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정권교체의 빛나는 조연은 단연 충청 출신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였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DJ) 대통령은 DJP 연합을 통해 득표율 40.3%를 올린다. 양자 구도로 선거를 치른 1971년 7대 대선 이후 최고 득표율이며 승리의 주된 배경이다. 1992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는 충청권에서 27.8% 득표에 그쳤으나 1997년에는 JP의 도움을 받아 단숨에 43.9%로 수직 상승했다.

14대 이후 역대 대선 개표 결과를 살펴보면 예외 없이 충청권에서 승부를 갈랐다. 14대는 3당 합당으로 선거를 치른 김영삼 후보가 충청권에서 20만 표를 앞섰고, 15대는 김대중 후보가 40만 표를 이겼다. 16대 역시 노무현 후보가 신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바탕으로 충청권을 공략, 25만 표를 앞서며 승기를 잡았다. 지난 18대 대선도 세종시 원안 사수에 앞장서고 선진당을 흡수하는 등 충청권에 공을 들인 박근혜 후보가 28만 표만큼 격차를 벌렸고 결국은 최후 승자가 되었다.

총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소선거구제가 부활한 1988년 13대 총선부터 충청권에서 여당의 성적표가 좋았을 땐 전국 성적표도 좋았고 그렇지 않을 땐 반대로 나타났다. 14·17·19대는 충청권 1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13·15대는 충청권 기반의 공화당과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면서 여소야대가 등장했고, 18대 역시 충청권 1당인 선진당의 선전으로 한나라당의 압승이 저지되었다.

13대 총선은 4개월 전 실시된 대선에 이어 확고한 지역 기반을 가진 1노 3김에 의한 지역 할거 구도가 재현된 선거였다. 민정당과 제1, 제2 야당인 평민당 및 통일민주당은 텃밭에서 평균 82.5%의 의석을 석권했다. 그러나 JP가 이끄는 공화당은 충청권에서 1당은 유지했으나 의석 점유율은 55.6%에 머물렀다.

이후 19대 총선까지 충청권의 1등 정당은 선거 때마다 바뀌었으며 득표율과 평균 의석 점유율(60.5%)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호남과 TK 및 PK가 지역 연고 정당에 대한 맹목적인 투표를 하는 데 비해 충청 유권자들은 철저히 실리 투표를 한다는 방증이다.

2012년 말을 기준으로 ‘지역 내 총생산(GRDP)’과 인구 비중을 대비해보면, TK 권역이 단연 최하위로 집계됐다. 다음으로 호남이 꼴찌에서 두 번째다. TK와 호남은 지난 30년 가까이 모든 선거에서 기호 1번 또는 2번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왔으며, 18대 대선에서도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가 각각 80.5%와 89.0% 등 압도적인 득표율을 올렸다.

이와 반대로 1인당 GRDP가 가장 높은 곳은 충청권이다. 이유는 바로 경쟁 때문이었다. 총선만을 보면 13대는 공화당, 14대는 민자당, 15대와 16대는 자민련, 17대는 열린우리당, 18대는 선진당, 19대는 새누리당이 충청권의 1당으로 올라섰다. 또한 충청권의 1당 득표율은 단 한 번도 50%를 넘은 적이 없다. 선거 때마다 각 정당은 온갖 지역 발전 공약으로 충청 유권자에게 구애해왔고 그 결실이 오송생명과학도시·세종시·과학비즈니스벨트 등이었다. 2013년에도 실질 GRDP 성장률 1, 2위는 높은 재정투자를 바탕으로 충북(7.4%)과 충남(5.3%)이 차지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96년 5월26일 ‘4·11 총선 민의 수호 결의대회’에 참가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왼쪽)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 둘은 1997년 대선에서 ‘DJP 연합’을 했다.

정부 인사에서도 적지 않은 대접을 받아왔다. 1988년 이후 27년 동안 김종필·이해찬 등 2명의 실세 총리를 포함해 5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전체 비율로는 20%이며 호남 출신(3명)보다 많다. 그동안 임명권자는 전원이 영호남이었지만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이라 불리는 국정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에 충청 출신이 8명(11.8%)에 달했다. 대통령을 배출한 호남(10명)에 비해서도 결코 꿀리지 않는다.

충청 유권자들은 매우 전략적이다. 단적인 사례가 2008년 18대 총선이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행정수도이전 계획을 맹비난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위헌 관련 소송의 당사자로 참여했다.

그랬던 그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표변했다. 충청권 첫 방문지를 행정중심도시건설청으로 선택하며 오히려 국제과학도시 건설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충청도민은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이 틈을 파고든 이회창 전 총리가 무소속으로 대선 3수를 결심했고, 개표 결과 그는 충청권에서 이명박 후보를 위협하며 28.9% 득표율로 2위를 차지했다.

그 여파는 총선으로도 이어졌다. 대선 사상 전무후무한 압승을 거둔 직후 치른 18대 총선에서 전문가들은 여당의 개헌선 확보까지 전망했다. 당시 뉴타운 공약으로 한나라당은 수도권 111석 중 무려 81석(73%)을 쓸어 담았다. 하지만 충청의 선택은 달랐다. 겨우 넉 달 전 대선에서 37.1%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한 한나라당은 단 1석에 그치고 창당한 지 두 달째인 선진당이 14석을 휩쓸며 1등 정당으로 올라선 것이다.

29년 만에 ‘충청 지역당’ 없이 치러지는 선거

당시 정치분석가들은 야당조차 민주당과 선진당으로 나뉘어 3자 구도를 형성한 가운데 여당의 충청 승리는 손쉬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충청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에 의한 표 쏠림은 두드러졌다. 대전·충남은 선진당이, 충북은 민주당이 주로 의석을 확보했다. 결국 18대 총선은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에서 겨우 3석 초과에 그치며 막을 내렸다.

2016년 4·13 총선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당’ 없이 치러지는 선거가 될 전망이다. 18대 대선 직전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에 흡수되면서 충청당이 소멸한 것이다. 충청 유권자들은 내년 총선에서 거대 양당을 향해 더욱더 실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여야 모두 충청권 싸움을 대충 해서는 낭패를 볼 것이다. 의석은 단 25석에 불과하지만 그 2.5배인 영남권에 비해 결코 소홀히 다룰 일이 아니다. 더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권선택 대전시장이 낙마할 경우 내년 총선은 대전시장 재선거와 함께 치러질 수 있다. 이래저래 충청권이 총선 판을 좌우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기자명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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