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서울시의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교육과정) 예산은 0원이다. 이대로라면 2016년부터 서울에 사는 아동은 어린이집 보육료를 전혀 지원받지 못한다. 서울만이 아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경기·강원·광주 등 7곳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경남과 제주는 2개월분만 편성했다. 나머지 지자체 중에서도 한 해 예산 전부를 편성한 곳은 없다. 학부모들은 ‘보육대란’을 우려하고 있다.

당장 1월 초부터 상황이 급변하지는 않는다. 현재 보육료는 ‘아이행복카드’로 납부하게 되어 있다. 다른 신용카드와 마찬가지로 비용이 추후 청구되기 때문에 1월 보육료까지는 ‘긁을’ 수 있다. 1월 이후 예산이 동나더라도 학부모가 직접 보육료를 결제하는 일은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무상보육은 법으로 규정한 사항이라 부모가 아이행복카드 이외 다른 수단으로 직접 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현 제도상 보육대란은 단순히 가구당 보육료 증가가 아니라, 아이 맡길 곳이 사라지는 상황을 뜻한다. ‘무상보육’이기 때문에 ‘보육’할 수 없는 역설이다.

보육 예산을 둘러싼 갈등은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2014년 11월에도 전국 시도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 일부만 편성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나머지 예산은 ‘땜질’로 해결했다. 국회 예산심의를 통해 교육부가 목적예비비 5064억원을 지원하고, 시도 교육청은 지방채 약 1조원을 발행했다. 중앙정부의 우회 지원과 지방 교육청의 빚으로 임시변통한 셈이다. 정부에서 내놓은 해결책은 이번에도 같았다. 여야는 목적예비비 3000억원에 합의했고, 교육부는 지방 교육청이 지방채 3조9000억원을 발행하도록 허가했다. 야당은 2016년 예산에 누리과정 항목을 신설하자고 주장했으나 여당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합뉴스정부와 각 교육청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갈등으로 보육대란이 우려된다.

그런데 교육감들의 태도가 2014년보다 완강하다. 12월23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정부가 지방교육 재정이 파탄 상태에 이른 현실을 왜곡하고 누리과정 예산의 미편성 문제를 일부 시도 의회와 교육청 책임으로 떠넘겼다”라고 주장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12월21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반면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12월24일 “누리과정 예산을 우선 편성하는 건 교육감의 핵심 책무다. (교육감들이) 사랑채를 빌려줬더니 안방까지 내놓으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과 지방 교육청의 충돌은 관련법 해석에서 비롯한다. 현행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은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에서 전액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5월에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비용을 교육청의 의무지출 경비로 못 박았다. 정부와 여당은 이 조항을 근거로 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이 의무라고 주장한다. 무상보육은 최우선적으로 예산을 편성해야 할 의무 사업이라는 설명이다.

교육감들은 해당 시행령이 ‘상위법 위반’이라고 반론한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1조는 교육교부금이 교육기관을 지원하는 기금이라고 명시한다. 교육청이 교육교부금으로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을 지원하게 한 지방재정법 시행령은 상위법에 어긋난다”라고 밝혔다.

관련법이 명목이라면, 실질적 갈등 원인은 사업비용이다. 2015년 누리과정 예산은 약 4조원으로, 2011년 첫 도입 당시의 5배에 달한다. 정부는 국고에서 상승분만큼 지원하고 있어 무방하다고 본다. 12월16일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누리과정 예산편성 긴급현안점검’에서 “2012년 이후 교육교부금을 단계적으로 확대 지원했다. 2016년에는 1조8000억원이 증가될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목적예비비 3000억원을 우회 지원하고,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하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연합뉴스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이재정 경기교육감.

교육교부금, 세수 감소로 예측과 10조원 차이

그런데 교육교부금은 정부에서 임의로 늘리거나 줄이는 예산이 아니다. 법은 교육교부금 액수를 ‘내국세의 20.27%+교육세 전액’이라고 정한다. 내국세 세수라는 변수에 기댄 예산이기에 실제 누리과정에 들어가는 비용과 차이가 난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장휘국 광주광역시 교육감은 12월23일 “2015년 교육교부금은 전년 대비 3.6% 감소한 39조4000억원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예측한 49조3954억원과는 10조원가량 차이가 난다. 차액은 고스란히 교육청이 메운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2016년 교육청 부채비율이 50%에 육박한다”라고 말했다.

정책 설계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육아연)는 2014년 〈무상보육 이후 보육정책 방향 연구〉를 발간했다. 연구는 현행 무상보육 정책에 대해 ‘예산의 규모에 부응하는 정책성과가 아님’ ‘재정지원 방식의 효율성·효과성 점검 필요’라고 밝힌다. 소득 하위 70%에게 지원하던 보육료를 전 계층으로 확대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다. 교육감들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표를 얻기 위해 일단 일을 벌였는데, 재정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처럼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정책은 언감생심이다.

1월 이후에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으면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11월9일 “누리과정 예산과 교육청 전출금은 같은 법정 전출금이기 때문에 상계처리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경남교육청이 2016년 누리과정 어린이집 예산 편성을 거부하자 경남도는 직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했다. 대신 그 액수만큼 교육청에 보내야 하는 법정 전출금을 삭감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일보〉는 12월24일 ‘교육부도 같은 해법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12월24일 기자회견에서 “교육감들이 학부모 불안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재의 요구, 대법원 제소 등 여러 방법을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KBS 대선후보 TV토론 갈무리0~5세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한민련) 장진환 회장은 “1월 중순쯤 ‘예산이 없어서 학부모가 보육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공문을 배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보육료 학부모 부담이 위법인 상황에서 일종의 ‘SOS 신호’로 읽힌다. 한민련은 지난 10월에도 총파업을 계획했으나 참여가 저조해 파장이 크지는 않았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학부모들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설마 했는데 이제 정말 위기가 코앞에 닥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학부모들은 불안한 2016년을 맞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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