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영화학과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프랑스 영화단체의 초청으로 파리에서 한국 영화 콘퍼런스를 열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발제문도 준비하고 토론자도 섭외했는데 갑자기 국내 지원기관에서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이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결국 행사를 준비한 자신이 빠지는 것으로 하고 콘퍼런스를 겨우 성사시켰다고 했다.

검열은 이제 일상이다. 최근 대학로 연극계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공연예술센터가 ‘팝업씨어터’ 공연 〈이 아이〉를 방해하고 취소시킨 것이 문제가 되었다. 팝업씨어터는 극장이 아닌 카페나 공원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돌발적으로 공연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공연이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공연예술센터 간부가 공연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공연예술센터는 결국 팝업씨어터 공연 3편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시사IN 양한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부녀를 풍자한 연극 〈개구리〉를 연출한 박근형 연출가를 창작 지원 프로그램에서 배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박 연출가가 공모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라는 작품을 선정하려고 하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포기를 종용한 것이다. 다른 작품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말에 박 연출가는 공모를 포기했다.

‘박근형 논란’의 불똥은 국악계로도 튀었다. 11월6일로 예정됐던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의 기획공연 ‘금요 공감’이 박근형 연출가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원래 이날은 ‘앙상블시나위’와 기타리스트 정재일, 박근형 연출가가 협업 공연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립국악원 측에서는 공연을 하는 ‘풍류사랑방’이 연극 공연에 적합하지 않다며 갑자기 연극을 뺄 것을 종용했다. 결국 다른 팀도 출연을 포기하면서 프로그램이 대체되었다. 이런 과정에 반발해 10월30일 ‘금요 공감’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안무가 정영두씨는 공연을 보이콧하고 대신 국악원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모두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아니 이명박 정부 때부터 벌어지던 일이다. 특정 문화예술인을 배제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문화예술 단체의 기관장들이 알아서 기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런 것이 시비가 되어도 기관장은 멀쩡하고 피해를 당한 사람만 표적이 되어 계속 당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무대 밖에 예술이 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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