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 “성매매 관련자 모두를 처벌하지 말자”
  • 전혜원 기자
  • 호수 415
  • 승인 2015.08.31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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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성매매 관련자 모두를 처벌하지 말자는 방침을 정했다. 판매자는 물론 구매자와 알선업자, 업소 주인까지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이에 주요 여성단체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사회

앰네스티 “성매매 관련자 모두를 처벌하지 말자”

“자기들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

세계적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이하 앰네스티)가 성매매 관련자 모두를 처벌하지 말자는 방침을 표결로 정했다. 8월11일 앰네스티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국제 대의원 총회를 열었다. 총회에는 60개국에서 약 400명이 참석했다. 각 지부 회원 수에 따라 표를 할당받는데, 한국지부는 3표를 행사했다. 앰네스티는 구체적인 표결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최종 보고서는 국제이사회 회의가 열리는 10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모든 앰네스티 조직은 앞으로 성매매와 관련한 활동을 벌일 때 이 정책 방향을 따르게 된다.

여성이 대부분인, 성을 파는 이들을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에 대해 인권단체나 여성단체 사이에서도 이견이 크지 않다.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희생자로서 성을 파는 처지에 몰린 이들은 처벌받기보다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문제는 성매매에 관여하는 다른 사람들이다. 앰네스티의 이번 결정은 판매자는 물론 구매자와 알선업자, 업소 주인까지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서울 영등포의 집창촌. 현재 한국 성매매특별법의 경우 구매자와 알선자, ‘자발적’ 성 판매자 모두를 처벌한다.
표결을 하기 전부터 논란이 일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8월2일자 사설에서 “앰네스티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려 한다. 폭력·기만·아동 착취는 전 세계 성매매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라고 썼다. 여성인신매매반대연합(CATW)은 성매매 알선과 업소 운영, 성 구매에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는 공개서한을 앰네스티에 보냈다. 여기에는 메릴 스트립, 케이트 윈즐릿 같은 유명 할리우드 배우를 포함해 9000명이 넘게 서명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앰네스티에 신중한 접근을 호소했다. 표결이 통과된 뒤 마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무장관은 “여성이 자유롭게 성매매를 택해 행복하게 일한다는 건 신화다. 포주와 성 구매자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비꼬았다.

앰네스티는 어떤 방식으로든 성매매를 범죄로 보게 되면 그에 따른 위험은 결국 가장 약자인 성노동자(성을 파는 사람)에게 전가된다고 반박한다. 성을 파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논리다. 앰네스티는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 에이즈계획(UN AIDS), 유엔 건강권특별보고관(UN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 to Health) 등이 실시한 조사를 폭넓게 검토했다. 성매매 종사자, 관련 단체를 만났다. 아르헨티나, 홍콩, 노르웨이, 파푸아뉴기니 등 4개국에 대한 자체 조사도 실시했다.

앰네스티는 ‘스웨덴 모델이 실패했다’고 판단

이번 결정에서 앰네스티는 ‘노르딕 모델’ 또는 ‘스웨덴 모델’이라 불리는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성을 파는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 대신 구매자 등 다른 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수요를 억제하는 이 모델은 성매매 폐지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안으로 지지해왔다. 1999년 스웨덴이 처음 도입한 이래 아이슬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북아일랜드 등 많은 곳이 이 정책을 채택했다. 올해 나온 스웨덴 정부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의 주요 도시에서 길거리 성매매가 1995년 이후 절반 이하로 줄었고, 성을 구매했다는 남성의 수 역시 40% 넘게 감소했다(경찰 추적을 꺼리는 고객들 때문에 많은 성매매가 음성화하고, 따라서 성 판매자들이 더 위험해졌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앰네스티는 2년 동안 성매매 ‘비범죄화’ 논의를 해왔다. 위는 살릴 셰티 앰네스티 사무총장.
이에 대해 앰네스티는 “이렇게 타협적인 방식을 선택하게 되면 성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인권침해에 취약한 상태에 남겨진다. 성노동자들은 여전히 형법을 적용해 성 노동을 없애려는 의도를 가진 경찰들에게 쫓길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앰네스티는 “많은 성노동자들이 구매자가 경찰의 추적을 피하도록 구매자의 집으로 방문해줄 것을 요구받는다. 성노동은 노르딕 모델에서도 여전히 (범죄로) 낙인찍혀 있으며, 이 낙인으로 인해 차별받고 소외당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앰네스티는 ‘성노동’ ‘성노동자’라는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하지만 규제를 목적으로 성노동을 노동으로 공식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앰네스티 결정이 성매매(성노동) 합법화도 아니다. “만약 성노동이 합법화된다면 정부는 공식적으로 성노동을 규제하는 매우 구체적인 법률과 정책을 마련할 것이고 이런 규제는 또 다른 운영 방식을 야기해, 결국 규제를 피한 성매매로 성노동자들은 다시 처벌받게 될 수 있다.” 앰네스티는 성 판매자 2명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함께 일하는 것도 ‘집창촌’으로 간주해 금지되는 등 성노동자의 인권과 관련이 없는 입법 사례에 주목했다. 그러면서도 앰네스티는 합법화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법이 만들어진다면 성노동자의 인권을 증진시키고 국제인권법에 부합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가디언> 사설은 합법화가 아닌 ‘비범죄화’에 강조점을 두는 이 같은 제안에 대해 “언제부터 규제되지 않는 시장이 인권을 보장했는가”라고 반문했다.

앰네스티가 말하는 대로 모든 처벌을 제거하면 성매매 시장과 성 산업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닐까? 많은 여성단체가 우려하는 지점이다. 여성인신매매반대연합(CATW)은 비범죄화로 이익을 얻는 유일한 이들은 알선업자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2002년 성 판매자의 법적 지위를 강화할 목적으로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에서 섹스 관광과 같은 성 산업이 번창하는 것은 단골 사례로 인용된다. 비범죄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독일처럼 법을 완화한 나라들이 오히려 인신매매를 부추겼다고 말한다(앰네스티는 그 같은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한국 여성단체들이 앰네스티 결정을 비판하며 낸 논평에도 이런 우려가 담겨 있다. “불평등과 불의에 기반하여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더욱 활개를 치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 등 5개 단체 논평, 8월13일)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2013년 10월9일 영국 런던에서 성노동자(성 판매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는 비범죄화가 성매매 산업을 확대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현재로서는 특별한 입장이 없는 것으로 안다. 자료도 조사기관에 따라 다르다. 다만 성매매 비범죄화를 이미 실시한 뉴질랜드에서는 인신매매를 통한 성매매 종사자가 확실히 줄었다는 것이 성명과 입장 발표에 나와 있다”라고 말했다.

성 판매자 처벌에 대해 위헌 심판이 진행 중

결국 세계관의 충돌이다. 앰네스티는 어떤 형태의 인신매매에도 반대하며 아동을 성적으로 착취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했다. 하지만 강제·착취·학대가 개입되지 않은, 성인이 서로 합의한 성매매 그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판단은 하지 않았다. 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는 “합의에 의한 성노동이 인권침해라는 생각은 윤리적이고 가치적인 판단이다. 우리는 그것을 판단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는 비범죄화로 성산업 시장이 커지더라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성매매 시장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강요나 인신매매로 성매매에 유입되는 이들을 줄이고 이미 종사하는 이들의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앰네스티 결정에 반대하는 많은 인신매매 반대 단체와 여성 단체에게 성매매는 그 자체로 인권침해다. 이들이 보기에 비범죄화는 성매매 근절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다. “포주와 고객을 비범죄화하는 것이 그 시장을 거대하게 부풀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이 커지면서 학대자들이 더 많아졌고, 명백한 결과로서 학대가 더 많아졌다”라고 아일랜드에서 7년간 성매매를 경험한 레이철 모란은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성매매 자체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고 착취다. (성 판매자가)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구매자와 알선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성매매 여성이 덜 위험해진다는 것은 허상이다”라고 일축했다.

한국 성매매특별법의 경우 구매자와 알선자, ‘자발적’ 성 판매자 모두를 처벌한다. ‘성매매를 한 사람’을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하는 조항에 대해 2014년 성매매 종사 여성이 위헌 심판을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현재 성 판매자를 처벌하는 것이 위헌인지 심리가 진행 중이다. 지난 4월9일에는 헌법재판소가 첫 공개 변론을 열기도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자료</font></div>2011년 5월17일 서울 영등포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분장한 채 집창촌 폐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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