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미·중 격돌의 현장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섬에 만리장성 쌓는 중국


연안에서 근해로 뻗어가는 중국


줄어든 국방비 미국의 묘책은?

 

 

인공섬 매립 문제만 아니었다면 9월25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전후 최대의 외교 쇼가 될 뻔했다. 올해 초 베이징 외교가에는 ‘시진핑 주석의 9월 방미를 계기로 ‘제2의 닉슨 쇼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여를 표명하고 시진핑 주석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선언하면 1972년 닉슨 방중 때에 버금가는 미·중 협조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결과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미국은 AIIB 가입까지는 아니고, 반대하지 않겠다는 선에서 그쳤다. 중국도 TPP가 아니라 세계은행 등에 기여를 확대하겠다는 선에서 주고받기를 끝냈다. 그렇다면 ‘제2의 닉슨 쇼크’는 불발로 끝난 것인가. 국제정치학에서 ‘닉슨 쇼크’란 1971년 7월15일 닉슨의 전격적인 방중 선언부터 시작해 1972년 2월의 실제 베이징 방문으로 일어난 국제질서의 대변환 과정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미·중 화해와 협조,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미군 개입의 중단과 철수였다. 후자의 내용은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기 3년 전인 1969년, 괌에서 발표한 닉슨 독트린이 그 출발점이다. 미국이 더 이상 베트남 전쟁 참전과 같은 군사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며 아시아의 안보는 앞으로 아시아인의 손으로 지키라는 것이었다.

ⓒAP Photo9월25일 미국 백악관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시진핑 주석(왼쪽)과 오바마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이 구호가 40여 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5월20~21일 상하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였다. 당시 시진핑 주석은 “아시아의 일과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하며, 아시아의 안보 역시 아시아인들이 수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똑같은 얘기를 하면서 닉슨은 3년 만에 베이징을 찾았고 시진핑은 1년 만에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을 찾은 것이다. 그러고는 그 워싱턴에서 같은 얘기를 표현만 달리해 반복했다. 신형대국관계를 체결하자는 것과 남중국해 인공섬 문제는 중국의 주권 사항이므로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이에 대해 ‘항해와 비행, 작전의 자유’를 주장하며 맞섰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는 시각이 많다. 미국 전략가들의 시야에서조차 아시아 방위의 최전선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제1열도선(일본 규슈에서 오키나와와 타이완·필리핀 남중국해를 잇는 선)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인공섬 조성이 완료되면 미국의 남중국해 이탈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국은 왜 인공섬 매립을 서두르는 것일까?(영유권 분쟁 섬에 만리장성 쌓는 중국 참조) 남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설정하려는 것이라는 얘기가 주로 언급된다. 2013년 11월23일 동중국해에 ADIZ를 선포한 데 이어 남중국해에도 ADIZ를 설정함으로써 제1열도선 안쪽의 상공을 성역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ADIZ 선언은 당장 급할 것 같지 않다. 준비 기간을 포함해 2~3년 뒤로 보는 시각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ADIZ 선언 없이 인공섬 조성만으로도 남중국해의 성역화가 상당히 달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공섬이 초래한 지정학의 대변화

포인트는 바로 인공섬의 위치다. 7개 섬이 서태평양과 인도양에서 남중국해로 진입하는 수도(뱃길)의 입구에 있는 것이다(아래 지도 참조).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보고서에 따르면 난사군도(南沙群島) 해역은 동서로 800㎞, 남북으로 600㎞의 얕은 여울에 산호초가 군데군데 분포해 있다. 따라서 특정의 수도(水道)를 통하지 않으면 대형 군함이나 잠수함의 통항이 불가능하다. 필리핀 쪽의 서태평양에서 남중국해로 들어오려면 지도에서 보듯이 남화수도를 따라 들어와 중앙수도와 화양수도로 갈라지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인공섬이 바로 이 세 개 수도의 입구에 산재해 있다. 그중에서도 파이어리크로스 섬(중국명 융수자오)은 인도양과 서태평양의 관문에 해당하는 위치다. 중국은 이 섬에 3000m급 활주로

와 대형 군함이 정박할 수 있는 부두, 공중 조기경계관제기용 레이더 시설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20일 미군 P-8 초계기가 CNN 기자들을 싣고 촬영을 감행한 곳도 바로 이 섬이다. 파이어리크로스 섬 자체가 유사시 남중국해의 입구를 지키는 불침항모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이 또 한 가지 주목하는 것은 파이어리크로스를 비롯한 난사군도 인공섬과 중국이 이미 장악한 시사군도(西沙群島)의 우디아일랜드를 연결하고 앞으로 필리핀 인근의 스카보로초까지 연결하면 유사시 전투기 간의 삼각 공조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삼각형의 각 변의 길이가 650~900㎞ 정도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한다. 우디아일랜드에는 이미 2700m 길이의 활주로가 있다. 스카보로초의 경우도 현재 매립이 진행 중인데 주변에 암초나 토사가 없어 다른 산호초들처럼 빠르게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군사전문가들은 파이어리크로스 일대는 되돌리기에 이미 너무 늦었고 스카보로초의 매립 문제야말로 앞으로 남중국해 문제의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스카보로초까지 매립되면 중국의 남중국해 지배는 점에서 선, 선에서 면으로 확대되어 말 그대로 공역의 성역화가 이뤄지게 되기 때문이다.

동중국해에서는 중국이 제1열도선을 따라 12개 플랫폼을 새로 조성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미 있던 4개와 합치면 모두 16개가 된다. 이들 플랫폼은 유사시 레이더 시설 및 무인기의 이·착륙 등 군사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 동중국해 상공의 방공식별구역(ADIZ)과 바다의 플랫폼 그리고 남중국해의 인공섬을 잇는 제1열도선 전체의 성역화와 전선기지화가 그동안 착착 진행돼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이것이 방어적 성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공격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바로 남중국해 하이난섬(海南道)의 싼야(三亞)에 있는 거대 잠수함 기지를 미국의 감시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이난섬 기지에는 지난해부터 094급 전략 원자력잠수함 4척과 공격형 원자력잠수함 4척이 실전 배치됐고, 095급 잠수함이 테스트를 위해 배치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094급 전략 원자력잠수함이다. 여기에는 사정거리 약 8000㎞의 쥐랑(巨狼·JL)-2 미사일(SLBM)이 장착돼 있다. 중국 근해에서 발사하면 알래스카까지 날아가고 잠수함이 서태평양이나 인도양으로 빠져나갈 경우 미국 본토 전체를 사정거리에 둘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미국 태평양군의 최대 과제는 하이난섬 잠수함 기지에 대한 감시였다. 2001년 미국 정찰기가 하이난섬 상공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중국 전투기와 충돌해 떨어진 것도 실은 하이난섬 기지 감시 임무를 수행하다 일어난 일로 알려졌다. 또 미국이 지난 4월 일본과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에 합의하면서 가장 기대한 것도 하이난섬의 중국 잠수함 감시에 일본 자위대가 동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앞으로 인공섬이 완성되면 미·일의 함정이나 잠수함의 남중국해 진입조차 어려워지고, 항공기 역시 제약을 받게 된다. 즉 하이난섬 기지에 대한 감시가 힘들어지고, 중국 전략 원자력잠수함이 자유롭게 인도양이나 태평양을 빠져나가 미국 본토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냉전 시대 미국 본토를 공격하려는 소련의 핵잠수함에 대한 추격전을 그린 영화 〈붉은 10월(Red October)〉의 상황이 미·중 간에 재연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의 성역화와 이로 인한 중국 전략 원자력잠수함의 ‘항행의 자유’가 불러올 파장은 심대하다. 이미 그 여파가 닥치기 시작했다. 미국의 기존 대중국 군사전략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사실상 제1열도선 방어에서 전선을 이동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중국 해군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2009년 이래 미·중 간의 전략게임을 이해해야 한다(연안에서 근해로 뻗어가는 중국 참조).

미국 국방부가 파악한 중국의 제해권 장악 전략이 바로 ‘접근 저지·영역 거부(A2/AD)’다. 논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긴 하지만 A2(Anti Access·접근 저지)는 제1열도선에 미국 함대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AD(Area Denial·영역 거부)는 제1열도선과 제2열도선 사이에서 미국 함대의 훈련을 방해하는 것이다.

접근 저지·영역 거부가 실효성을 갖게 된 것은 바로 둥펑(東風·DF)-21D라는 대함 탄도미사일의 등장부터였다. 2009년 중국군 창설 6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선을 보인 둥펑-21D는 사정거리 1500㎞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로 ‘항공모함 킬러’로 명성을 떨쳤다. 둥펑-21D의 등장이야말로 아시아·태평양에서 미·중 군사력의 우열을 뒤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이로써 항공모함을 주력군으로 하던 미국 해군 전략이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또한 유사시 주일 미군기지나 오키나와 주둔 기지의 항공기나 함대 역시 모두 둥펑-21D의 사정거리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미군의 전략 자체가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시사IN〉 제250호 ‘미·중 전선, 한국이 최전방이다’ 참조).
 

ⓒAP Photo9월17일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이 의회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ASB를 실행할 능력이 있는가

둥펑-21D의 출현에 맞서 미국 국방부 산하 전략예산평가센터(CSBA)가 2010년 5월 발표한 대응 구상이 바로 공해전 전략(Air Sea Battle·ASB)이다. 냉전 당시 유럽에서 구사됐던 공지전 독트린을 바다를 무대로 재해석한 것이다. 미·중 간에 접전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미국 항공모함과 항공기 군함 등을 괌과 티니언섬 등 중국 미사일의 사정거리 바깥으로 피하게 한다. 그리고 중국의 제1열도선 내 A2/AD 전력을 무력화한 다음 대대적 공세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ASB는 2012년에 미국 국방부 전략으로 정식 채택됐다.

그러나 미국이 과연 ASB를 실행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특히 2012년 8월 미국 의회가 국방비 삭감에 합의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4920억 달러의 구체적인 삭감 액수까지 법제화한 이후 미국 군사력의 실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미국 해군 정보실(ONI) 자료를 인용한 한 분석에 따르면 2020년까지 미국 해군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군함을 단 8척만 신규 투입할 수 있는 데 비해 중국은 20척을 투입할 수 있어 전체 군함 수에서 균형을 이룬다. 공격형 잠수함에 이르면 미군이 29척인 데 비해 중국은 72척이나 되어 수적으로 압도한다. 현 상태로만 봐도 미군의 주력인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은 건조한 지 35년이 지났고, 신형 잠수함도 18년이나 되었으며 후계 함정은 아직 건조에 착수조차 못했다. 반면 중국은 094급 전략 원자력잠수함에 이어 095, 096급의 신형 잠수함들이 줄줄이 충원되고 있다. 아·태 지역만 놓고 보자면 시간이 갈수록 균형추가 점점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 아래서 ASB 전략도 이미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과 접전이 벌어질 경우 제1단계의 대응 조처 중에는 중국 미사일을 미국이 미사일 방어(MD)로 막아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부터 벽에 부딪혔다. 지금까지 미국이 확보한 MD 기술로는 중국의 미사일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또한 대응 내용 중에서 중국 본토에 접근해 지휘관제센터를 파괴한다는 설정도 있는데, 중국 미사일의 정확도가 1000㎞당 오차 범위가 2~3m밖에 안 될 정도로 높아져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제1열도선 내 중국군의 A2/AD 전력을 잠수함을 활용해 파괴한다는 것 역시 남중국해 인공섬이 완공되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확전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이 중국 본토 공격을 상정하는 전략을 구상할 수 있었던 것은 핵 능력만은 우위에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이것도 하이난섬 잠수함 기지를 통제할 수 없게 되면 성립하지 않는다.  

ASB의 여러 문제점 때문에 ASB가 국방부에 의해 정식 채택된 2012년에 이미 대안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국방대학의 T. X. 하메스 교수가 2012년 6월 발표한 ‘Offshore Control(연안 봉쇄·OC)’ 구상이 그것이다. ASB의 호전성과 달리 OC는 믈라카(말라카)·순다·롬보크 및 오스트레일리아 남북 루트 등을 봉쇄함으로써 중동산 에너지와 아프리카의 자원이 중국 동해안의 경제 거점으로 공급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동시에 제1열도선 안쪽에 대해서는 한정적으로 항공 병력과 공격형 원자력잠수함을 투입해 제해권을 장악함으로써 봉쇄 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핵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고 중국 지도부에 군사적 패배를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체면을 세워주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 파키스탄·스리랑카·미얀마 등과 협약을 맺고 믈라카 해협 등 남중국해를 통하지 않고도 에너지와 자원을 내륙으로 직접 수송할 수 있게 되면서 이 구상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에서 중국의 신장웨이우얼까지 약 3000㎞의 경제 회랑을 구축하고, 미얀마 남부에서 충칭까지 약 2400㎞의 파이프라인을 개설해 내륙 수송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기존 군사전략이 모두 벽에 부딪히면서 최근 미국 내에서 새롭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제3차 상쇄전략(Third Offset Strategy)’이다. 미국이 글로벌한 차원에서 전개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하려면 군사기술과 전략을 근본적으로 혁신해 기술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3차라고 하는 이유는 과거 소련과의 두 차례 경쟁에서 압도했던 경험을 염두에 두어서다. 첫 번째는 1949년 소련의 핵실험으로 핵독점이 무너지자 핵탄두를 증산해 우위를 유지했던 경우이고, 두 번째는 1970년대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의 정밀도를 높여 소련과의 격차를 벌렸던 경험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압도하기 위해 미국이 시급히 확보해야 할 군사 기술로는 △스텔스 기술의 향상 △드론 기술을 통한 공중전의 무인화 △무인잠수함 기술 △중·러의 위성 파괴 기술에 대한 대책 및 우주공간의 정보전 강화 △사이버 공격능력의 강화 등이 열거되고 있다.

이처럼 제3차 상쇄전략에 앞으로 국방비를 쏟아 붓겠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아·태 지역의 제1열도선 방위에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쇄전략의 밑그림을 제시한 지난해 6월 CSIS(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보고서 ‘2021년의 위기 회피가 가능한 군 건설(Building the 2021 Affordable Military)’에 그 맥락이 자세히 나온다. 이 보고서는 과거 2년간의 미국 국방비 삭감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미군이 채택해야 할 전력구조 및 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 국방비는 2010년 전비 포함 7300억 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2012년에는 6600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미국 의회의 국방비 삭감 계획대로라면 2021년에는 5200억 달러까지 떨어지리라 보인다. 2012년에 비해 액수로는 21% 감소했지만 달러 약세나 인플레 등을 감안할 경우 구매액 기준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계산된다. 물론 이 정도만 해도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서 발행하는 〈밀리터리 밸런스 2015〉에 실린 지난해 각국의 국방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이 5810억 달러(1위), 중국은 1294억 달러(2위), 일본이 477억 달러(7위) 등이다. 수치로만 보면 미국이 압도적 우위인데 아·태 지역에서는 중국에 밀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중국의 국방비 액수가 실제보다 적게 알려졌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중국 국방비의 실제 규모에 대해 일본은 발표된 규모보다 1.3에서 2배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지만 중국은 아·태 지역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해군 전략가 앨프리드 머핸이 “해상 교통로를 장악하려면 세계 패권보다 지역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해군력을 갖춰야 한다”라고 조언한 바 있는데, 중국이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도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CSIS 보고서는 미국이 세 가지 안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중 유의미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금처럼 아시아·태평양을 직접 관리하며 정면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러의 세계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 발짝 떨어져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글로벌 전략이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미국이 글로벌 파워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아시아·태평양은 이제 동맹국에 맡기고 미국은 중·러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전개 전략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척 헤이글, 애시턴 카터 등 전·현직 국방장관이 들고 나온 ‘제3의 상쇄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에 중·러를 압도할 기술과 자금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특히 미국은 기술혁신에 필요한 제조업 기반이 붕괴됐고, 중·러와의 기술력 격차도 과거에 비해 많이 좁혀졌다. 또한 국방비 삭감에서 보듯이 과거처럼 투입할 자금도 많지 않다. 일본이나 유럽처럼 경제력과 기술력이 있는 동맹국의 협조를 구하겠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4월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보여준 전조

한편 아·태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은 앞으로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동안 미국에 의지해 중국과 대치해온 제1열도선 국가들은 상당히 답답하게 됐다. 미국에 의존해왔던 자국 방위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줄어든 국방비 미국의 묘책은? 참조). 지난 4월27일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이미 그 전조가 나타났다. 겉으로는 미·일 동맹이 세계적으로 격상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 자위대의 임무가 많아진 반면, 미군은 일본 본토 방위와 관련해 종전 지침보다 훨씬 축소되거나 후퇴했다. 즉 일본 방위는 이제 일본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센카쿠 열도를 의미하는 이도(離島) 방위에 미·일이 함께한다는 내용이 새로 추가됐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도가 센카쿠뿐만 아니라 남중국해도 포함된다는 얘기가 있다. 지난 3월2일부터 9일까지 미국의 CSBA(국방부 산하 전략예산평가센터) 등 대표적인 전략연구소들을 방문해 전략대화를 시도한 일본 자위대 OB그룹(전략연구포럼 JFSS)이 내린 결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일본 유사시 미국 항공모함이나 대규모 지원병력 파견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측 연구소들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제1열도선 국가들의 ‘A2/AD 네트워크’였다.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고 했던 닉슨 독트린 쇼크가 다시 몰려오고 있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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