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었다. 저건 반대 진영에 대한 전쟁 선포나 마찬가지인데….” 2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 직후 한 야권 전략통은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이 “우리가 지급한 달러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다”라거나 “핵 개발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고 밝힌 대목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북풍 의혹’ 같은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우리가 내부에서 흔들린다면, 그것이 바로 북한이 바라는 일이다”라는 말에 주목했다.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총선에 미칠 파장을 점치며 가뜩이나 예민해진 야권 지지층을 대놓고 자극하는 말이라는 이유였다. ‘북풍 의혹=종북’이라는 엄포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는 “천안함 때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2010년 5월24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그해 3월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였다. 장소는 청와대가 아닌 용산 전쟁기념관. 제6회 지방선거를 겨우 8일 앞둔 시점이었다. 그때도 ‘노골적인 선거용 이벤트’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처럼 야권 지지층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국가 안보 앞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정도가 전부였다. 이 야권 전략통은 “왜 저렇게까지 강경한지 솔직히 해석 불가다”라며 혀를 찼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내부에서 흔들린다면 그게 북한이 바라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초강수 앞에 정치권은 멘탈 붕괴다. 야권은 물론 여권 인사들 중에도 “어디까지 가려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개성공단 자금의 용처를 두고 오락가락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행보에서 보듯 주무부처와 협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기습 강경 조치’였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음모론’이 난무한다.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최대한 경색시켜 ‘준전시 상태’에서 총선을 치르려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상당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국지전 발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터무니없는 소리만은 아니다. 1월18일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긴급 안보당정협의에서도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테러 역량을 결집하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부·여당이 2016년 총선 정국을 안보 이슈로 휘몰아가는 형국이다.

대통령의 이런 초강경 드라이브는 ‘정치권의 상식’과도 어긋난다. 정치 전문가들은 한국의 안보 이슈가 천안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천안함 사태 이전에 북한 문제는 ‘무조건 먹히는’ 선거 이슈였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지형이 달라졌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직후 동아시아연구원·SBS·〈중앙일보〉·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패널 조사에 따르면 후보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는 4대강-무상급식-세종시 사업-전교조 교사 파면- 천안함 사태 순서였다. 당시 모든 언론이 천안함 사건으로 도배되다시피 했지만, 천안함 이슈는 5위에 그쳤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경향이 지지 정당과 무관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지방선거 투표에서 천안함 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율이 민주당 지지자보다 한나라당 지지자가 더 높았다. 전체 응답자의 70%는 천안함 사건으로 지지 후보를 바꾸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주목할 점은 천안함 사건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지지를 바꿨다’는 응답(12.7%)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꿨다’(2.4%)는 응답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천안함 사건을 선거용으로 활용하면서 ‘역풍’이 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조사에서 국정 과제 우선순위 역시 경제양극화 해소(27.3%), 경제성장(16.1%), 국민통합(15.9%) 순서였다. 국가 안보 강화(3.2%)는 남북관계 개선(1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여당이 이런 ‘흐름’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이에 역행하는 초강수를 뒀다. 대체 왜? 정치권 관계자들은 천안함 이후 발생한 몇 가지 변곡점에 주목한다. 첫째, 연평도 포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점, 둘째, 김정은의 권력 세습, 셋째, 종편 개국. 정리하면 민간인 사망과 권력 세습으로 인한 북한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종편이 온종일 부추기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시사IN 조남진2010년 정부·여당이 천안함 사건을 선거용으로 활용했으나 제6회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역풍’이 불었다. 위는 2010년 4월 인양된 천안함 모습.

그 결과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권력 수뇌부가 ‘합리적 행위자’일 수 있다는 가정이 지난 4~5년간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2012년 대선 때는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 논란까지 일으키는 등 ‘반북·반햇볕정책 정서’를 자극하려는 여권의 노력도 꾸준히 축적돼왔다. 즉 2010년 지방선거의 사례를 떠올리며 ‘역풍’을 기대하는 것 역시 안이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안보 드라이브는 흔들리는 고리를 일순간에 잡아 뺀 승부수일 수도 있다.

종래의 이념적 틀 넘는 ‘안보 이슈의 양면성’

안보 이슈가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한울 교수(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는 ‘안보 이슈의 양면성’이 강화되는 추세라고 지적한다. 보수층에서 대북 지원 확대, 진보층에서 한·미 동맹 강화 의견이 늘어나는 등 안보 이슈가 종래의 이념적 틀을 넘어 변화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실용적 또는 양면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정한울 교수는 “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한편으로, 사드 배치를 통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박 대통령이 손해 볼 것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이루어진 2006년 10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 선거를 준비 중이던 박근혜 의원은 “개성공단 등 경제협력을 통해 지원해준 자금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 아니겠느냐.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정부 차원의 모든 대북 지원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며 햇볕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그러나 몇 달 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을 주장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당시 경제공동체 주장은 파격적인 포용정책으로 읽혔다.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 공약은 2012년 대선 때도 되풀이됐다.

그로부터 10년.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남북 경제공동체의 문을 걸어잠갔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같은 ‘그럴싸한 포장지’도 모두 벗겨버렸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나라가 출렁이는 ‘한반도 위기 프로세스’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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