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 지음, 돌베개 펴냄 음악평론가 강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 두 가지는 무슨 음악을 좋아하느냐는 것과 쓴 책으로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앞의 것은 너무 많고 뒤의 것은 하나도 없다. 그가 책을 통해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을 들려준다. 음악사라기보다 문화사에 가깝다. 재즈와 로큰롤의 등장은 단순한 음악 장르의 출현이 아니다. 재즈가 배태되고 전 세계인의 음악이 되는 과정에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이 겪어야 했던 질곡의 역사가 있다. 그런 식으로 한국의 통기타 음악과 그룹사운드, 모차르트와 베토벤,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몇 가지 도발적인 문제 제기도 등장한다. 하나는 루이 암스트롱에 관한 것. 뛰어난 트럼펫 주자이자 타고난 보컬리스트였던 그가 절정의 스타일 때 미국의 흑인들은 인종차별 반대 투쟁으로 치열한 싸움을 치렀다. 그는 단 한순간도 그에 대해 발언하지 않았다. 순응적인 이데올로기가 그를 영원한 스타로 만들어준 셈이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도 비켜갈 수 없다. 그는 로큰롤 뮤지션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자진 입대했다가 제대 후엔 발라드 가수가 되었다.

 

숫자가 된 사람들 형제복지원 구술프로젝트 지음, 오월의봄 펴냄 198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인 조영선 변호사는 당시 사건을 두고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말한다. 3000여 명을 수용하고 있던 형제복지원은 납치, 감금, 강제노역, 학대, 성폭력의 온상이었다. 밝혀진 사망자 수만 513명이다. 피해 생존자 11명의 이야기를 인권 기록 활동가인 저자들이 재구성했다. 한 피해자는 차분한 어조로 말한다. “형제원 안에서 맞고 기합받는 건 일상이었다. 손가락을 잡고 부러뜨리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가슴 100대를 가격당했던 누군가는 말한다. “차라리 죽었으면 편했을지도 모르지.” 박경보씨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도망쳤어요. 왜 그랬을까요?” 이 모든 인권유린이 사회복지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일어났다. 복지원은 해마다 20억원 이상의 국고 지원을 받았다. 국가는 돈만 지원한 게 아니라 부랑인 단속을 적극 권장해 역 앞의 노숙자나 거리의 사람들을 복지원에 보냈다. 박인근 당시 원장은 2년6개월 형만 선고받았고 복지사업을 계속했다. 현재 피해 생존자가 몇 명이나 살아 있는지 파악조차 어렵다.

 

아빠의 서재
신순옥 외 지음, 북바이북 펴냄
고 최성일 출판평론가의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쓴 독서 일기. 아내 신순옥씨가 쓴 〈남편의 서가〉 그 후의 이야기다. 그림 그리기와 책 읽기를 좋아하고 화가를 꿈꾸는 큰아이 최서해와 레고와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작은아이 최인해가 아빠의 서재에서 책을 찾아 읽고 글을 썼다.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이정우·이창곤 외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비롯해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온 국내 연구자 28명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진단했다. 여기서 말하는 불평등의 범위는 소득, 교육, 노동, 젠더, 복지, 조세, 주거, 경제 구조 등 광범위하다. 분야별로 정책적 제언을 제시한다. ‘대안은 있다’는 사실이 희망적이다.

 

악 테리 이글턴 지음, 오수원 옮김, 이매진 펴냄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이자 이론가인 저자가 악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윤리적 문제에 관해 고민했다. 그는 악과 부정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정한 행위를 악이라 부름으로써 그 행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해 협상 가능성을 가로막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 라즈 채스트 지음, 김민수 옮김, 클 펴냄 어느 날 들른 부모의 집 구석구석에 내려앉은 더께를 보며 심상치 않은 전조를 느낀 딸. 아흔 넘은 부모를 노인 복지시설로 이사시킨 후에도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며 병구완을 한다. 부모의 죽음을 마주한 이후의 시간까지, 실제 겪은 일을 꼼꼼하게 그렸다. 따뜻한 위트가 위안을 준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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