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팝아트 1세대 작가인 강영민은 이른바 ‘잘나가는’ 작가였다. 루이뷔통, DKNY, 뵈브 클리코 같은 명품 브랜드가 후원하는 전시의 단골 작가였다. 낸시 랭, 마리 김 등 유명 팝아티스트와 협업하는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팝아트조합 대표로서 여러 기획전에 단골로 참여했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턴가 산과 들을 떠도는 ‘아웃도어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이제 그의 갤러리는 산과 들이고, 그의 관객은 새와 나무다. 자연의 모습을 닮은 예술을 다시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 보내는 셈이다. 이렇게 자연에서 행한 퍼포먼스를 갤러리에서 중계하며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처음엔 거리 예술이었다. 팝아트조합의 동료 작가들과 팝아트 투어를 다니며 여러 차례 현장 퍼포먼스를 벌였다. 퍼포먼스를 할 때는 주로 한복을 입었는데, 세계문자축제 기간에는 한복여행단과 함께 서울 삼청동 골목에서 훈민정음이 새겨진 풍선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다 ‘지리산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아웃도어 아티스트가 되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이용자들과 지리산 등구재에서 무궁화 심기 퍼포먼스를 하면서 머리와 몸을 함께 쓰는 예술을 시작했다. 작가와 관객이 함께 노동을 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되새겨보는 방식이다. 이후 무등산 산행 퍼포먼스, 일본 가라쿠니다케(韓國岳·한국악)에서 일본과 한국의 구원(舊怨)을 풀어내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시사IN 고재열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의 ‘말라카 기행’에 참여한 팝아트 작가 강영민씨.

강영민 작가의 퍼포먼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애국 코드’다. 그는 “작업할 때 무궁화와 국기를 자주 활용한다. 이 퍼포먼스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애국을 하자’가 아니라 ‘애국을 하자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애국을 희화화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주의라는 대박 콘텐츠를 누군가 독점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는 이유

퍼포먼스를 할 때 강 작가는 한복 중에서도 주로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는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 옷은 100년 전에는 평범한 여학생들의 옷이었다. 그런데 이 옷이 유관순을 뜻하기도 하고 ‘일본군 위안부’를 뜻하기도 하고 때론 조총련 여학생을 뜻하기도 한다. 내 퍼포먼스에서는 ‘가장 약한 존재’를 뜻한다. 그런 여성성을 바탕으로 평화를 얘기하자는 것이다. 강자는 침략하고 분란을 일으킬 뿐이다. 약자가 평화를 원한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2월25일,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의 ‘말라카 기행’에 참여한 그는 말라카(믈라카)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산티아고 요새에서 아시아 15개 국가(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타이완·북한)의 깃발과 아세안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앞에서 정화수를 요새의 화포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번 퍼포먼스에 대해 그는 “동서 문화가 만난 말라카를 장독대로 해석했다. 장독대는 생성과 변화가 발생하는 곳이다. 발효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그 장독대에 정안수를 놓고 기원을 하면 사원이 된다. 제주도 한라산의 눈 녹은 물과 제주 앞바다 물을 담아와서 옛 여인들이 집안의 안녕을 빌었던 것처럼 아세안 국가들의 평화를 기원했다”라고 설명했다.

퍼포먼스에서 흔드는 국기에는 그의 심벌인 ‘조는 하트’가 그려져 있다. “‘조는 하트’는 평범한 시민들의 얼굴을 상징한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그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다”라고 그는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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