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촛불집회에 이어 다시 청소년이 거리에 나타났다.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맞서, 교육받을 당사자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정부는 예상대로 ‘학교장 책임 아래 학생의 집회 참가를 막으라’고 엄포를 놓은 데 이어, 공교롭게도 ‘학생의 날’인 11월3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강행했다. 이제 정부는 학생을 상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훈계와 협박을 계속하고 중·고등학생은 이 역사적 사태의 당사자로서 의견 표출을 멈추지 않는 일이 반복되리라 보인다.

그런데 교과서 국정화에 비판적인 어른들조차 거리에 등장한 학생들 모습에 양가감정을 갖는 듯하다. 목소리 하나 더 보태는 청소년이 대견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고등학생이 알면 얼마나 알까?’ 혹은 ‘아무래도 중·고등학생들이 자기 견해를 표명하기에는 아직 어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기 때문이리라.

ⓒ시사IN 이명익11월3일 서울 광화문에서 청소년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나섰다.

돌이켜보면 4·19 이후 근 40년 동안 중·고등학생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2000년대 초반부터 역사의 전면에 이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이것을 사회 전반적인 ‘정보 유통양식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라고 본다.

어떤 세대보다 빨리 정보 나누는 네트워크 세대

먼저 이들은 네트워크가 일반화된 환경 속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 네트워크를 활용하며 자란 첫 세대다. 이들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항상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세대다. 정보 공유 면에서 이전 어떤 세대보다 빠르다. 둘째로 이들은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성인과 비슷한 수준의 정보량을 매일매일 습득한다. 겨우 10여 년 전만 해도 뉴스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근대 교육제도에서 학교는 청소년을 사회로부터 격리했고, 청소년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커리큘럼 이외에 정보를 습득할 경로가 별로 없었다. 부모의 교육철학이 남다른 환경에서 자란 소수의 청소년만이 신문이나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청소년은 포털과 게시판, 카페와 동호회,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세상의 정보를 수시로 접하고, 글쓰기·댓글·공유하기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수행한다. 자기의 관심사 혹은 자기와 관계있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반 구성원 전체와 공유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청소년은 사회에 대해 어른과 동등한 양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이 청소년을 사회와 고립된 근대 교육 환경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시대의 청소년은 예전의 청소년이 아니다. 이들이 일상적으로 습득하는 사회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성인과 같은 수준이라면 나이만 따져서 이들을 성인이 아니라고 정의할 근거가 희박하다.

한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는 그 공동체가 변화된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변화된 기술적·문화적 환경에 맞추어 사회구조를 변경하지 않는 공동체는 결국 낙오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은 변화된 환경에서 우리 사회의 ‘성인’을 어떻게 다시 정의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시대에 청소년에게 단 하나의 교과서만을 강요하는 정부의 정책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집회장에서 ‘우리도 알 건 다 알아요’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청소년들의 외침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하나의 교과서로 단일한 해석을 외우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에게 청소년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애들로 보이나요?’

기자명 전명산 (정보사회 분석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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