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계촌초등학교에서는 오후만 되면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온다. 과학실에서는 비올라를, 다목적실에서는 타악기를, 2~6학년 교실에서는 각각 클라리넷과 플루트, 더블베이스, 바이올린, 첼로를 연습하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을 지도하는 강사는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와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 아이들이 단원인 계촌별빛오케스트라는 이제 ‘한국의 엘시스테마’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유명해졌다.

조용한 산골마을을 클래식 명소로 만드는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사람은 이동연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다.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으로 문화 운동을 주도하고 〈문화/과학〉 편집인으로 문화 담론을 제시해온 그는 요즘 서울시의 이런저런 문화 사업에도 관여하고 강원도 평창군과 전북 남원시(판소리마을)에 예술마을까지 만드는 등 몸이 여럿이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다르다. 조언을 하는 것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 역시 다르다. 그런데 이 교수는 이 모든 것을 다 한다. 비판자이면서 조언자이면서 기획자인 그에게 문화 현장에서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이 교수와 함께 평창 계촌마을을 오가는 중에 이뤄졌다.

 

ⓒ시사IN 고재열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강사들이 1주일에 한 번씩 계촌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한다. 이동연 교수가 이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한예종 출신 강사들이 아이들에게 주로 가르치는 게 무엇인가? 악기에 대한 기본기, 운지법과 호흡법부터 차근차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실전 연주를 위한 연습 위주로 하다 보니 기본기가 약한 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당장의 결과물을 내기 위한 곡을 연습하는 것보다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현대차 정몽구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강원도 평창의 계촌마을과 전북 남원시의 비전마을을 각각 클래식마을과 판소리마을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한예종 교수인 첼리스트 정명화 선생과 국악인 안숙선 명인도 이 프로젝트에 멘토로 참여한다. 마을 주민과 아이들이 예술을 즐기게 만들어 이내 예술마을로 자립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대기업 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면, 서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향점이 조금 다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설득해서 우리의 그림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원래 클래식마을만 만들려고 한 것을 우리가 주장해서 판소리마을까지 만들게 되었다. 앞으로 건축마을, 디자인마을도 진행할 예정이다. 7월10일부터 12일까지 계촌마을에서 ‘첼로와 판소리, 마을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축제를 하고 7월25일 계촌마을에서 비전 선포식을 할 예정이다.

현장에 동행해보니 관련 기관들의 요구 사항이 다 다르더라. 어떤 난제가 있었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하다. 이 프로젝트는 아주 소박한 취지를 갖고 있지만, 일을 진행할 때는 매우 많은 협의와 협력이 필요한 까다로운 사업이다. 관련 기관만 해도 현대차 정몽구재단,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원도, 평창군, 전라북도, 남원시 등 여럿이다. 그리고 예술 거장으로 참여하는 정명화·안숙선 선생님과 마을 면장과 이장들 그리고 교장선생님까지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프로젝트다. 이들 이해 당사자를 설득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어렵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의 가치가 있고 소통하려는 태도만 분명하다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이 사업의 취지와 가치가 정말 좋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관계하는 분들이 모두 잘 이해하고 협력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메르스 사태만 빨리 정리된다면.  

ⓒ열강원도 평창군의 계촌마을 주민들이 계촌별빛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 마을을 클래식마을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마을 주민들의 참여가 생각보다 적극적이다. 기본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기획해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야 후원이 끊겨도 자생력이 있기 때문이다. 계촌마을은 귀농 혹은 귀촌자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젊은 학부모가 많다. 추진위원회 위원장도 연극영화과를 나온 분이고 추진위원 중에는 클래식을 전공한 분도 있다. 그래서 호흡이 잘 맞는다.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 말고도 관여하고 있는 일이 많다. 여러 일을 어떻게 한꺼번에 진행하는가?
많기는 하다. 학생들 가르치고 논문 지도하는 일 외에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계간 〈문화/과학〉 편집인, 함께서울포럼 문화정책분과위원장, 성북구 창조문화도시공동위원장, 창동아레나사업과 세운상가 도시재생 문화활성화 MP(총괄계획가),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 예술감독 등. 혹시 내년 총선 준비하느냐는 오해도 받는다. 주변 분들이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일하는 것 같다고 하는데 잠은 그런대로 자는 편이다. 나에게 일하는 기준이 있다면 규칙과 상상이다. 내가 하는 많은 일들이 사실 매주 규칙적으로 돌아간다. 요일과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해서 가급적 그대로 일을 진행한다. 그렇게 일하면 생각보다 일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할 때, 뭔가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계속 상상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제도권 문화정책을 비판해왔는데, 이제는 대안을 제시하고 직접 기획을 하는 처지로 바뀌었다. 처지가 바뀌면 생각도 바뀌나? 이른바 문화운동판에서 20년 넘게 활동하면서 매우 비판적인 활동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안적인 문화정책에 대한 고민도 함께했고 대안적인 문화기획에도 많이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공연이나 축제를 기획하는 일이다. 제주섬머소닉뮤직페스티벌 기획연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음악감독, 난계국악축제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화제가 되었던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도 연출했다. 예술감독으로 참여 중인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 사업도 예술 거장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마을 주민과 더불어 예술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취지에 공감해서 하는 일이다. 제도권 비판에서 대안적 기획으로 처지가 바뀌었다기보다는 항상 양자를 견지하려고 노력했다.

문화연대에서 주도했던 일들은 어떤 것인가? ‘청소년보호법 반대와 표현의 자유 수호운동’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운동’ ‘연예계 PR비 고발’ ‘게임셧다운제 위헌소송’ ‘게임중독법 제정 반대운동’ ‘문화콘텐츠 유통 불공정행위 개선’ 등 주로 대중문화 분야였다. 대개 반대운동을 많이 했지만, 문화권리 확보운동, 예술인 권리운동 등 대안적 문화행동과 관련된 일에도 참여했다. 요즘은 예술 노동자의 복지 문제와 예술인의 표현 자유에 대한 활동을 주로 한다.

〈문화/과학〉을 통해 많은 담론을 던졌다. 이번 호(제82호)에서는 ‘신자유주의 대학’이 화두다. 중앙대 사태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일본 대학과 미국 대학도 두루 살펴 시야를 넓혔다. 다음 호(제83호)에서는 페미니즘 논쟁을 적극 제시할 생각이다. 젊은 여성 편집위원들이 많아서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다.

30대 편집위원이 유독 많은데, 이들을 통해 얻는 장점은 무엇인가? 〈문화/과학〉은 1992년에 창간한 국내 유일의 문화이론 전문 계간지다. 지금까지 통권 82호가 발간되었는데, 제70호를 끝으로 1세대 편집위원인 강내희·심광현 교수가 물러나고 나와 이명원씨가 편집인을 맡고 있다. 최근에 주목받는 30대 젊은 편집위원들을 많이 영입했다. 이들 사이에서도 약간 세대차이가 느껴지는데 내가 갖고 있는 낡은 생각을 교정해주고, 특정한 사안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젊은 편집위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문화/과학〉의 미래가 밝아졌다. 21년간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나는 100호까지 책임지고 물러날 생각이다.

서울시의 문화정책에도 조언을 하는데, 서울시가 문화적으로 지향해야 할 점이 무엇이라고 보나? 서울시와 관련해서는 주로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조언과 마을미디어 활성화, 도시재생사업의 문화적 관점을 견지하는 일들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가 하는 일에 문화적 관점이 많이 고려되지만, 아직까지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를 보장하는 기초 토대가 약한 편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예술인들을 위한 ‘서울 플랜’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영향 평가제도와 문화 다양성 확보를 위한 지표 같은 정책이 실행되어야 한다.

다양한 일을 하다 보면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럴 때 어떻게 풀어가나? 특히 지역에서 축제를 진행할 때 자치단체장이나 실무 공무원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 지역신문사 기자들의 거마비(교통비), 지역 유지에 대한 배려, 축제의 성격과 다른 출연진 요구 등의 문제가 난감하다. 그럴 때는 면전에서는 싸우고, 뒤에서 개별적으로 이해시키는 방식을 찾는다. 문화연대에서 성표현물의 표현의 자유, 대마 비범죄화, 문신 합법화, 성소수자 권리운동, 게임셧다운제 및 게임중독 반대운동 같은 정서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제기할 때 반대편과 정말 많이 싸웠는데, 그럴 때마다 인권과 문화적 권리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대신, 상대방의 합리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절충점을 찾으려고 했다.

관여하는 일들의 궁극적 목표, 즉 대한민국이 어떤 문화국가가 되기를 바라는가? 내가 하는 일들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나 거창하게 국가를 위해서 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즐겁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때 문화 융성이라는 거창한 국정 과제를 제시했지만, 현재 국가 문화정책은 표현의 자유와 문화적 권리를 억압하고, 국정을 홍보하는 구실만 하고 있다. 문화국가라는 거창한 목표를 선전하기보다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문화 향유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문화국가로 가는 토대가 될 것이다.

‘리더십의 재해석’에서는 이전 인터뷰 대상에 대한 평을 듣는다. 방송인 전현무씨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전현무 아나운서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처신이 가벼운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자신의 장점으로 잘 활용하는 것 같다. 일종의 ‘약방의 감초’ 또는 상대방을 골나게 하는 ‘드리블러’라고나 할까? 다만 캐릭터 중복에 따른 대중의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으므로 프로그램 욕심을 좀 버렸으면 한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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