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미군 공군기지의 탄저균 무단 반입과 세균 실험에 대해 정부가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해 대처해야 할 한국 정부의 책임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주한미군이 실시해온 지속적인 세균 실험 계획(주피터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도외시한 채 한국 내 미군기지의 세균 실험을 두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주한미군은 한국 정부에 “살아 있는 탄저균(생균)이 배송된 원인이 규명되고 재발방지책이 마련될 때까지 탄저균 반입과 실험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통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조만간 있을 미국 국방부의 ‘탄저균 스캔들’ 조사 결과 발표를 염두에 둔 사전 조처로 풀이된다.

미국 국방부가 발표할 최종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산 공군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이 배송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 국방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발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영국·일본 등 해외 5개국과 미국 20개 주에 산재한 민간 실험실 89곳에 살아 있는 탄저균이 포함된 샘플이 배송되었다. 더그웨이 연구소(탄저균을 배양한 미국 육군 산하 생물화학병기 실험실)가 탄저균 샘플을 불완전하게 활성화한 데다 사후 비활성화시키는 무균 실험에서도 살아 있는 탄저균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사IN 조남진‘탄저균 국민조사단’이 7월16일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활성 탄저균은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의 군사 목적 실험실 외에도 미국 내 일반 영리회사 연구소와 학술기관 및 다양한 국책 실험실로 배송됐다고 한다. 미국 국방부가 발표할 내용에는 “이 과정에서 최소한 22명이 사후 감염 예방 치료를 받고, 위험 경로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예방적 의학 조치가 취해졌다”라는 내용도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 ‘22명’은 오산 미군 공군기지 탄저균 실험 과정에서 노출된 숫자와 일치한다. 주한미군 측은 지난 5월27일 미국 공군 5명, 육군 10명, 미국 정부 계약인 3명, (미국계) 시민 4명 등 총 22명이 실험 과정에서 노출돼 격리 치료를 받았지만 감염자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국방부는 “더그웨이 생물화학병기 실험실이 그동안 생물학적 위험에 대한 안전규약 및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공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탄저균 배송과 실험을 중지할 것”이라고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방부의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주한미군이 2013년부터 한국에서 실시 중인 방어용 생물화학무기 실험인 주피터 프로그램도 잠정 중단 조처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지난 5월27일 살아 있는 탄저균이 배달된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 현행 SOFA 규정으로는 탄저균 반입을 막을 수 없다.
결국 미국 국방부와 언론이 처음부터 ‘오산 미군 공군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이 배송됐다’고 인정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이 줄곧 생균인지 몰랐다고 강변해온 것은 국내법상 처벌 논란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현행법상 탄저균은 ‘감염병의 예방에 관한 법률’과 ‘생물화학무기금지법’에 따라 규제를 받는다.

보건복지부 측은 주한미군의 탄저균 밀반입이 국내법을 어긴 것 아니냐는 질의에 대해 “주한미군 측은 탄저균 배달 사고와 관련해 사균(죽은 균)을 반입하려 하였으며 살아 있는 고위험 병원체를 국내에 반입하려는 계획은 없었다고 알려왔다”라고 밝혔다. 사균의 경우 고위험 병원체에 해당하지 않아서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탄저균, 100년 지나도 죽지 않고 견뎌”

하지만 국내 생물화학무기금지법과 감염병 예방법 시행령 어디에도 ‘살아 있는 탄저균만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결국 주한미군이 한국 정부에 사전 신고를 하지 않고 탄저균을 반입한 행위는 당연히 국내법에 저촉되지만, 정부가 그 판단을 미국에 넘기고 “우리는 한국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라는 주한미군의 주장을 그대로 믿어줘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7월15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만난 테런스 오샤너시 미7공군 사령관(왼쪽)과 신재현 외교부 북미국장이 탄저균 관련 ‘한·미 합동실무단’을 구성했다.
이와 관련해 우희종 교수(서울대 수의학과)는 “탄저균은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일 땐 보호막을 만든 뒤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100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포자 상태로 견딜 수 있다.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된 탄저균은 살아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무조건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정부가 탄저균 배송업체인 페덱스로부터 신고를 받지 못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페덱스에 대해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당국이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자국 내 민간 세균연구소들 틈에 주요 군사시설인 주한미군 기지를 슬쩍 끼워넣어 탄저균을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주피터 프로그램 팀장이자 미국 육군 에지우드 화학생물학센터(ECBC) 생물과학 본부장인 피터 이매뉴얼 박사는 2014년 3월 발간된 〈ECBC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만약 당신이 새로운 개념의 기술적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싶다면 어떤 장소를 선택할 것인가? 실험과 관련된 이런저런 위험 요소를 까다롭게 따지는 곳보다 긍정적으로 수용해주는 장소를 원할 것이다. 또한 당신이 해당 지역에서 지정학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잘 통제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미국에 협조적인 정부, 미국 국방부의 태평양 중시 전략 등의 환경에 따라 한국이 주피터 프로그램의 근거지로 가장 적합한 지역이었다.”

피터 박사는 또한 주한미군 기지에서 실시하는 주피터 프로그램에 대해 “지금까지 미국의 생물화학무기 관련 프로젝트 중 최고”라고 자랑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군의 생물화학무기와 관련해 가장 큰 프로젝트인 주피터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최초로 진행할 수 있었다. 둘째, 이런 실험의 원칙은 그 성과의 ‘복제 가능성’이다. 즉, 한국에서 이뤄낸 세균 실험의 성과를 이후 다른 지역에서 시행할 세균 프로젝트에도 그대로 복제하여 적용할 수 있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주한미군 기지야말로 미국 국방부 ‘생물화학무기 실험의 최전선’인 셈이다.

SOFA 개정 없이는 탄저균 막을 수 없어

따라서 미국 국방부가 이번에 발표한 ‘탄저균 스캔들’ 조사 결과에 담긴 뜻 역시 이후 주한미군 기지에서 시행하기로 예정된 세균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더그웨이 생물화학병기 실험실의 탄저균 배양 및 배송 과정에서 나타난 실수와 문제점을 시정·보완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사건 발생 두 달이 다 돼서야 늑장 대책을 내놓았다. 7월15일, 오산 미군 공군기지 탄저균 반입과 노출 사고를 다루기 위해 외교부 북미국장과 미7공군 사령관을 공동 위원장으로 하는 ‘한·미 합동실무단’을 구성했다. 합동실무단은 오산 미군 공군기지 실험실을 방문해 탄저균 노출 사태에 대한 기술적인 공동조사와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가 탄저균 배송 사건에 대해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후 한·미 합동조사단이 움직인다는 점에서 시늉에 그칠 공산이 크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통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주한미군은 협정 제26조 ‘보건과 위생 항목’을 들어 오산 미군 공군기지 탄저균 반입과 노출 사고에 대해 SOFA 차원의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한다. 협정 제26조는 “미군 당국은 협정에 따라 허가된 모든 입국 항에서 격리 대상 질병이 발견되지 아니하였다는 확인서를 분기별로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에 제출한다. 그러한 질병이 발견되면 주한미군은 적절한 격리 조처를 취하고 대한민국 관계 보건 당국에 즉시 통보할 것을 양해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탄저균 노출에 따라 실제로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와 관련된 조항일 뿐이다. 이 규정으로는, 미군이 한국에 탄저균을 반입하는 행위를 막을 수 없다. 현행 SOFA 협정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기지 내의 시설과 구역에서 어떤 일(예컨대 ‘무엇이 반입되고 나가는가’)이 일어나는지 파악할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하다.

독일의 미군 주둔군지위협정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이 협정 제54조 4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독일법이 특정 물질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 한 이 물질은 독일 정부의 승인하에 공공보건, 식물 배양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군대를 통해 반입할 수 있다. 독일 정부와 주둔군 지휘부는 이 조항 아래서 독일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할 물질 목록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한다.”

한국의 SOFA 역시 최소한 국내법상 반입이 금지되어 허가가 필요한 위험물질에 대해서는 그 반입 목적은 물론 사전 통보와 협의, 허가를 얻도록 명시하는 개정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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