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준씨(가명). 35세. 네 살 아이의 아빠. 지난 반년 내내 ‘메르스 80번 환자’로 불리던 사람. 단 8일을 제외하면 6개월 동안 병실에 격리돼 있던 그가 11월25일 눈을 감았다. 가족들은 흰색 레벨 D 방호복을 입은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장례도 ‘메르스 장례식’이었다. 시신이 된 뒤에도 12시간을 병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관이 지나는 길 뒤로 소독약이 뿌려졌다. ‘방수용 시신백’에 이중으로 싸인 김씨의 몸은 24시간 만에 화장됐다. 그토록 싫어하던 콧줄이며 소변줄을 다 꽂은 채였다.

김씨가 숨진 지 2시간30분 뒤, 국가 기간통신사 〈연합뉴스〉는 김씨가 숨진 사실을 보도하면서 “[단독] 마지막 메르스 환자 숨져… 6달여 만에 메르스 ‘제로’”라는 제목을 달았다. 12월1일 보건 당국은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관심’으로 하향 조정했다.

 

ⓒ시사IN 윤무영김동준씨(35·가명) 부인 배지현씨(36·가명)가 <시사IN>과 인터뷰 하고 있다.

세상은 김씨를 ‘메르스 80번 환자’라고 지칭하고 그의 죽음을 ‘메르스 제로’라고 번역했다. 세계 최장 기간 메르스 음성과 양성을 오간 환자이자, 기저질환 림프종을 앓던 환자로 기억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지난 반년을 다 담고 있는 얘기 또한 아니다. 김씨와 그 가족이 겪은 시간을 되돌아보면 지침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외주’만 주는 보건 당국의 민낯과 만나게 된다.

● 확진

김씨는 2006년 배지현씨(36·가명)와 결혼했다. 2012년 아들 지훈(가명)이 태어났다. 2014년 4월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에 들어갔고, 11월 말 자가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에 성공했다. ‘관해.’ 암세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퇴원해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며 추적 관찰을 이어갔다. 이대로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터였다. 치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연합뉴스6월10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음압병실에서 병원 관계자가 메르스 확진 환자를 돌보고 있다.

2015년 5월27일 김씨가 감기 증상으로 삼성서울병원 외래 진료를 받으러 가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병원은 김씨가 폐렴일 수 있다며 입원실 자리가 없으니 응급실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3일간 대기했다. 침대가 없어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메르스 ‘슈퍼 전파자’ 14번 환자가 머무르던 그 시간, 그 장소다. 김씨는 이때 메르스에 감염된다.

14번 환자는 국내 첫 메르스 환자(1번 환자)와 같은 시기 평택성모병원의 같은 병동 다른 병실에 입원한 환자다. 그런데도 전국에서 네 번째로 붐비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3일간 머물렀다. 보건 당국은 지침에 적힌 ‘2m, 1시간’이라는 기준에 따라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쓴 환자만 격리했다. 그 탓에 14번 환자는 보건 당국의 방역 관리망 밖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시사IN〉 제405호 ‘삼성서울병원의 한 달 무슨 일이 있었나’ 기사 참조).

보건 당국은 환자가 병동 안에서 움직였을 가능성, 일선 병원의 감염 관리가 부실했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페이퍼상의 ‘지침’을 따랐다. 그 결과 14번 환자는 단일 감염원 중 가장 많은 확진자를 발생시킨다. 그 확진자 중 하나가 김씨였다. 김씨는 6월6일 격리되고 6월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 격리

김씨에게 찾아온 것은 메르스만이 아니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머물렀던 이후 증세가 악화된 김씨는 6월1일과 6월2일 항암 치료의 기초가 되는 컴퓨터 단층촬영(CT)과 양전자 단층촬영(PET)을 했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림프종 재발이 의심되지만, 검사 결과 당장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일단 메르스가 같이 온 상황이니 메르스부터 잡자’고 판단했다. 김씨는 음압병실이 없는 삼성서울병원에서 1인실에 격리된 채 메르스 대증(對症)치료만을 받았다. 김씨는 7월3일 서울대병원 음압병실로 옮겼다. 서울대병원도 ‘일단 메르스부터 치료하자’고 판단했다. 한 달 넘게 메르스 대증치료를 이어갔다.

그런데 김씨의 상태가 점점 악화됐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혈액검사 결과 림프종 재발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7월17일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메르스에 감염된 만큼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항암제를 쓴다고 했다. 부작용이 심했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항암 치료를 잠시 중단했다가 용량을 줄여 재개했다. 이번엔 잘 듣는 듯했지만, 또 연기됐다. 메르스부터 잡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항암 치료를 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메르스가 완치되지 않는 딜레마였다.

음압병실에 격리된 상태에서 받는 치료는 일반 암환자에 비해 제약이 있었다. 아내 배씨는 “환자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검사실이 빌 때 검사를 받았다. 격리된 상태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홍보팀은 “격리로 인해 많이 불편하고 제약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검사의 경우 격리되어서가 아니라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서적 문제도 컸다. 보호자 면회가 금지된 6월 중순 이후 김씨는 홀로 고립된 채 림프종과 싸워야 했다.

ⓒ시사IN 자료‘80번 메르스 환자’ 김씨는 서울대병원(위) 음압병실에 두 차례에 걸쳐 격리되었다.

● 해제

8월부터 김씨의 메르스 PCR 검사(가래 등 검체에서 극소량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복제해 증식시키는 방법) 결과가 음성과 양성을 오가기 시작했다. 8월11일, 12일, 13일. 김씨의 서울대병원 PCR 검사 결과 사흘 연속 음성이 나왔다.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의 메르스 대응 지침을 보면 PCR 검사 결과 ‘24시간 간격으로 2회 음성’이면 입원 해제 기준을 충족한다. 그런데 질본은 김씨의 격리를 해제하지 않았다.

질본 관계자는 11월20일 가족과의 면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어떻게 했냐면 이 환자(김씨)가 계속 끊임없이 어떤 상태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질본이랑 서울대랑 동시에 PCR 검사를 했다. ‘연속해서 2번이 서울대랑 NIH(질본 국립보건연구원)랑 똑같이 나올 때 (해제)한다’였다. 다른 분들은 한쪽에서 두 번 나오면 해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새 기준’은 근거가 없다. 당시 적용됐을 8월4일판 메르스 지침에는, 이 관계자가 말한 ‘병원과 질본 검사 동시충족’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질본과 서울대는 8월 초부터 김씨에 대해 PCR 검사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 그런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시사IN〉은 질본과 서울대병원에 이를 문의했으나 둘 다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당시 다른 메르스 감염자들은 8월4일판 지침이 규정한 ‘24시간 간격으로 2회 음성’ 기준을 병원과 질본 중 한쪽에서만 충족하면 입원 해제 자격을 얻었다. 김씨에게만 ‘특별한 기준’이 적용된 셈이다. 환자 가족은 메르스 격리 때문에 암 치료가 지장을 받는다고 확신했고, 격리 해제에 암 치료 성패가 달려 있다고 믿었기에 절실하게 매달렸다. 아내 배씨는 8월24일 서울대병원 의료진에게 격리 해제 기준을 정해달라고 항의했다. 배씨가 제공한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혈액종양내과 A교수:질본이 예전에 제시한 기준을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격리가 해제되지 않는 것이) 상당히 억울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환자를 위해 빨리 정리해줘야 한다. 환자 인권도 중요하고 지금처럼 애매한 기준을 강요할 수 없다. 국가가 그런 기준을 정하지 못해서 환자가 피해 보는 상황은 옳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감염내과 B교수:저희가 원장님한테도 부탁해서 질본에 금요일 다시 한 번 요청을 했는데 아직 답이 없다. (격리 해제 기준을) 하일리 센서티브하게(고도로 민감하게) 잡고 있는데 완화할 필요 있는지 (중략) 다시 우리 병원 기준으로 48시간 이상 간격으로 네거티브(음성) 되면 그땐 질본에 강하게 다시 요구하려 한다.

아내 배씨:그 요구하는 사이 다른 이벤트가 생길까 걱정이다. 기준을 미리 협의해야 하지 않나?

감염내과 B교수:그것도 맞는 말이다. 저희 할 수 있는 한에선 질본에 계속 얘기하고 있고 (중략) 의료진 입장에선 저희도 똑같은 답답한 마음이고, 보호자분이 강하게 요구한단 사실을 한 번 더 질본에 강력히 요청하겠다.

 

이 시점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에서 질본 기준을 만족하는 결과가 나와도 질본은 격리를 해제하지 않는다. 한참의 밀고 당기기 이후에야 서울대병원과 질본은 다른 환자처럼 24시간 간격 2회 음성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다. 서로 각각 채취하던 검체도 9월18일 이후 하나로 통일한다.

9월30일과 10월1일 서울대병원과 질본 두 곳에서 음성 2회 결과가 나온다. 질본은 10월1일 김씨의 격리를 해제했다. 아내 배씨는 “남편분은 앞으로도 음성·양성이 반복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PCR 검사는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설명을 서울대병원 의료진으로부터 들었다. 격리 해제된 이틀 뒤인 10월3일 김씨가 퇴원했다.

ⓒ연합뉴스10월12일 양병국 질병관리본부 본부장(가운데)이 메르스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메르스 80번 환자가 서울대병원에 재입원했다”라고 밝혔다.

●  재격리

김씨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밥을 함께 먹고, 식기와 수건을 같이 썼다.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10월6일 서울대병원 외래 진료를 받았다. 10월14일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암병동을 방문해 입원할 예정이었다. 퇴원 8일 뒤인 10월11일 김씨가 걸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위중한 상태가 됐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삼성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이 병원 응급실을 거쳐 서울대병원 음압병실에 다시 격리됐다. 이 과정에서 메르스 PCR 검사가 진행됐다. 10월12일 서울대병원과 질본의 PCR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왔다. 이후 김씨는 쭉 양성과 음성 결과를 반복해 보이게 되는데, 종전과 달리 음성이 2~3일씩 연속으로 나와도 보건 당국은 김씨의 격리를 해제하지 않았다.

왜 격리를 해제하지 않았나. 질본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설명 자료에 나와 있는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보건 당국이 11월16일 낸 보도 설명 자료에서 격리를 해제하지 못하는 이유로 든 것은 두 가지다. 하나, 양성과 음성 결과가 반복해서 오간다. 둘, WHO가 80번 환자에 대한 감염 관리 철저를 권고했다. 양성과 음성이 반복된 건 8월부터 일관된 패턴이었는데 왜 10월1일에는 격리를 해제하고 10월11일에는 음압실에 격리했는지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가장 밀접 접촉자인 아내 배씨는 재입원 이후 받은 메르스 항체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고, 김씨 재격리 때의 관련자 129명 모두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김씨는 감염력(다른 환자를 감염시킬 위험)이 없다고 사실상 증명된 게 아니냐는 것이 가족의 주장이다. 질본에 따르면 WHO는 음압병실 격리를 특정해 권고한 적도 없다.

10월1일 격리 해제 시점과 10월11일 재격리 시점에 김씨의 메르스 감염력에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또 다른 질본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감염력의 차이보다는 그냥 그 결과 자체로 대응 프로세스가 돌아가게 된다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음성 이후 양성이라는 케이스에 대한 지침이 따로 제시된 건 아니어서, 양성 결과에 맞는 지침대로 진행이 됐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있다. ‘대응 프로세스’다. 대응 지침상 PCR 검사 결과 양성이면 격리를 하게 되어 있으므로 격리를 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격리 해제에 대해선 지침대로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지침에는 양성 결과가 나온 환자를 격리하는 프로세스는 적혀 있지만, 음성·양성을 반복하는 환자가 재양성이 됐을 때 어떻게 하라는 얘기는 없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초반의 방역 실패로 권위를 잃은 질본이 이후 메르스 국면 내내 민간 전문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도망갔다. 80번 환자의 경우도 질본이 그런 기조를 유지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게 풀어줬다가 아웃브레이크(발병)가 생기면 누구 책임인가. 하지만 최소한 ‘민간 전문가와 상의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방역 기준상 이 사람이 풀려나왔을 때 만약에 한 명이라도 아웃브레이크가 발생하면 큰 문제니까, 우리 입장에선 지금 풀 수 없겠다’고 질본이 결론 내고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안 했다. 면피하려고 도망만 다녔다.”

음압병실과 생일 케이크 등 생전의 김씨가 올린 인스타그램 사진. 마지막 생일이 된 10월13일 아내 배씨와 아들 모두 자가격리 상태였다.

● 핑퐁

그 결과 환자 가족은 질본과 서울대병원 사이에서 격리 해제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이리저리 호소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의 절규에 답을 주지 못했다. 서울대병원에 격리 해제 기준을 논의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묻자, 10월21일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아내 배씨에게 질본 담당자 전화번호를 줬다. 그날 이후로 전화와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를 수없이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가족과 지인에게도 부탁했지만 그들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11월19일.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그날 첫 번째 전화 주실 때 지인 여러분이 하도 하셔서 하루 이틀 수신거절을 해놔서 이 번호가 환자분 가족 되시는 번호인지 제가 잘 몰라서 그렇게 했어요.”

격리 해제를 판단할 주체는 보건 당국이다. 하지만 보건 당국과 서울대병원은 책임 떠넘기기에 들어갔다. 가족이 서울대병원에 격리 해제나 적어도 완화를 호소하자,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C교수는 11월10일 가족과의 면담에서 “모든 언론이 보는 앞에서 정식으로 감염내과 의견을 브리핑했다. 그 이상 어떻게 더 공권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나. 결심은 공권력을 가진 정부가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한 달 전인 10월12일 브리핑에서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김씨에 대해 이렇게 브리핑한 적이 있다. “메르스 감염력이 거의 0%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체내에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있다고 보고 있지 않다. (PCR 양성반응에 대해서는) 호흡기 세포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유전자 조작이 발견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보건 당국은 의료진에 책임을 떠넘긴다. 11월20일 질본과 가족의 면담 자리에서 질본은 “제로라는 말씀은 다른 전문가들이 못한다. 제로라고 하셨으면 벌써 (격리 해제) 했다. 사실 이분에 대해서 지금 스탠스는 일단 ‘어느 정도까지 계속 음성이 명확하게 몇 번 나와야 된다’ 이런 기준은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의료진이 100% 책임지지 않는 한 격리 해제는 없다는 얘기다.

면담에서 질본 관계자는 오히려 환자 탓을 하기도 했다. “서울대병원으로 바로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 부분이 참 아쉽다. 여기(서울대병원)는 진료하시던 분들이라 이 상황을 아시는데, 거기(삼성서울병원)선 PCR 검사를 하니까 보건 당국 입장에서는 방역을 치는 수밖에 없었던.”

병원 현장에서 메르스 PCR 검사가 일단 진행된 이상, 질본은 정해진 절차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석 달째 PCR 결과가 오락가락했던 김씨의 상태를 알면서도 질본은 ‘절차’의 뒤에 숨었다. 이 “참 아쉽다” 발언의 정확한 의미를 묻는 〈시사IN〉의 질문에 해당 관계자는 “기저 질환을 치료받던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지 않고 계속 받았다면 결과가 더 좋지 않았겠느냐는 뜻에서 한 말이다. 더 이상 답변 없다”라고 말했다.

질본과 연락이 되지 않는 동안 아내 배씨는 국민권익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에 이리저리 전화하고 글을 썼다. 소관이 아니라는 답만 들었다. 배씨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기자회견이었다. 11월25일 오전 11시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날 새벽 3시6분 남편 김씨는 세상을 떠났다. 보건 당국은 배씨에게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 보내지 않았다. 배씨는 보건 당국의 애도를 신문기사로 접했다.

아내 배씨는 “화장터에 가는데 노란 선을 그었다. 관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음압실일까, 죽어서도 음압실일까. 이중 패킹해 화장하는 상황까지 올까… 100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했는데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로 갔다. 왜 이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조차 가족들의 따뜻한 인사 속에서 가지 못했는지, 이 나라가 한 사람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배씨는 법적 싸움을 고려하고 있다. 주변에서 ‘지는 싸움’이라고 말렸지만 개의치 않는다. 아들을 위해서다. “이다음에 아들한테 설명할 때 ‘아빠 덕분에, 엄마가 열심히 세상에 알려서 이 나라가 조금은 변했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

 

김동준씨(가명·80번 메르스 환자) 일지
2014년 4월 림프종 진단받음
2014년 11월 자가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 성공해 ‘관해’ 판정
2015년 5월27~29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대기한 뒤 자리 없어 퇴원
2015년 6월1일 삼성서울병원 입원
2015년 6월2일 삼성서울병원 1인실 이동해 입원
2015년 6월6일 삼성서울병원 1인실 메르스 격리 시작
2015년 6월7일 메르스 확진
2015년 7월3일 서울대병원 음압병실 격리됨
2015년 7월17일 서울대병원 의료진, 림프종 재발에 대한 항암 치료 시작
2015년 8월11~13일 서울대병원 PCR 검사 결과 메르스 음성임에도 격리 계속(이후에도 서울대병원 PCR 검사 결과 2회 음성 나왔으나 격리 해제 안 함)
2015년 9월30일~10월1일 서울대병원·질병관리본부 PCR 검사 결과 2회 음성, 격리 해제
2015년 10월3일 서울대병원 퇴원
2015년 10월11일 삼성서울병원 거쳐 서울대병원 음압병실 재격리
2015년 10월12일 서울대병원·질병관리본부 PCR 검사 결과 양성(이후 PCR 검사 결과 연속 음성 2~3회 나왔으나 격리 해제 안 함)
2015년 10월21일 환자 가족,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에 전화했으나 수신 거절
2015년 11월20일 질병관리본부-환자 가족 첫 면담
2015년 11월25일 새벽 3시6분 사망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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