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라면, 반미·종북에 ‘더러운 좌파’(자칭 ‘애국 보수’들이 성소수자에게 붙인 별칭), 반시장주의자 등으로 찍혔을 거다. 부자 증세와 정부 지출 증대, 마리화나 합법화, 다문화주의, 시리아·이라크에서의 자국 전투기 철수 등 발칙한 공약을 흔들어댔다. 더욱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동성애 혼인을 합법화한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전 총리의 아들이기도 하다. 지난 10월19일 캐나다 총선에서 39.5%의 득표율(전체 338석 가운데 184석)로 보수당을 물리치고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자유당 대표 쥐스탱 트뤼도(43) 얘기다.

자유당은 캐나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진보 자유주의’ 정당으로, 이 나라의 사회·경제적 얼개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20세기 중·후반에 장기 집권했던 자유당의 피에르 트뤼도 총리는 ‘현대 캐나다의 아버지’ ‘전설’ 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자유당은 21세기 들어 실권했고, 2011년 총선에서는 겨우 34석을 획득, 보수당과 신민주당(급진좌파 정당)에 이은 제3당으로 밀렸다.

쥐스탱은 2008년 몬트리올 파피노 선거구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당초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부친처럼 법학을 전공한 뒤 교수·변호사로 활동하는 정치 엘리트 코스 대신 예술과 교육학을 공부했다. 이후에는 교사, 시민운동가, 번지점프 코치 등으로 살았다. 제1차 세계대전 관련 드라마에 연기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랬던 쥐스탱이 대중과 정치권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0년 10월 부친의 장례식에서 감동적인 추도연설을 했을 때부터다. “저에게 그(피에르 트뤼도)는, 무엇보다, 아버지였죠. 스스로를 알고, 믿고, 도우라고, 그리고 자신을 책임지라고 가르쳤습니다.” 훤칠한 용모와 빼어난 연설 솜씨가 어울린 탓인지, 이후 방송사들은 쥐스탱의 추도연설을 재방영하라는 시청자들에게 꽤나 시달렸다.

ⓒAFP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자유당 대표(왼쪽)가 히잡을 쓴 무슬림 지지자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중산층 소득세 깎고 최상위층 세율 올리고

놀랍게도 쥐스탱은 초선 의원 시절부터 자유당 대표로 출마하라는 당 안팎의 요구에 직면했다. 쇠락의 조짐이 역력했던 자유당의 희망으로 여겨진 것이다. “좋은 총리 이전에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라며 고사하던 쥐스탱이 고집을 꺾은 이유는 일반 여론조사에서까지 ‘유력 총리 후보’로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2013년 당권 선거에서 그는 무려 80.1% 득표율로 대표를 맡게 된다. 이후 총선 운동 기간에 보수당은 그를 ‘멋진 머리카락의 젊은이’라고 조롱하며 일종의 ‘무시 전략’을 추진했지만, 결국 ‘애송이’에게 권력을 빼앗겼다.

쥐스탱의 무기는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정치인’으로 불리는 매력과 파격적 공약이었다. ‘마리화나 합법화’는 보수당뿐 아니라 좌파 정당인 신민주당으로부터도 엄청난 공격을 받았으나 끝까지 밀고 나갔다. 시리아 난민을 2만5000명 받아들이고 재정착 예산으로 1억 달러를 책정키로 하는 등 강도 높은 ‘친(親)이민’ 정책도 약속했다. 보수당이 추진해온 ‘니캅(무슬림 여성들이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덮는 베일) 금지’ 법안도 폐기하기로 했다.

사회경제 부문에서는 3년 동안 재정적자를 매년 100억 달러 정도 더 늘리더라도 정부지출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인프라, 환경, 청년 고용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 경기를 부양할 심산이다. 또한 중산층의 소득세는 1.5%포인트 깎는(22%→20.5%) 대신 최상위층의 세율은 4%포인트나 올리기로(29%→33%) 했다.

서방 언론들의 호들갑처럼, 쥐스탱은 경륜보다 ‘멋진 머리카락’과 매력으로 캐나다의 최고 권좌에 올랐을 수도 있겠다. 이제 공약 이행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증명할 차례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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