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탈북 주민들의 인천 상륙 작전


또래의 남한 10대도 겪는 일들


아직 ‘이메일’ 모르지만 취업하고 싶어요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 겉보기에 다른 아파트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 동네 상가에는 ‘인조고기밥’ ‘두부밥’ 등을 파는 북한 식당이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 먹을 게 부족해 콩으로 고기 식감을 내서 만든 인조고기밥이나 두부를 튀겨서 그사이에 밥을 넣고 양념을 발라 먹는 두부밥은 현대식 북한 메뉴다. 이 식당은 반찬가게로 시작했다가 손님이 많아져 아예 식당으로 바뀌었다. 아침부터 식사하러 오는 이들이 있어서 오전 9시에 문을 연다. 그만큼 ‘고향의 맛’을 찾는 북한 출신 주민이 이 동네에 많다는 얘기다. 아파트 단지 한편에는 ‘통일동산’도 조성되어 있다. 탈북자들이 북녘의 가족과 고향 이름을 써넣은 나무를 심어두었다.

남북한 출신 주민이 섞여 살기 시작한 때는 아파트촌이 조성된 2006년부터다. 인천 남동공단이 있어 탈북자가 일자리를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데다, 통일부 산하 하나원이 정착 지원을 위해 임대아파트를 배정하다 보니 이 동네에 몰려 살게 되었다. 이 덕분에 인천 남동구는 탈북자가 가장 많이 사는 기초자치단체가 되었다. 2015년 8월 현재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2만8000여 명 중 1749명(6.2%)이 살고 있다. 10년 만에 6배 넘게 증가했다.
 

ⓒ시사IN 신선영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통일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탈북자들이 북녘의 가족과 고향 이름을 써넣은 나무를 심어두었다.

남한 생활이 낯선 탈북자와, 탈북자가 낯선 남한 주민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곳. 갈등과 협상이 반복되고 교차하는 10년을 보낸 인천 남동구 논현동 임대아파트는 ‘통일 한반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미시연구소는 이곳을 남북한 접촉지대(contact zone)라고 규정한다. 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낸 이 대학 이우영 교수는 “남동구의 사례는 문제점을 밖으로 드러냈기 때문에 어떻게 풀어갈지도 생각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남북한 접촉지대에서의 만남을 어떤 식으로 형성하고 교류할지는 이후 사회 통합에 중요한 과제다”라고 말했다.

북한미시연구소는 2012년부터 개성공단, 남북회담장, 남한 내 탈북자 거주지 등 ‘남북한 접촉지대’를 연구하고 있다. 인천 남동구도 그중 하나다. 주민, 시민단체 상근자, 교사, 공무원 등 다양한 남북한 출신 30여 명을 만났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탈북자 대부분은 신원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았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신변을 걱정해서다.

‘빨갱이’ 농담이 오가는 데 걸린 시간

정착 초기에는 갈등이 극심했다. 당장은 쓰레기 배출 방법이나 실내 흡연과 같은 생활문화가 달랐다. 싸움도 잦았다. 이 단지에서 초창기부터 근무했다는 한 경비원은 “처음에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분리수거 개념 자체가 없어 복도에 쓰레기를 그냥 두거나 마구 버려서 문제가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아파트 생활 자체가 처음인 탈북자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단지 곳곳에는 ‘담배꽁초 버리지 말기’ ‘분리수거 제대로 하기’ 등이 붙어 있다. 바로 옆 단지에만 가도 보이지 않는 현수막이다.
 

ⓒ시사IN 신선영2006년 탈북한 김대견씨(위)는 아내와 함께 하나경로대학에 다니며 교류를 넓히고 있다.

당장 생활에서 맞부딪치는 남한 원주민과 북한 출신 주민은 처지가 비슷한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많다. 남한 원주민 사이에는 ‘탈북자들이 너무 많은 혜택을 받아 내 몫이 줄어든다’는 정서가 암암리에 흐르고 있다. 기초생활 수급권자를 담당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정식 일자리보다는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탈북자도 있다. 기초생활 수급권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당장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괜찮은 일자리를 잡기 어려우니 개인으로서는 더 나은 선택을 한 건데,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은 왠지 자기가 손해 본다고 느끼면서 감정이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긴 하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낸 세금이 엉뚱하게 쓰인다는 원망이 싸움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인천 남동구 임대아파트를 현장 연구한 덕성여대 이수정 교수(문화인류학과)는 논문 ‘접촉지대와 경계의 (재)구성(〈현대북한연구〉 제17권 2호, 2014년)’에서 갈등 사례를 이렇게 묘사했다. “스스로도 저소득층인 이들(남한 원주민)은 부정 수급을 하는 북한 출신 주민들에게 반감이 크다. (…) 북한 출신 주민들이 관공서 등에서 받은 선물을 쟁여두었다가 상해서 버린 일이 있었다. 이웃 할머니들이 버린 떡국 떡을 먹으려고 주워서 곰팡이를 가려내는 장면을 본 통장은 분노했다. 주민센터에 찾아가 항의했고 이후 주민센터 차원에서는 따로 명절선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인천 남동구 탈북자를 연구한 서울교대 윤철기 교수(윤리교육과)는 “한정된 자원이 이들을 반목하게 만든다. 양쪽 모두의 잘못이 아니다. 갈등을 구조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탈북자는 스스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2008년 입국해 이 임대아파트에 쭉 살고 있는 정순이씨(가명·86)는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몇 번 경로당을 출입하다가 어울리기 불편하고 힘이 들어 그만두었다. 근처에 사는 딸과 손녀를 보는 게 거의 유일한 바깥나들이지만, 빌딩 청소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딸은 바쁘다. 결국 온종일 집에서 혼자 지낸다. 문을 두드리는 건 남쪽 종교단체뿐이다. “외롭고 정 없지만 그게 편하다”라는 정씨와 같은 탈북자들은 가끔 지역 행사에서나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여름 지역 삼계탕 나눔 행사에서 그들을 만난 한 교사는 “동네에 저런 분도 계시는구나 새삼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인천 남동구의 아파트 단지 내에는 ‘인조고기밥’ 등 북한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있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부분도 있었다. 경험이 쌓이다 보면 접점이 만들어진다. 인천시 남동구 논현1동 주민센터의 장복순 상담원은 정순이 할머니가 귤 하나를 무척 귀한 과일인 양 자기에게 쥐여주는 모습에 의아했던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정씨 할머니는 함경북도 출신이어서 귤을 접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이런 장면을 대할 때마다 ‘같고도 다른’ 탈북자에 대해 배우게 된다. 장복순 상담원은 기자에게 “탈북자를 만날 때 ‘남한 사람’과 ‘탈북자’를 구분해서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탈북 후 남한에 정착해 사는 이들도 이제 남한 사람이므로, 북한 출신 주민들이 섭섭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주도하는 교류 프로그램도 만들어졌다. 인천 논현1동 주민센터는 남북 주민이 함께 가꾸는 텃밭 사업 등을 진행한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인천하나센터(통일부가 지원하는 탈북자 지역 적응 기관)는 아예 프로그램을 정례화했다. 각각 2011년과 2012년 시작된 하나경로대학과 하나코리아핑퐁클럽이다. 주로 탈북자 위주로 진행되는 다른 지역 하나센터 프로그램에 비해 남북한 출신 주민 교류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9월9일 ‘또 만났네요’ ‘타향살이’ 노래를 합창한 하나경로대학 수업이 있었다. 2006년 입국해 인천 남동구 임대아파트에서 쭉 살고 있는 김대견(73)·최진주씨(69) 부부가 앞장서서 노래를 불렀다. 수업이 끝난 다음 기자와 만난 남한 출신 박경환씨(79)는 “처음에는 북한 사람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우리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쪽 생활이 낯설고 힘들어 그렇다는 걸 알게 돼 오해를 풀었다”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북한 출신 김민찬씨(가명·64)가 “그저 빨갱이인가 했겠지”라고 너스레를 놓았다. 박씨도 “그러니깐, 다 그런 줄 알았잖아. 그전까지 (탈북자를) 본 적이 있어야지”라고 맞받아쳤다. 남북한 출신 노인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빨갱이’ 농담이 오가는 데에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말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선인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밥을 같이 먹으며 몸으로 배웠다.
 

ⓒ시사IN 조남진9월9일 인천하나센터의 하나경로대학은 남한 주민이 수강생의 50%에 이른다. 남북 출신 노인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교류 범위가 넓어지면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2012년 이 지역에 거주하는 남한 출신 주민 114명을 대상으로 이수정·양계민 연구자가 진행한 연구 논문(〈북한연구학회보〉 제17권 1호, 2013년 여름)을 보면, 북한 출신 주민들을 계속 만나면서 이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응답(56.1%)이 그렇지 않다는 응답(10.3%)의 다섯 배가 넘었다. 논문은 “접촉이 지속될수록 북한 출신 주민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개별적 차이가 있다고 인지하게 된다. 구체적인 접촉을 통해 집단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다는 점에서 함의가 크다”라고 결론지었다.

특히 ‘북한 출신’이라는 범주 하나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만남을 통해 상대방의 개별적인 특성을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연구자들은 강조한다. 같은 조사에서, 만남이 잦을수록 ‘탈북자’로 뭉뚱그려 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특성이 있는 개인으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응답이 75.7%였다. 덕성여대 이수정 교수는 “소수 집단일수록 개별 특성을 전체로 인식하기 쉽고, 이것이 편견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가령 임대아파트 내 사건·사고가 벌어져도, 남한 출신 주민은 개인의 사건으로 이야기되지만 북한 출신 주민은 ‘북한 사람이 어때서 문제가 생겼대’라는 식으로 일반화되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인천 남동구에서 탈북자를 돕는 천주교 단체 ‘인천새터민지원센터’의 한 수녀도 비슷한 경험을 들려줬다. 흔히 탈북자의 나쁜 점으로 꼽히는 ‘코리안 타임(약속 시간에 늦거나 예고 없이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 대해 그는 “새터민(탈북자)들이 종종 시간에 늦거나 안 오는 경우가 있는데, 북한에서는 집단으로 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약속에 대한 관념이 남한과 다른 점이 있다. 그렇다고 새터민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나이대에 따라 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새터민을 접하면서 시간관념이 세대별로, 또 개인별로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접촉은 남한 원주민의 의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쌍방향이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탈북자 김수미씨(가명·50)는 지난해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남북한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탈북 아동의 학교생활 적응에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경험(20쪽 상자 기사 참조)을 한 학교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한 대기업에서 청소 업무를 하는 김씨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고된 삶을 살다 보니 ‘전업 맘’에 대해서는 편하게 인생을 사는 학부모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남한 엄마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여기 분들은 돈 많으니깐 여자들이 돈 안 번다고 생각했는데,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애들 대학만 가면 사회생활하고 싶다는 어머니들이 많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애들 키우느라 집에 있었던 거지 그냥 다 편하게 노는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남한 주민을 상대로 한 교육도 필요하다

물론 지금도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논현동의 한 주민은 “탈북자들이 많이 사는 단지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바로 건너편에 중산층이 사는 △△아파트가 있다. 거기 취학연령대 부모들이 탈북 학생이 오면서 학교의 학력이 떨어졌다고 기피했다. 그래서 한때 위장전입이 유행했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인천하나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김 아무개씨는 익명을 요구하며 탈북자들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불편하고, 혹여나 남북 간 전쟁이 나면 누구 편을 들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 때문에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는 “모든 만남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잘 만나야 한다. 잘못 만나면 오히려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체성이 다른 두 집단의 접촉이 늘어날수록 갈등이 고조되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우영 교수는 남한 원주민을 상대로 한 탈북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화정책에 대한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소수(탈북자)를 어떻게 교육할까보다 다수(남한 원주민)를 어떻게 변화시킬까가 더 중요하다.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데 이런 교육이 없다.”

이재욱 신부는 2012년 인천 남동구의 임대아파트에 석 달간 머물며 지역 연구를 했다. 그는 ‘남동구 모델’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신부는 “남한 사회에 적응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그네들과 섞여 사는 과정이 이럴진대, 적극적인 의지가 없는 2200만 북한 주민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변화나 이해 의지가 전혀 없는 남한 주민과의 만남도 비슷한 상황일 거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접촉하며 발생하는 역동성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또 “태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하러 들어가면서 가졌던 기대는, 어쨌든 우리(남한 출신)와 ‘같은’ 그들(북한 출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느낀 것은 우리와 ‘다르다’였다. 그런데 더 살면서 보니 그럼에도 우리와 ‘같다’였고, 또 더 살아보니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이 무한 반복되었다. 그 자체가 나에게도 통일 혹은 통합의 여정이었다.” 이 신부에게 뒤섞여 살았던 경험은 차이와 공통점을 번갈아 확인해나가며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이었다. 그가 뒤섞여 살아야 할 이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새삼 강조하는 이유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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