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를 읽어보면 우리가 알았던 그 김구가 아니다. 온화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좌충우돌 다혈질 청년이 있다.” 백범 김구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백범일지〉를 읽은 한 영화 제작자의 평이다. 마침 〈백범일지〉 영인본(1947년 국사원이 편찬한 〈백범일지〉 초판본을 복제한 것)이 나와서 읽어보았다. 정말 그랬다. ‘이 책을 청소년한테 읽혀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제적 남자’였다.
행패 부리는 양반을 보면 흠씬 두들겨 패야 직성이 풀렸던 아버지를 닮아 어린 백범도 다혈질이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몇 대 맞고 왔다고 집에서 식칼을 훔쳐 복수하러 갔다. 동학에 입도한 후 청년 접주가 되었지만 패전만 기록했다. 일본인을 죽이고 인천 옥에 갇혔을 때는 잡범들과 탈옥을 감행했고, 마곡사에서 스님으로 입적한 뒤에도 술 마시고 시 짓는 파계승이 되었다.
마치 개화기 청소년의 모험기 같은 〈백범일지〉를 읽다 보면 그 안에서 백범이 민초들과 어우러져 함께 웃고 함께 울며 깨달은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양반만 없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일본인만 죽이면 망국을 극복할 줄 알았던 다혈질 청년이, 세상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며 사상을 정립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백범일지〉를 쓴 것은 아들 신과 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들려줄 유서 목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무척 진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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