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시청 건너편 대한문 앞을 지나다 보수 논객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를 우연히 만났다. 얼굴이 무척 굳어 있었다.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하던 사람들이 법원에서 죄다 유죄판결을 받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박 병역비리 의혹 해결을 위한 최대 집회’라는 제목으로 집회를 열고 있었는데, 20명 정도가 용달차 무대를 중심으로 둘러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변 대표와 사진을 함께 찍어서 SNS에 올렸다. 난리가 났다. 대부분 그에 대한 욕이었다. ‘왜 그런 사람과 가깝게 지내느냐’며 탓하거나 ‘그런 사람과도 가까이 지내다니 놀랍다’며 감탄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가 고기값을 덜 내 이슈가 되었을 때는 고기를 사주고 사진을 올리기도 했는데, 그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한동안 “변희재를 왜 만났느냐”라는 말을 인사말처럼 들어야 했다. 마치 외계인을 만나고 온 기분이었다.

ⓒ시사IN 양한모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변 대표는 나에게 가장 심한 악담을 했던 이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SNS에서 가끔 논쟁을 주고받았는데 그는 내 입에 식칼을 쑤셔넣겠다거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나를 쇠사슬로 묶어 광화문 앞에서 끌고 다니겠다고 겁박하기도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철천지원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대선이 끝난 뒤 우리는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술도 마셨다.

변 대표와 만나면 오래된 친구처럼 사사로운 얘기를 나눈다. 주로 그가 얘기를 하고 내가 들어주는 쪽이다. 가족 이야기부터 성생활까지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그럴 때면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수십 년 뒤 양로원에서 만나서 나눠야 할 후일담을 미리 하는 느낌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도 떠오른다.

그에 대한 SNS의 반응을 직접 보여준 적도 있다. “이거 봐라.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너를 미워하고 있다. 이 ‘부정 에너지’를 잘 활용해봐라” 하고 충고해줬다. 그도 흥미로워했다. 사람들의 뜨거운 험담에 뭔가 뿌듯해하는 눈치였다. 나도 그의 그런 반응을 보며 ‘적과의 소통’을 즐겼다. 유명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자랑이 될 수 있겠지만 악명 높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더 재미있다. 스릴도 있고.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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