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이경성 연출가는 시대정신이 투철한 이로 꼽힌다. 늘 사회 이슈의 현장을 찾는다. 연극은 자연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지닌 그는 자신의 연극이 시대를 반영할 수 있도록 고민한다. 그래서 그의 연극에는 질문이 많다. 그가 시대에 던지는 질문들이다.

질문이 많은 연극은 딱딱하고 지루하기 쉽다. 하지만 이경성의 연극은 그렇지 않다. 혼자 던지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연 배우들도 각자 고민이 담긴 자신만의 질문을 던진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봄직한 것들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객들도 답을 찾고 스스로도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연극 〈비포 애프터〉(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11월7일까지)에서도 그는 배우들이 직접 질문을 하도록 이끌었다. 암에 걸린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배우가 느끼는 타인의 죽음에 대한 공감, 데모하다 맞아서 눈이 실명할 뻔했던 배우가 경험한 국가폭력, 친구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꼈던 배우가 세월호 참사에 느끼는 책임을 그들 스스로의 언어로 풀어내는 식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이경성(앞줄 오른쪽 두 번째)은 “연극이 극장 밖 삶으로 확장되지 못하면 ‘가짜’가 된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질문만 던지는 연극이 재미있을 수 있을까? 재미있다. 배우에 대한 분석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우가 어떤 기량과 끼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그것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도록 이끈다. 그는 “배우들과 대화를 길게 나눈다. 개별로도 나누고 전체 토론도 한다. 그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이 느껴질 때 움직임과 표현의 스케일을 파악해서 극을 구성한다”라고 설명했다.이경성 연출가의 작업 방식은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서와 움직임을 최대한 살리는 독일 피나 바우슈의 안무 방식과 비슷하다. 그는 “연극이라는 공간 안에서 배우 각각의 경험과 세계관이 충돌하면서 재조합될 때 또 다른 공간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연출가의 시각을 넘어선다. 어떤 배우의 생각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궁금할 때 그 사람에게 작업을 함께하자고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연극에 ‘연습’이라는 말이 붙는 이유

그의 연극에는 ‘연습’이라는 말이 자주 붙는다. 지난해 연출한 〈남산 도큐멘타:연극의 연습-극장 편〉이 그랬고 그 전의 〈연극의 연습-인물 편〉 〈서울 연습-모델, 하우스〉에도 ‘연습’이 붙었다. 공연 연습 과정에서 좋게 느낀 것을 그대로 작품에 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작품인 셈이다.

‘연습’이라는 말에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 그는 ‘삶의 연습’으로서 연극을 바라본다며 “연극의 무기력함을 극복하고 싶다. 연극이 극장 밖 삶으로 확장되지 못할 때 연극은 ‘가짜’가 되어버린다. 연극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연극이 삶의 연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붙여보았다”라고 말했다.

〈비포 애프터〉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우리 삶과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묻는다. 세월호를 다룬 작품 중 단연 돋보이는 이 작품은 ‘두산아트센터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제작되었다. ‘세월호’ 이름만 들어가도 진저리 치며 지원을 중단하는 정부의 문화예술 기관과 달리 두산아트센터 측은 세월호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에 간섭하지 않고 원작대로 무대에 올릴 수 있게 해주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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