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만 20세이던 윤 일병은 동료 병사들에게 처참한 가혹행위를 당하다 죽었다. 병상에서 링거를 꽂은 상태에서까지 구타를 당했다. 죽음 이후 요란하게 위원회가 꾸려졌지만 그뿐이다. 위원회의 권고는 권고로 그치고, 국방부는 입맛에 맞는 몇 가지만 골라 수용하겠다고 했다. 청년의 시체를 내보내며 잠시 열리던 군대가 다시 닫혀가는 익숙한 풍경이다. 사망한 지 1년도 훨씬 넘은 지금, 우리는 윤 일병의 죽음을 헛되게 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를 품게 되었다. 7월8일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가 군 옴부즈맨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설치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기 때문이다. 정식 명칭은 ‘군 인권보호관’. 이후 관련 내용을 담은 인권위법 개정안이 국방부와 군 출신 국회의원들의 집요한 반대를 뚫고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해야만 진짜 무언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진 것임은 분명하다.

군 옴부즈맨은 10년 전부터 군대 내 인권침해와 사고를 근절하기 위한 대안으로 논의되어왔다. ‘불시 부대 방문권’과 ‘자료 제출 요구권’을 지닌 군 외부의 독립적 기구. 이미 독일 등의 국가에서 군에 대한 민간 통제의 상징처럼 이해되는 기구. 시민사회는 군대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군 옴부즈맨 도입을 주장했지만, 군은 보안 유지와 군의 특수성을 명분으로 이 제도만은 안 된다고 거부해왔다.

 

ⓒ난나

윤 일병의 죽음 이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시작되었다.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는 군 옴부즈맨을 권고하고 국회의원들의 관련 입법안이 쌓여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국방부는 이 제도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국방부나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군 옴부즈맨은 독립성을 요체로 하는데 국방부는 물론 같은 행정부 소속인 국무총리실 산하에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시민사회는 독일처럼 의회 소속을 주장한다. 삼권 분립과 민간 통제라는 원칙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거대 권력인 군을 조사하고 감시하려면 의회라는 권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의견 대립은 팽팽하고 소속 기관에 대한 다툼으로만 올해 반년이 지나가는 상황이다.

인권위에 군 옴부즈맨을 설치하는 것은 일종의 타협이다. 당장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사태만 보더라도, 인권위의 독립성을 신뢰할 수 없다. 나아가 현재에도 인권위는 군 관련 신고를 접수하고 있으나, 이용 실적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신고 이후 사건 해결이나 신고자가 보호된다는 믿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19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국회가 결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이고, 소속 기관을 넘어 군 옴브즈맨 자체의 시행이 중요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군 옴부즈맨은 사람을 살리는 문제다

동의한다. 국회 소속 군 옴부즈맨이 가장 원칙적인 대안임은 분명하지만, 지난 10년간 그 대안을 시작도 못 해본 상태에서 윤 일병이 사망하고 임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부대 불시 방문권’과 ‘자료 제출 요구권’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인권위에서 군 옴부즈맨을 시작해도 큰 진전이다. 사실 국회 특별위원회의 결정은 출발에 불과하다. 실제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끊임없이 물어뜯길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군 옴부즈맨 도입 자체가 좌절될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의 합의라도 결실을 봐야 한다.

윤 일병에 대한 구타는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목격자도 많았다. 만약 군 옴부즈맨이 도입되었다면, 그래서 그 목격자 중 한 명이 신고를 했다면 어땠을까? 신고 다음 날 조사관들이 부대를 방문하고,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고자는 보호되고, 문제는 철저하게 해결된다는 믿음이 병사들 사이에 확산된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일이다. 군 옴부즈맨은 사람을 살리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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