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한 현수막은 채 펼치지도 못했다. 목이 꺾인 채 외쳐대는 구호는 비명에 가까웠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간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던 11월2일 아침 청와대 앞. ‘한반도 자위대 진출 반대’ ‘위안부 문제 해결’ ‘굴욕적인 한·일 정상회담 반대’를 외치며 시작한 역사 동아리 대학생들의 기습시위는 채 5분도 안 되어 전원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으로 종료됐다. 연행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취재를 막는 손길 또한 거침이 없었다.


무자비한 연행이 벌어지는 사이, 청와대는 양국의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기에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취임 이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 정상회담의 대전제로 내걸었던 대통령의 의지는 어느새 사라졌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수교 50주년, 광복 7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해에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라며 자화자찬하기에 급급하다.


끌려가면서까지 “굴욕 외교 중단하라”던 학생들의 외침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시사IN 이명익
기자명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sajini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