동안에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여러 편의 특별판을 선보인 바 있는 이 신문은 건강 문제를 다루는 데 발군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매사가 그렇듯 고령화에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노화와 치매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해온 학계가 몇몇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데 눈길이 간다. 현재 전 세계에서 5000만명이 치매를 앓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은 알츠하이머 환자다. 제대로 된 치료법을 개발해내지 못한다면 그 숫자는 20년마다 배로 불어날 것이다. 본인과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물질적·정신적 손해는 천문학적 수준이다. 알츠하이머는 85세 이상 노인의 3분의 1에게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빼앗아가며 100세 시대란 말을 비웃는 악당이다. 여생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 떨어지게 만드는 기간이 된다면 백수를 누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알츠하이머란 거칠게 말하자면 뇌세포에 아말로이드와 타우라는 단백질이 쌓여 생기는 병이다. 기관차 격인 아말로이드와 객차 격인 타우는 뇌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뉴런 간의 연결 부위를 차례로 덮쳐 엉망으로 만든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 아말로이드와 타우를 무력화하는 약을 개발하려고 고심해왔다. 2000년 이후 200여 가지 약을 임상시험 중인데 아직 ‘은총알’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전문가들이 기대를 거는 약은 스탠퍼드 대학 장수연구소의 지원으로 개발된 LM11A-31이다. 이 약은 쥐 실험에서 아말로이드를 성공적으로 제거했다. 개발자인 프랭크 롱고 박사에 따르면 이 약은 아말로이드를 직접 공격하는 정통 방식 대신 뉴런을 강화하는 우회를 택했다. 인체 실험에 들어간 이 약은 손상된 뇌세포를 되살리는 효능까지 있어서 FDA 승인을 받게 되면 전 세계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는 복음이 될 것이다.

고령화에 드리운 음습한 상업주의의 그림자

다이어트와 운동에 관한 연구가 정리 국면에 접어든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이어트를 할 때 순수하게 칼로리만 계산하는 게 옳으냐는 논쟁은 이제 필요 없게 되었다. 그렇다. 질에 상관없이 무조건 칼로리를 떨어뜨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동안의 연구가 도달한 결론이다. 특히 비만인 사람이 오래 살고 싶으면 체중을 감량하는 수밖에는 없다. 가끔의 금식과 절식도 믿기 어려울 만큼 성인병 요인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극단적으로 칼로리를 줄인 식단을 받아든 생쥐는 순환계와 뼈 밀도가 개선되고 인지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가장 나쁜 일은 앉아만 있는 것이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온종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사람은 죽기로 작정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 사람은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더라도 나쁜 영향을 상쇄하기 힘들다. 의자는 당뇨와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유발하는, 결국 치매에 이르게 하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다. 최근 서서 근무하는 회사가 늘어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나이 든 사람들의 형편이 결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은 나쁜 소식이다. 미국의 경우 주택 소유율은 더 떨어졌고,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률은 1995년 이후 5배나 늘어났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의 늙은 사람들보다 힘들어질 것이란 얘기다. 앞으로 40년을 일하고 30년은 은퇴 생활을 해야 하는데 개인이나 국가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플로리다에 가서 따뜻한 햇빛을 즐기는 구릿빛의 근육질 부자 노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노인들 삶에는 구름이 잔뜩 낄 게 뻔하다.

생쥐 실험 중에는 섬뜩한 것도 있다. 과학자들은 정교한 외과 수술로 늙은 쥐와 젊은 쥐의 순환계를 연결해보았다. 그런 뒤 늙은 쥐의 몸에 칼집을 내봤더니 젊은 쥐와 다름없이 상처가 빨리 아무는 것이었다. 늙은 쥐끼리 순환계를 연결했을 때는 상처가 쉽게 낫지 않았다. 젊은 쥐에게는 세포를 재생하는 어떤 ‘화학적 수프’가 있다고 과학자들은 상상한다. 이 실험은 안티에이징이 매우 끔찍한 방식으로 암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제3세계 어린이와 순환계를 연결한 미국이나 유럽의 부자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 것이다. 1998년 미국 시카고 대학의 리처드 엡스타인 교수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산 사람 것이건 죽은 사람 것이건 상관없이 장기를 매매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고령화에는 이렇듯 음습한 상업주의의 그림자가 언제나 어른거린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세상과 노인의 갈등이 깊어졌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노인에 대한 공경이 깍듯한 일본에서조차 65세 이상 노인 4명 중 1명이 이웃과 말도 하지 않고 지낸다. 한국이라고 형편이 나을 리 없다. 우리나라 노인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대 간 갈등이 도를 넘었다. 노화에 관한 연구는 젊은 층과 노인 모두에게 성질을 죽이라고 소리 지르는 듯하다. 분노와 스트레스는 혈관에 심장병과 치매를 일으키는 독소를 주입하는 것과 같다. 젊어서 노인을 혐오하면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리기 쉽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아버지가 외출하셨다가 외투와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들어오셨을 때 좀 더 따뜻하게 대해드렸어야 했다.

참고한 활자:〈회색쇼크〉(반비), 〈타임〉, 〈이코노미스트〉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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