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그 친구가 생각난다. 군에 있을 때 설을 앞두면 하루 날을 잡아 150명이 넘는 부대원 모두가 연병장에 모여 한 명씩 붙들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이 ‘헝거게임’의 마지막 생존자가 일주일 포상휴가를 받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명절을 쇨 수 있었다. 신계에서 노는 메시라고 하더라도 토너먼트는 힘겨워하는 법인데, 그것도 50대50 확률의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그 친구는 두 해 연속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매사에 자신 있었고, 자기에게는 항상 행운이 따른다고 믿었던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게 사실일까.

여러분은 어떤 편인가. 나는 평범하게 운이 좋지 않은 편이다. 1000원짜리 복권을 샀다면 아주 드물게 본전은 건지는 정도랄까. 주변을 보면 유난히 자기는 지지리도 운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천하에 없는 맛집에 가도 곧 밥맛 떨어지는 이유-짜거나 싱겁거나 설었거나-를 발견한다. 찌개나 찜 그릇에서 용케도 철수세미 부스러기를 찾아낸다. 밥을 먹고 나갈 때면 누군가 신발을 훔쳐 갔거나 차 범퍼를 우그러뜨려 놓았다.

‘웃으면 복이 온다’ ‘하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자기계발서의 범람에 질린 나머지 요즘에는 역으로 〈긍정의 배신〉 따위 책이 유행하는데, 균형에 맞는 일이다. 밝게 산다고 해서 좋은 일만 생기리라는 근거는 희박하다. 반대로 자꾸만 좋지 않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 어떨까. 그래도 상관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인생에서 비참하고 초라한 면만 확대해 보는 습관이 있다면 삶은 피폐해지고 만다.

ⓒ한성원 그림

현대 심리학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인간 심리의 5가지 특성을 분류해냈다는 점이다. 해부 없이 인간의 뇌를 스캔하는 기술과 유전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덕분이었다. 구조화된 설문과 상담만으로 인간의 성격을 분석하고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된 이 빅5 이론 덕분에 심리학은 당당히 하드 사이언스의 영역에 들어갔다. 이 빅5를 공부하면 사실 웬만한 점쟁이 코는 납작하게 만들 정도로 인간의 성격과 운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내게는 나쁜 일만 벌어진다고 여기는 이들은 인간의 5대 성격 중 특히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이다.

신경성이란 인간이, 아니 모든 동물이 거칠고 위험한 자연에서 생존해오면서 장착하게 된 중요한 능력이다. 일종의 화재경보기다. 포식자가 나타나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기 전 이 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린다. 끊임없이 불안에 떨면서 목을 좌우로 돌리고 귀는 쫑긋 세우는 바로 그 힘이다. 이 경보기의 성능이 좋지 않으면 어려서 부주의하게 물놀이를 하다가 빠져 죽거나 주말 고속도로에서 곡예운전을 하다가 대형 사고를 내기 쉽다. 고산 등반이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 가운데 신경성 수치가 낮은 사람이 특히 많다. 이 경보기가 너무 민감해도 탈이다. 스프링클러가 자주 터져 삶이 아수라장이 된다. 걱정·불안·두려움·슬픔·우울을 삶의 장식품처럼 달고 산다.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질이 좋지 않은 연인이나 친구에게 휘둘리는 일이 반복된다. 당연히 지독하게 운이 나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 얻어맞아 찢어지고 멍이 든 상처 자국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분노하기보다는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며 체념한다.

이 신경성 수치를 인위적으로 높여본다면 어떨까.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의미심장한 답을 내놓았다. 실험실에서 쥐에게 계속 전기 자극을 가하면(학대하면) 일찍 죽어버렸는데 해부해보니 내장이 모두 상해 있었다. 단장의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쥐 두 마리에게 같은 자극을 가했더니 서로 피나게 싸웠지만 죽지는 않았다. 해부해보니 내장도 멀쩡했다. 연구를 확대해보고 나서 학자들은 거의 모든 동물이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으면 살기 위해 다른 개체에게 보복을 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인간을 상대로 비슷한 실험을 할 수야 없겠지만 역사는 인간 역시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어느 문명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희생 제의가 그것이다. 문명의 말기(인재와 천재가 겹쳤을 것으로 추정된다)에는 특히 대규모의 인신공양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이교도와 이민족에 대한 박해와 살해로 얼룩져 있기도 하다.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식량난이 닥쳤을 때에 특히 피가 많이 흘렀다. 무슬림과 유대인, 흑인, 그리고 식민 지배하의 거의 모든 피지배 민족이 분풀이 대상이 되어 억울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타이완의 저명한 인문학자 양자오 씨가 지적한 대로 100년도 훨씬 전에 마르크스가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국경을 허물고 아무 나라나 제집처럼 드나들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이 몰락한 뒤부터, 마르크스의 이론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던 즈음부터 세계화가 눈부시게 진행된 것은 공교로운 일이다.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세계화가 가져온 결과는 공포스럽다. 국경이 무너지면서 권력과 정치가 분리되었다. 각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는 지역 정치인으로 강등됐다. 정치는 섣불리 권력의 문제, 즉 경제 문제, 특히 소득양극화를 다룰 수 없게 됐다. 특이하게도(자본에게도 조국은 없으니까 당연하게도) 국가 간 빈부 격차는 살짝 줄어든 반면 개인 간의 불평등은 아찔하게 커지는 형국이다. 약자와 최빈곤층뿐만 아니라 모두의 안전핀이던 복지가 제거되었고, 불안만이 공평하게 세계화되었다.

학자들은 제1세계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발밑이 유동화하면서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이 호소하는 것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는 데 당혹스러워한다. 빈곤, 비만, 살인, 유아사망률, 정신적·감정적 불안정, 상호 신뢰의 실종 등등. 특히 불평등의 정도가 심각한 미국·영국 등에서 사회적 질병의 목록은 점점 길어져만 간다. 빈곤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화 시대의 사회 불평등을 다룬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200년 전 공산당 강령을 탄생시킨 빈곤, 기아, 굴욕, 인간 존엄에 대한 부인이 지금은 더 노골적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2009년 영국에서는 1만4000명에 이르는 아동이 무료 급식 대상이었다. 미국에서는 인구의 4분의 1이 정신건강상 문제가 있으며, 10만명당 500명이 감옥에 갇혀 있다.

기성 정치권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빈부 격차를 외면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전 세계의 유권자 중 점점 더 많은 수가 질이 좋지 않은 ‘연인’에게 걸려들어 휘둘리게 됐다. 특히 유럽의 젊은 유권자마저 ‘지식인은 기득권 세력이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르트르의 가르침을 따랐던 유럽의 엘리트 정치인과 결별 수순을 밟는 것은 충격이다(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된 풍경이긴 하다). 미국과 유럽의 언론이 포퓰리스트라고 표현하는 극우 정당 정치 지도자 명단이 늘어만 간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의 자존감은 또 얼마나 추락할까

유럽에서 기세를 올리는 포퓰리스트 정당은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의 인민전선만이 아니다. 폴란드·헝가리·덴마크·스위스에서 외국인 혐오를 기치로 내건 극우 정당이 이미 권력을 잡았거나 연립정부의 일원으로 권력을 분점하고 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는 극우 정당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한때 신나치와 연계된 스웨덴 민주당(SD)도 여론조사에서 지지도 1, 2위를 다툰다. 이탈리아에서는 노골적인 분리주의자인 마테오 살비니가 이끄는 북부연맹이 여론조사에서 16%의 지지를 얻는 약진을 했다. 유럽의 극우와 마찬가지로 포퓰리스트로 분류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 벤 카슨은 공화당 예비선거전 여론조사에서 모두 합쳐 50% 이상의 지지율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답게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기성 정당 안에서 극우 정치인이 기세를 올린다는 점이 유럽과 다르다. 9·11 이후 미국에서는 40만명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대개가 경제적인 이유였다) 그중 지하디스트에게 살해된 사람은 45명이었다. 그런데도 미국 유권자의 최우선 관심사는 테러이다.

그리스에서 출발한 유로화 위기에서 동력을 얻고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난민이 몰려오며 슬금슬금 존재감을 키우기 시작한 미국과 유럽의 극우는 파리 테러를 계기로 총궐기를 한 모양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두려움에 떠는 유권자에게 극빈자와 이민자, 그리고 약자와 그 어린 자식들을 희생양으로 던져주려 한다. 예전에 나치가 제1차 대전에서 패배한 뒤 패닉에 빠졌던 독일 국민에게 유대인을 제물로 바쳤듯이 그들은 무슬림과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정치 기반으로 삼으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 무대에는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동력으로 삼는 위험한 정치세력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관용이나 포용보다는 배제와 증오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그들은 IS와 본질적으로 같다.  

이건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황이다. 전쟁을 겪었고 휴전 상태에서 계속 북측과 무력 대치해왔으며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강대국에 시달리느라 우리의 신경 수치는 낮아질 날이 없었다. 자존감이 떨어져 질 나쁜 지도자의 폭력에 시달리는 일을 악몽처럼 반복해왔다. 환란까지 겪어 우리나라의 사회적 질병 리스트는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1월8일로 서른세 살 생일을 맞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결국 수소탄 실험을 강행했다. 특유의 배제와 증오의 통치술이다. 조국이 수소탄의 장쾌한 폭음을 울리기 얼마 전 북한의 어로공들은 10m쯤 되는 낡아빠진 목선을 타고 할당량을 채우러 바다에 나갔다가 백골이 되어 일본 해안으로 떠내려왔다. 지난해에만 38척이다. 북한은 그들의 신병을 인수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자존감은커녕 그들의 존재감조차 없음에 가슴이 아리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의 자존감은 또 얼마나 추락할까. 유럽이 극우에 점령당하는 가운데서도 독일, 발칸 반도 국가들, 스페인은 유혹을 이겨냈다는 점을 기억하자. 모두 전체주의를 따랐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국가들이다. 우리에게도 참담한 기억이라면 남 못지않게 많지 않은가. 우리가 못나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고 주문처럼 외워본다.

참고한 활자:〈이코노미스트〉, 〈인디펜던트〉, 〈워싱턴 포스트〉, 〈부수적 피해〉 (민음사)

기자명 문정우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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