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 같지 않았다. 〈시사IN〉 사진기자의 심부름을 도맡았다. 넓은 종이가 필요하다고 하자 옆 사무실에 가서 포스터를 빌려왔고, 옥상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자 열쇠를 건네준 후 거주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했다. 자신과 관련된 사진도 아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소셜 벤처 대표들이 단체사진을 찍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처럼 도왔다. 주인공은 정경선 루트임팩트 대표로 현대가 3세다(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아들).

정경선 대표는 재벌 3세가 사회적 기업을 한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인물이다. 그가 하는 일은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재단, 소셜 벤처 등을 돕는 것이다. 이런 단체들이 제대로 사업할 수 있도록 물적 지원을 해주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연결해주고 난제를 함께 풀어주는 역할이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재단, 소셜 벤처를 위한 중간 지원기관 격이다.

지난해 11월 루트임팩트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주변에 둥지를 틀었다. 루트임팩트를 따라 사회적 기업, 비영리재단, 소셜 벤처가 연이어 입주하면서 이 지역에 독특한 소셜 생태계가 구축되었다. 활동가들을 위한 주거 공간부터 활동가들의 만남을 위한 장소, 도서관 등이 만들어졌고 단체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각종 재단과 기업, 정부기관과의 네트워크도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경선 대표는 이 ‘꿈공장’의 공장장 구실을 충실히 수행했다.

ⓒ시사IN 이명익

그런데 이들의 꿈이 채 펼쳐지기도 전에 이 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었다. 재벌 3세가 이곳에서 일을 벌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부동산 투기꾼이 몰려들었다. 연예인들이 사들인 빌딩이 확인된 것만 네 채나 된다. 새로운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역의 소상공인 중에서는 소셜 생태계 때문에 임대료가 올랐다고 원망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아직 소셜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큰 장벽에 부닥친 정경선 대표를 만나 고민과 해법을 들어보았다.


이 지역에 벌써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물주가 바뀌면 임대료를 인상하려는 경향이 있다. 매매가가 80~100% 오른 곳도 있는데, 임대료는 아직 그 정도까지 안 올랐지만 벌써 떠나는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가게를 임차했다가 열자마자 바로 닫은 집도 있다. 상업지구로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소셜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곳인데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이 때문에 그동안 인터뷰도 주저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가진 배경(재벌 3세)을 돈이 될 기회로 생각하는 부동산 관계자들이 있다. 언론에서, 사회를 혁신하려는 청년들을 돕는다는 원래 취지가 아니라 재벌가가 투자를 했다는 쪽으로 어젠다를 옮기고 이를 좇아 연예인들도 땅을 산 지역으로 소개하면서 부동산 투자자가 몰렸다.

비자본적 프로젝트에 자본이 가장 먼저 반응을 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건물주의 선한 의지가 힘이다. 디웰(D-well:성수동 소셜 생태계의 공유 공간) 2호점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국에 사는 건물주가 좋은 일에 쓰라며 좋은 조건에 임대해주었다. 내부 공사를 마치고 11월 말에 입주할 예정이다. 이런 착한 건물주가 젠트리피케이션의 해결안 중 하나인 것 같다. 우리의 취지에 공감하는 건물주들이 단기적인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자산이 사회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도록 이끌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원오 성동구청장도 이곳을 방문해 자산화 전략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10월22일 ‘서울 일자리 대장정’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회적 기업이 모여 있는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지역의 청년 벤처 기업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왜 성수동을 소셜 생태계의 본거지로 삼았나?  
우리 사회를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2013년 여름부터 생각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공동 주거·공동 업무가 가능한 물리적 커뮤니티로부터 그런 생태계가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들을 위해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지원하는 것도 아닌 이런 생태계를 만들어 더 많은 시도와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끌고 싶었다. 이런저런 부지들을 물색하다 지난해 2월 성수동에 왔는데, 서울숲도 가깝고 교통편도 좋은 데다 무엇보다 동네가 차분해서 마음에 들었다. 접근성이 좋으니 사회적 기업이 알려질 기회가 많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어떤 단체들이 이곳에 들어와 있는가?
그린트러스트·더페어스토리·아시아공정무역 등은 우리가 오기 전 이미 이곳에 자리를 잡고 비영리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소셜 생태계를 함께 고민하던 공신·임팩트스퀘어 등이 먼저 들어왔고 지난해 연말까지 10여 곳 이 입주했다. 지금은 훨씬 많아졌다.

생태계 구축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가? 협업 사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생태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꿈을 공유하는 분들이 많이 모여 있고 협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화가 오간다는 것만도 고무적이다. 협업의 효과가 공식처럼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상적인 사례가 있었다. 두손컴퍼니라는 곳은 원래 노숙인을 고용해 제조업을 하고 있었다. 일이 생각만큼 많지 않아서 충분히 일자리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런데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림으로 제품을 만드는 마리몬드가 가수 수지 덕분에 대박이 났다. 물량을 소화하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두손컴퍼니가 물류를 맡아서 서로 윈윈하게 되었다. 지난해 두손컴퍼니는 3~4배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는 다른 중소기업 물량도 받고 있다. 1+1=2가 아니라 3이나 4 혹은 5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곳에서 루트임팩트의 역할은 무엇인가?
루트임팩트는 단체들을 이곳에 수용하고 그들의 요구를 취합한다. 이들이 성장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어떤 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고, 어떤 부분은 외부적 지원이 필요한지 파악한다. 해결이 어려운 부분은 우리가 함께 해결한다. 예를 들어 소셜 벤처는 법률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위해 법무법인 지평과 법률 서비스 지원을 시작했다.

설명한 것보다 루트임팩트의 역할을 크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공무원들이 특히 그렇다. 협의를 할 때 루트임팩트가 이곳을 주도하니까 ‘루트임팩트와 얘기하면 되지 않나’ 하고 말하기도 한다. 이 지역에 입주하려는 분들 중에는 루트임팩트에 허가를 받아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런 오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네트워크 기반 커뮤니티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발적인 움직임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만 있고 나서지는 않는다. 우리는 ‘적극적 수동성’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해두고 도와줄 태세를 갖추고 있지만 먼저 나서지는 않는다. 요청이 왔을 때 비로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도움을 줄 때 특별히 주의하는 사항이 있는가?
뭐든지 열려 있고, 항상 협력하고, 무조건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임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최대한 장기적으로 보려고 한다. 지속 가능해야 하니까. 그리고 우리가 도움을 선제적으로 생각해서 ‘톱다운’ 방식으로 내리꽂는 게 아니라 계속 ‘그래스루트(풀뿌리)’ 방식으로 다양한 의견을 모아서 수용하려고 한다. 우리 스스로도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유동적으로 돕는다.

성수동 소셜 공동체가 활동가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기는 셈이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이런 일을 하면서 얼마나 신나고, 내가 어떤 것에 상처받는지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곳에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현실 왜곡장’을 발생시킨다는 말을 했는데, 멀리서 들으면 말이 안 되는데 다 같이 서로서로 최면을 걸면 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곳이 그렇다. 어떤 일이든 안 될 것 같아서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하려고 고민을 해야 할 수 있다.

이곳에 입주한 단체들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클러스트 집적 효과를 통해 가시성이 높아졌다. 사회적 기업 위누의 허미호 대표는 성수동으로 오고 나서 조직원들의 자긍심이 높아졌다고 좋아했다. 한국에서는 사회적 기업이 친숙하지 않아 부모님에게도 설명하기 힘들다. 그런데 성수동이 KBS 〈다큐 3일〉에 방송되면서 ‘너희들이 그런 청년들 중 한 명이구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가족 친지뿐 아니라 영업을 할 때도 편리해졌다고도 한다. 좋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던 분들에게 계기를 준 것 같아서 기쁘다.

다른 사회적 기업을 도울 의무를 왜 느끼는지 궁금하다. 그들과 계약을 했더라도 의무가 발생할 정도의 계약은 아닐 것이고.
의무라고 얘기했지만 사명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명은 어떻게 발생한 것인가?
사명이라는 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받으면서, 남들을 배려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시민의식을 가질 것인가, 이 사명을 완수하고 싶다.

이 사명이 종교적인 사명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굉장히 멋진 각성의 계기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삶 전체에 녹아들어 있다. 항상 부모님께서 타인을 배려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특권의식을 갖지 말라고 교육해주셨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특권의식을 갖지 않고 자랐는데 남들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본다는 점이다. 공립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대다수가 나를 아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재벌 3세라는) 라벨을 붙였다. 나로서는 부당하다고 느꼈다. 나를 알려는 노력도 안 하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성격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어떻게 나라는 사람을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싶었다.

일종의 역차별을 당했다는 얘기인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이런 식으로 발현된다고 본다. 사실 모든 사람이 차별의 피해자다. 남학교를 나왔으면 공부를 잘해야, 아니면 주먹을 쓸 줄 알아야, 혹은 선생님한테 개길 줄이라도 알아야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이런 것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런 강박이 있었다. 누구나 차별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자기가 조금이라도 나은 상황이면 매우 공격적으로 차별한다. 다름이 틀림이 되고, 상대방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정답을 찾은 사람이 정답을 찾지 못한 사람을 괴롭힐 권리를 갖는 것이 싫었다. 나를 피해자로 규정했기 때문에 내가 피해자인 상황이 싫어서 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민의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런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 않나 해서 일을 벌이게 되었다.

참고한 모형이 있는가?
우연한 기회에 〈보노보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아쇼카 재단에 대해 알게 되었다. ‘1만명을 돕는 사람 1만명을 돕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 이게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시민의식의 표상 같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을 도와서 의미 있는 변화와 의미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을 동참하도록 만들어야겠다…. 처음에는 추상적이었던 것들이 현실에서 서서히 구체화되고 다듬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벌 3세의 전형이 있다. 서울시장 선거 때 정몽준 후보에게 설화를 입힌 아들(정 대표의 사촌동생)도 있었고. 재벌가는 그런 기득권적 사고를 갖기 쉬운데 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할까? 그것이 궁금하긴 하다. 생각보다 다른 재벌가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었다. 공립중학교, 공립고등학교를 나오고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해서 실제로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성격도 사회성이 좋은 스타일이 아니라 책 읽는 것 좋아하고 혼자 있는 것 좋아하고, 어울려 놀지도 못했다. 누나한테 못 노는 애라고, 쿨하지 못하고 지질하다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할아버지(고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 기질이 유전되었을 텐데, 다른 식으로 발현되는 것 같다.
올해가 할아버지 탄생 100주년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가 제작 중이다. 나도 촬영에 참여하고 있다. 제작진은 기업인으로서의 정주영과 사회사업가로서의 정주영을 모두 주목하더라. 이 중 내가 주목한 것은 사회사업가 정주영인데 지역사회 교육협의회 활동이 인상적이었다. 그곳 회장님이 1965년에 할아버지와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현대는 재벌도 아니고 수도권의 건설사 중 하나였을 뿐이다. 요즘도 다들 언제 좋은 일 할 거냐고 물어보면 빌 게이츠 되고 난 다음에 하겠다고 하는데, 그 시절에 (할아버지가) 비영리단체의 수장을 맡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미국의 지역사회 운동을 통해 지역이 재생되는 사례를 비디오로 보고 큰 감동을 받으신 할아버지가 우리도 어떤 식으로 이런 지역사회 운동을 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고 한다. 초대 이사장을 맡으시고 부모교육 커리큘럼도 직접 만들고, 학부모 대상 강연이나 워크숍을 하면 자주 찾아오셨다고 한다. 할아버지 사진이 엄청 많았다. 지역사회 운동가들에게는 “누가 돈 한 푼 주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너무 답답한 인간들이다, 그래도 이런 신기한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좋아진다. 여러분 같은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바뀐다”라며 그들을 지원하셨다고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매우 비슷한 일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던 셈이다. 기업인이면서 지역사회 운동가였던 것을 알고 나니까 유전이 무섭긴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라.

할아버지와 다른 점은?
할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든지 될 것이라는 확신이 강하셨고,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용기를 가지고 계셨다. 하지만 나는 이미 편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그런 담대함이 없다. 안 되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남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다 검색해보고 우울해한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재벌 3세의 호사 취미’로 보는 시선도 있다.
오해는 기본으로 장착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좀처럼 바뀌기 힘들다. 사회 혁신은 생소한 영역이다. 내가 하는 일은 한정된 몇몇만 대상으로 하는 만큼 나를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지 않고는 알기 힘들다. 그들은 아마 헤드라인만 보고 댓글을 적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오해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안에서는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 엄청 갑갑해하면서도 좋게 봐주신다. 나를 보면 이런 얘기를 하신다. “나는 네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얘기를 몇 년째 하는 걸 보니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같다.”

이 일을 최소한 몇 년은 한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 일을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는 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쉽게 만족하지 못할 테니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것 같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