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자신이 원자폭탄 피폭 부모로부터 유전성 희귀병을 얻은 원폭 피해자 2세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한국 원폭2세 환우회를 결성해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린 김형률씨 10주기 추모행사가 5월23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한·일 양국의 반핵 평화운동가들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해자 1, 2세를 비롯해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인근의 주민, 고리원전 연장 반대 대책위 관계자 등이 참석해 핵과 방사능이 인류에 끼치는 가공할 참상을 공유하며 김형률씨의 유지를 이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반경 90㎞에 위치한 센다이에서 ‘코리아문고’를 운영하는 아오야기 준이치 씨(65)는 이날 행사에 맞춰 한·일 양국어판으로 〈피폭자, 차별을 넘어 살아간다〉(일본어판, 삼일서방), 〈나는 반핵 인권에 목숨을 걸었다〉(한국어판, 행복한책읽기) 등 김형률씨 유고집 2권을 펴내 주목을 끌었다. 도쿄 대학 졸업 후 부산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한국의 정치·사회·역사 관련 서적을 번역해 일본에 알리는 대표적 지한파이기도 하다. 그가 일본에 알린 번역서로는 〈압록강의 겨울〉(이태준),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노무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백낙청), 〈한국민주화2.0〉(백낙청) 등이 있다. 아오야기 준이치 씨를 만나 출판 후기와 일본 방사능 피해의 현실을 들어보았다.  

ⓒ시사IN 신선영김형률 유고집 한·일판을 펴낸 아오야기 준이치 씨.
일본 사람이 김형률씨 유고집을 한·일 양국에서 펴낸 동기가 궁금하다. 2002년 1월 생전의 김형률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일본인으로서 원폭 2세에 미치는 방사선 후유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한국 사회의 변화를 김형률을 통해 목도하고 한·일 간의 새로운 인연과 교류 지점이 반핵 인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2005년 김형률씨가 사망했고, 나는 49재에 참석해 그의 부모님께 관련 책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10년 전 부모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4년 전 고향 센다이 근처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누출 사태가 일어난 것을 보면서 그가 제기한 반핵 인권 사상이 현재 일본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양국어판 출판을 단행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 상황은 어떤가. 후쿠시마의 피해는 쉽게 끝날 문제가 아니다. 대기와 바닷물, 농작물 등이 다 오염됐으니 피해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원폭처럼 한순간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온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내부 피폭으로 먹을거리·물·공기가 오염되고 방사능이 축적되고 있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를 목격하고 보니 반핵 인권운동가로서 김형률이 살아온 생애와 모습이 새삼 절실하게 다가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대지진으로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된 뒤 후쿠시마 지역 고교생들이 주민들을 상대로 연극과 백일장 등을 통해 실태를 알리고 고민하는 자리가 매년 서너 차례씩 열리고 있다. 그 자리에서 “앞으로 우리가 후쿠시마 출신이란 것을 알리면 결혼도 못할 테니 호적을 바꿔야 할 것”이라는 대사가 거리낌 없이 나왔다. 한국의 김형률과 달리, 방사능 피해자가 나서서 항의하고 생명과 건강권을 요구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숨어버리려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피폭 피해자라고 당당하게 커밍아웃해 반핵 인권운동에 나선 김형률의 사상을 일본 젊은 층에게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혔다.

대규모 방사능 누출 피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국가적인 무책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진이 나면 언제든지 제2, 제3의 사고가 날 위험이 있는데도 정부 차원에서 여전히 방치하고 있다. 도쿄 대학 원자학과 고이데 히로아키 교수가 중심이 돼 원폭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체르노빌처럼 석관으로 핵 연료봉을 영구 봉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비용이 많이 든다며 외면했다.

후쿠시마의 방사능 누출 피해는 계속되는가.

지난 4월에는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이상 징후가 보고됐다. 노심이 아직도 계속 용융돼 물 온도가 70~80℃로 올라갔지만 당국은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단지 측정기의 기계적 결함으로 수치가 높아진 것이므로 측정 기계를 바꾸겠다고 둘러댔다. 지난 3월에는 최첨단 로봇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 내부를 촬영 감시한다고 선전했지만, 그 로봇이 하루 만에 못쓰게 돼 원자로 안에 방치돼 있다는 점을 숨기다 나중에 들통이 났다.

후쿠시마 주민은 당국의 무책임에 대항하지 않나. 후쿠시마에서는 현재 주민들이 목소리 내기가 정말 어렵다. 정부 당국의 압력과 주민 스스로의 피해의식 때문이다. 떠난 사람, 남아서 살아가야 할 사람 모두 새로운 차별과 편견을 두려워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4년이나 흘렀으니 돌아가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지금도 15만명 정도가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탓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우리는 원전 건설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 건설업체인 히타치, 도시바, 웨스팅하우스를 상대로 일본 국민과 한국·타이완·미국 시민 4000여 명이 소송인단으로 참여해 도쿄 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시사IN 정희상5월23일 부산민주공원에서 열린 고 김형률 10주기 추모제에 모인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원전 사고 피해자를 대상으로 역학조사가 이뤄지고 있나? 일본에는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피해 역학조사를 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고 있다. 체르노빌과는 대조적이다. 원전 폭발 사고 29년이 흐른 요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 체르노빌 인근 지역에서 피해가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 역학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고 전에 주민의 80~90%가 건강했다면 요즘은 90% 이상이 면역력 이상을 겪고 있다는 장기간 추적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대로 가면 핵무기와 원전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

일본의 우경화가 강해지면서 핵무장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일본의 정치·사회 환경이 아베 정권 들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한국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는 것도 한국민에게 죄송스러울 정도로 극심해졌다. 하지만 아베 정부의 노선이 이대로 계속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향후 4~5년이 고비다. 2019년 한국의 3·1운동 100주년, 2020년 도쿄 올림픽, 타이완의 정치·사회적 정세 변화 등이 맞물리면 더 이상 아베 정권 같은 역사인식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살아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향후 피폭자 운동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이라고 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기본 가치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바로 고 김형률의 반핵 인권 의식이라고 본다. 이번 김형률 10주기에 참석하면서 고리 원전 재가동에 대한 다양한 문제 제기가 나오는 걸 보고 탈핵·반핵 운동의 열기가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강하다는 걸 실감했다. 같은 피폭자 처지에서 볼 때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 단위에서 손잡고 탈핵·반핵 인권을 위해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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