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최근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최문선·김민선 부부)이 미술계 네트워크를 ‘데이터 마이닝(대규모 데이터에서 체계적이고 통계적인 규칙이나 패턴을 찾아내 분석하는 기술)’으로 이를 분석했다. 주요 전시 정보들을 데이터로 만들어 미술계의 네트워크와 영향력을 나타내는 3차원 지도를 그린 것이다. 이른바 ‘아트솔라리스(artsolaris.org)’다.

이 네트워크 지도를 보면, 10인(김선정·김홍희·백지숙·박찬경·배영환·안규철·양혜규·임민욱·정연두·김홍석)의 미술인들이 강력한 핵심 그룹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미술계의 태양계, 즉 중심 그룹인 셈이다. 이 가운데 김선정 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예술감독,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백지숙 미디어시티서울 예술감독은 기획자이고 다른 사람들은 작가다. 이 중 김선정 예술감독이 두드러진다. 큐레이터들은 주로 함께 전시를 한 작가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되는데, 김 예술감독은 특이하게 다른 큐레이터와도 연결망이 두루 형성되어 있다. 뮌 측은 이런 연결망에 대해, 김 예술감독이 ‘기획자들의 기획자’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시사IN 신선영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의 최문선(왼쪽)·김민선 작가가 아트솔라리스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3차원 지도인 ‘아트솔라리스’가 발표되자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일단 그동안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지목받았던 집단의 네트워크가 지도에 선명하게 드러나버렸다. 이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사들의 네트워크가 의외로 강력하지 않다는 점이다. 뮌 측은 “미술계로부터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자신의 영향력이 너무 낮게 나왔다는 분이 많았다. 우리 의도를 오해하신 듯하다. 이번에 지도를 제작한 목적은 우리 미술계의 폐쇄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몇몇 인사나 집단의 영향력을 나타내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뮌이 아트솔라리스를 만든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기획자와 작가, 평론가 등 미술인 700여 명의 정보를 입력했다. 이들은 점으로 표시되는데, 중요한 전시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점이 커진다. 700회 이상의 전시 정보도 넣었다. 일반 갤러리 전시가 아니라 공적 자금이 투입된 전시였다. 공적인 성격의 전시회를 누가 주로 이끌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같은 전시를 두 번 이상 함께한 기획자와 작가는 선으로 연결했다. 함께한 작업이 많을수록 양쪽의 거리가 가깝고 선도 굵어진다. 타임머신 기능이 있어서 시간에 따른 미술계 네트워크의 변화 과정도 볼 수 있다.

아트솔라리스의 네트워크 형세를 보면 앞서 언급한 10인의 네트워크가 긴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함께 작업한 횟수가 10회 안팎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뮌 측은 이를 ‘감염적 반복 소비’로 정의하며 다음과 같이 관찰 결과를 서술했다.

“이 지도를 보면, 카르텔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미술계에서 하나의 이너서클만 계속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다른 나라의 미술계를 아트솔라리스처럼 정리해도 카르텔이 나오긴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하나로 정리되지는 않을 듯하다. 폐쇄적이고 대중이 소비하지 않는 장르일수록 전문가들의 전횡이 두드러진다.”

뮌을 이끄는 최문선·김민선 부부는 독일 유학 중 만났다. 2001년부터 공동 작업을 해왔다. 그들이 아트솔라리스를 그리게 된 동기는, 귀국한 뒤 만난 ‘보이지 않는 벽’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돌아와 처음 3~4년 동안은 정신없이 작업만 했다. 그러다 문득 끝없이 어디론가 헤엄을 치고 있는데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힘이 빠져서 죽을 것 같은데 건너편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유리천장이 보였다. 그래서 그 실체를 규명해보고 싶었다.”

아트솔라리스에서 뮌의 위치를 클릭해보면 이들의 유리천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들의 관계망은 주류 작가들 못지않게 촘촘히 뻗어 있다. 하지만 함께한 기획자들은 이너서클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 미술가는 “요즘은 해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와서 국내 미술대학원에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뮌이 공개한 아트솔라리스를 보면 김선정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예술감독이 두드러진다.

아트솔라리스의 3차원 지도를 보면 우리 미술계의 학맥도 어느 정도 파악된다. 전체적으로 서울대와 이화여대 출신들이 두드러진다. 미술계의 명문으로 유명한 홍익대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중심에서 떨어져 있다. 이에 대해 한 중견 큐레이터는 “1990년대 중반 서울대와 이화여대에는 세미나 그룹이 많았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활약하며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아트솔라리스 지도를 본 중견 미술인은 두 대학 영향력 말고도 ‘서울예고’ 출신들의 영향력이 크게 나타난다고 평하기도 했다.

뮌은 이런 우리 미술계의 독점 구조를 재벌의 혼맥도에 비유했다. 그들은 “2014년 개인전에서는 삼성의 혼맥도를 네트워크로 분석한 적이 있다. 삼성이라는 재벌이 결혼을 통해 더 튼튼한 구조를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원시적인 결혼 공동체가 구축되는 것을 보면서 매우 본능적이고 살벌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미술계도 함부로 피를 섞고 싶어 하지 않는 재벌의 생태계를 그대로 닮았다”라고 말했다.

“미술계 건강성 보여주는 지표로도 볼 수 있어”

물론 아트솔라리스 지도는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예술인들을 가장 유능한 인사로 간주하는 방법이다. 혹은 네트워크로 얽힌 예술가들이 서로의 미술 세계를 존중해서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트솔라리스를 본 한 중견 기획자는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예전에는 미술계 영향력이 협회를 이끄는 사람이나 대학 교수들에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현장 기획자들이 자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트솔라리스에 나타났다. 지금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도 고작 10년 전까지는 대안적 미술운동을 하던 이들이다. 미술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로도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아직 미약하지만 중심 그룹 외곽에 별도의 자장을 형성하고 있는 미술인도 보인다.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함영준 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가 두드러진다.

다만 아트솔라리스가 한국 미술계의 실제 모습을 나타냈다고 자신할 만큼 충분한 정보량에 기초해 제작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뮌 측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는데, 전시회 홈페이지들이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했다. 심지어 전시회 기획자가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주요 미술상의 추천위원을 파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뮌은 “미술상 관련해서는 심사위원보다 추천위원의 영향력이 더 크다. 국내 주요 미술상은 작가가 응모하는 것이 아니라 추천위원들이 추천한 작품에 대해 심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상의 경우 대다수가 추천위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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