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만 하면 ‘유언비어’래
  • 김은지 기자
  • 호수 406
  • 승인 2015.06.2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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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확산 통제에 실패한 정부의 일사불란함은 엉뚱한 데서 빛났다.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대응이었다. 유언비어는 처벌이 아니라 정보를 명확하게 공개할 때 사라진다. ‘가만있지 않았던’ 국민만 혼내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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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옷 차려입고 매주 고비라고 하네
무슨 말만 하면 ‘유언비어’래

그 내용은 일단 ‘삭제’하고 봅시다

메르스 대응에 한창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의료단체 ‘의료혁신투쟁위원회’가 6월5일 박 시장을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발 빠르게 수사 착수를 결정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했다. 박 시장의 혐의는 뭘까. 허위사실 유포 등이다. 6월4일 기자회견에서 35번 환자의 증상이 나타난 시기를 잘못 말해 사회 혼란을 유발했다는 이유다.

정부가 메르스 대응에 실패하고 있는 모양새지만, ‘유언비어 낙인 공세’만은 예외다. 법무부 김주현 차관은 박 시장 기자회견 다음 날 긴급 브리핑에 나서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나 괴담 유포는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사회 혼란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질병관리를 어렵게 해 효과적인 대처를 방해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곧바로 긴급 간부회의를 열었다.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 이름 공개에 미적대던 그간의 정부 태도와 비견되는 일사불란함이었다. 검찰·경찰은 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명예훼손 피해의 대상은 해당 병원·보건소 같은 의료기관 등이라고 덧붙였다.

형법상 ‘허위사실 유포죄’는 없다. 2010년 수사기관이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처벌하기 위해 사문화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적용했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박씨는 1심부터 무죄를 받고 헌법소원을 해 위헌 결정을 끌어냈다. 이후 정부의 온라인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맡고 있다(그 내용은 일단 ‘삭제’하고 봅시다 기사 참조).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6월16일 의료혁신투쟁위원회가 서울대 의대 앞에서 박원순 시장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명예훼손은 반의사 불벌죄라 해당 기관의 의사가 중요하다. 게다가 해당 기관이 처벌 의사를 밝혔다고 해도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고의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해당 병원의 영업을 방해하겠다는 등의 ‘실제적 악의’가 필요하다. 허위사실이라도 진짜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죄가 될 가능성이 낮다.

세월호 참사 당시 MBN 인터뷰에서 허위사실을 말해 해양경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았던 홍가혜씨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참사 당시 초기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며 “해양경찰이 민간 잠수부에게 지원을 하지 않고 민간 잠수부의 구조작업을 막고 있다는 내용이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당시 피고인에게 허위사실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홍씨의 1심 변호를 맡았던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메르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는 “정부가 제대로 메르스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신뢰를 주지 못해, 제각각 안전을 위해 신뢰할 만한 지인으로부터 얻은 내용을 주고받는 거라 허위 인식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정부 비판 여론을 차단하기 위한 ‘무기’

현재 경찰이 밝힌 유언비어 유포 혐의에는 공무원도 포함되어 있다.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 아닌, 공무상 비밀 누설죄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이다. 경북 포항시청의 한 7급 공무원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메르스 의심 환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다. 포항시청의 한 관계자는 “해당 공무원이 사적으로 정보를 누설한 게 아니라, 다른 국가 정보기관 등과 일상적 업무 협조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퍼진 거다. 메르스 병원 등 초기 정보만 공개했어도 문제가 안 되었을 상황이라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허위사실 유포’는 보통 사람에게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엄벌 강조가 결국 정부 비판 여론 차단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등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꺼내든 무기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위원인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국민 입막음용 수사는 비판 여론을 막으려는 의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초기 정부의 혼선으로 빚어진 공포를 시민에게 으름장 놓는 식으로 형사처벌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계속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6월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온 김주현 법무부 차관에게 야당 의원의 질문이 쏟아졌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니까 악의적인 정보가 유통된다. 그러면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공개해라’ 이게 맞는 태도지 ‘이상한 소리를 하면 다 잡아넣겠다’라고 하는 게 맞느냐(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헌법적 책무가 있는데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국민들이 스스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대응하도록 내버려뒀다(새정치민주연합 임내현 의원).”

학계에서도 유언비어는 처벌이 아니라 정보를 명확하게 공개할 때 사라진다고 본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와 레오 포스트먼이 만든 ‘유언비어 공식(the basic law of rumor)’이란 게 있다. R=i×a. 여기서 R은 Rumor(유언비어), i는 importance(중요성), 그리고 a는 ambiguity(애매함)이다. 애매함이 0에 가까울수록 유언비어는 사라진다. 신뢰를 줄 수 있는 기관의 명확한 정보 유통이 유언비어를 없앨 수 있다.

메르스 사태에 대응해보면,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확진 번복 등 무능한 대처나 최경환 총리대행이 밝힌 병원 정보의 오류와 같은 부정확한 정보가 애매모호함을 부채질했다. 결과적으로 유언비어 형성에 정부가 일조했으면서 ‘가만히 있지 않았던’ 시민에게만 가혹하게 군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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