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
  • 김연희 기자
  • 호수 403
  • 승인 2015.06.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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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의 두 기자가 최저임금으로 한 달 생활을 하는 ‘체험 취재’를 했다. 한 기자는 4주 동안 한 식당에서 일했고, 다른 기자는 네 군데에서 ‘알바’를 하며 매일 일기와 가계부를 썼다. 몸으로 겪은 한 달의 기록을 전한다.
여행용 가방 하나만 들고 나왔다. 속옷 2벌, 양말 2켤레, 청바지, 셔츠 2벌, 재킷, 담요, 노트북이 담겼다. 내 손에는 116만6220원이 쥐어졌다. 2015년 시간당 최저임금(5580원)에 주휴수당을 받는다고 가정해 월 환산 임금(최저임금위원회가 참고 지표로 삼는 월 환산 임금액)을 사전에 지급받은 것이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최소한 이 정도 돈을 벌어야 하고 번 돈 안에서 생계를 꾸려야 한다. 그래야 파산을 면한다.

살 곳부터 구했다. 보증금을 내는 방은 구할 수 없었다.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고시원 방 안에 샤워기와 세면대만 있으면 보증금 없이 월 32만원, 양변기가 추가되면 월 35만원이었다. 35만원짜리 방을 계약했다. 좁다. 양손을 뻗으면 벽이 닿았고 키 170㎝인 내가 누우면 딱 맞았다. 그래도 고시원은 최저임금 생활자에게 최적의 위치에 있었다. ‘최저가’ 물품을 판다는 다이소가 바로 앞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기자가 머문 서울 신림동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월 35만원을 내야 했다. 양손을 뻗으면 벽에 닿을 정도로 좁았다.
4월20일. 주휴수당 없고, 근로계약서도 없고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취업했다. 명동은 땅값이 비싼 곳이다.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자리는 3.3㎡(1평)당 공시지가가 2억6631만원에 달한다.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9년을 모으면 한 평을 살 수 있다. 일터는 그곳에서 500m 떨어진 곳이다. 김밥 한 줄 값도 평균보다 1000원이 비싼 명동에서 다른 지역과 똑같은 가격이 있다. 바로 최저임금이다. 내가 취업한 음식점 점장은 “나이가 많으니 시급으로 6000원을 주겠다”라고 약속했다. 동료들은 20대 초반이었다. 시간당 최저임금 5580원에서 400원 정도를 더 주겠다는 의미다. 점장도 직원이다. 사장은 따로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8시간, 주 6일을 근무하는 조건이었다. 주휴수당 언급은 없었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고, 개근을 하면 하루치 유급수당을 지급받아야 한다. 단기 아르바이트생도 주휴수당을 받는다. 일자리를 구하는 게 급해 주휴수당의 ‘주’자도 꺼내지 못했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근로계약서 작성을 위반한 사업주는 벌금 500만원 처벌을 받지만 고용노동부의 단속은 느슨하다. 써야 할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으면서, 내가 내야 할 건강진단 결과서(옛 보건증)는 꼼꼼하게 챙겼다. 음식점 노동자는 식품위생법에 따라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영업취소 또는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사업주로서는 문 닫는 건 피해야 한다. 보건소에서 폐결핵과 장티푸스 검사를 했다. 보건소 직원은 장티푸스 검사용 면봉을 건넸다. 화장실 문에 ‘면봉은 항문에 2.5~4㎝ 정도 삽입한 후 천천히 돌려서 검체를 채취하세요’라는 설명이 그림과 함께 붙어 있다. 검사하는 데 15분, 검사 비용으로 1500원을 냈다. 방값에 이은 두 번째 지출이었다.

4월21일. 빨간 옷 vs 검은 옷

‘최저임금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며 4계명을 정했다. 첫째, 세 끼를 챙겨 먹는다. 둘째, 일주일에 친구를 한 번 이상 만난다. 셋째, 운동을 한다. 넷째, 미래를 준비한다.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한다(최저임금법 제1조)는 입법 취지에 맞춰 정한 생활 수칙이었다.

첫날부터 지킬 수 없는 수칙이라는 걸 알았다. 오전 10시부터 일하는데 점심시간이 없었다. 이곳에서 옷 색깔은 신분을 상징한다. 알바생들은 빨간색 폴로셔츠를, 직원은 검은색 폴로셔츠를 입었다. 까만 옷을 입은 직원들은 점심을 먹었다. 빨간 옷은 오후 5시나 6시, 근무시간이 끝난 뒤에 볶음밥이 제공되었다. 빨간 옷은 휴식시간이 따로 없었다. 화장실을 가면서도 점장에게 알려야 한다. 처음에는 너무 허기져서 손님에게 나가야 할 해물파전을 먹을 뻔했다. 주방 이모가 내게 파전을 건넸다. 점심 대신 먹으라는 줄 알았다. 접시를 들고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내게 주방 이모가 말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점심 대용으로 초코파이를 앞치마 주머니에 담아 화장실에서 먹기도 했다. 음식점에 여자 화장실은 하나밖에 없었다. 밖에서 사람이 기다리면 초코파이를 먹을 시간이 부족했다. 나중에는 크기가 작은 파이를 챙겼다. 일하며 몰래 입에 쑤셔넣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기자가 일한 명동의 음식점에서는 알바생은 빨간색 셔츠를, 직원은 검은색 셔츠를 입었다. ‘빨간 옷’에겐 휴식시간이 따로 없었다.
매일 점심때면 비상이 걸린다. 테이블 1번부터 31번까지, 124석 자리가 모두 찼다. 손님이 떠난 테이블은 최대한 빨리 치워야 한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는 깍두기·샐러드·휴지가 뒤범벅된 테이블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점장은 무거운 프라이팬을 가리키며 5만원이라고 일러주었다. 내 일당보다 비쌌다.

빨간 옷 주희(21·가명)는 테이블을 치울 때 손이 보이지 않았다. 나처럼 테이블을 치울 때 한 손만 쓰면 ‘하수’인데, 두 손을 자유롭게 쓰는 주희는 ‘고수’다. 그녀는 검은 옷들이 하는 밥 볶기도 능숙했다. 열일곱 살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5년 동안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5년간 한 직종에서 일했는데도 받는 시급은 똑같다.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이다. 이 가게에서 4년째 일하는 현아(23·가명)는 주희보다 시급이 높다. 대신 현아는 가끔 주방에서도 일했다. 그녀는 각종 재료들을 1인분, 2인분으로 나눴다. 주문받은 음식이 나갈 때마다 양을 잴 틈이 없다. 손 감각에 따라야 한다. 음식점 수익과 직결되는 고난도 기술이다. 숙련된 주방 이모나 검은 옷들이 맡는 일이다. ‘에이스 알바생’ 현아가 받는 시간당 임금은 6200원이다. ‘나이가 많아 6000원을 지급한다’는 점장의 말이 큰 선심으로 다가왔다.

동익(21)은 내 바로 위 선배다. 나보다 일주일 먼저 일을 시작했다. 동익은 얼마 전까지 친구와 함께 텔레비전을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 일했다. 시급 8000원, 좋은 편이었다. 사고가 났다. 친구가 철판을 압착하는 프레스에 손이 깔려 손가락 세 개를 잃었다. 직업군인이 되겠다는 친구의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 동익은 “친구는 산재보험을 인정해달라며 아직까지 회사와 싸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쓰리잡’을 뛰었다. 음식점에서 일하고 주말에 결혼식장에서 트롬본을 연주하며 틈틈이 초등학생들에게 음악 교습도 했다. 돈을 꽤 벌 것 같지만 목돈을 쥐지는 못했다. 고졸 학력 때문이다. 동익은 누나 집에 살면서도 월세로 20만원씩을 냈다. 그의 꿈은 군대에 다녀와 음식점을 차리는 것이다. 동익은 선심이라도 쓰듯 “누나 그때 내 가게에서 일해라. 시급 6000원 줄게”라고 말했다. 내가 시급 6000원을 약속받은 것을 몰랐다.

주희 역시 부모·오빠와 함께 살면서 월세 40만원을 부담했다. 손이 빠른 주희는 정직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당분간 직원을 늘리지 않겠다는 게 사장의 방침이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기술을 익혀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개 알바생들은 비슷한 최저임금 자리를 구해 이동했다. 우민(26·가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군대에 가기 전에 이곳에서 일하고 제대 후 알바 신분에서 벗어나 직원이 되었다.

빨간 옷 가운데 유일하게 내일을 준비하는 이는 은아(20·가명)다. 그녀의 휴대전화 알람은 새벽 4시30분에 울린다.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고자 하는 그녀는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주 3일은 가게로 출근해 5시간에서 6시간을 일한다.

4월28일. “빨간 옷들 다 모여. 가위바위보 해”

오후 3시 점장이 퇴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외쳤다. 모두 점장 눈을 피했다. 말로만 듣던 꺾기 시간이 돌아왔다. 시선을 피하자 점장은 “빨간 옷들 다 모여. 가위바위보 해”라고 말했다. 난 얼른 주방으로 숨어버렸다. 꺾기는 손님이 없을 때 직원 일부를 조기 퇴근시키는 것이다. 해당자는 그만큼 돈을 벌지 못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명동 일터에서 신림동 고시원까지 버스를 타고 오갔다. 비용 때문에 택시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곳은 사장의 의중에 따라 노동시간이 조정되었다. ‘노동 유연성’이 100% 관철된다. 의문이 들었다. 점장이 전화를 하지 않는데도 사장은 어떻게 꺾기를 해야 할지 말지를 알까? 정답은 내 머리 위에 있었다. CCTV. 매장에는 지하까지 4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사각지대가 없다. “사장이 스마트폰으로 CCTV를 보면서 꺾기를 지시한다”라고 현아가 귀띔했다.

고시원에 와서는 까무룩 잠이 들기 일쑤였다. 일하는 동안 쌓인 피로가 몰려오는지 저녁 8시쯤이 되면 잠이 들어 30분 넘게 세상모르고 곯아 떨어졌다. 퇴근 후 시간이 노동과 별개라는 생각은 순진했다. 내가 하는 노동이 내 삶의 방식을 결정했다. 최저임금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아니 기계인 스마트폰도 충전이 필요하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나면 미래를 준비할 체력은 이미 고갈된 뒤였다. 그래도 운동을 한다는 수칙을 지키고 싶어서 동네에 있는 운동시설을 알아봤다. 요가 학원도 헬스장도 가장 싼 곳이 한 달 6만원, 10시간 노동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앞으로 닥쳐올 꺾기가 떠올랐다. 등록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4월29일. 명품 가방에 튄 양념

점장 얼굴이 심란했다. 직원 수찬(28·가명)은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이게 얼마짜리인지나 알아요?” 손님은 카운터에서 매섭게 점장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수찬이 밥을 볶다가 양념이 손님의 가방에 튄 것이었다. 눈곱만치 작은 점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명동. 가방은 200만원짜리 명품이었다. 점장이 명품 세탁점까지 따라간 뒤에야 손님은 겨우 화를 가라앉혔다. 세탁비가 30만원이나 나왔다. 수찬은 “내가 낼 수 없다”라고 버텼다. 점장은 “사장한테 직접 말하라”고 했다. 30만원이면 내가 50시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고, 한 달치 고시원 월세다. 내가 수찬이라면 눈앞이 깜깜했을 것이다.

퇴근하며 세제를 사러 슈퍼에 갔다. 제일 싼 세제가 7000원이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슈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다이소가 있는데.’ 다이소에서는 2000원짜리 세제를 팔았다. 잘 세탁될까 의심스러웠지만 중요한 건 가격이었다. 역시 빨래 후에도 하얀 양말 발바닥이 새까맸다. 최저임금의 삶은 디테일 안에 있다. 더러운 양말 바닥을 보면서도 새 세제를 장만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세정력 좋은 세제 7000원’ 가격은 ‘내 노동 1시간 이상’으로 계산되었다. 다음번에 빨래할 때는 세제를 좀 더 많이 넣어볼 작정이다.

생활 수칙으로 세운 4계명 가운데 ‘미래를 준비한다’를 위해 4만6200원을 지불하고 토익 시험을 신청했다. 학원에는 못 가도 교재는 필요했다. 수험생들에게 ‘파랑이’ ‘빨강이’라고 불리는 기본서를 중고 서점에서 각각 8000원에 구입했다. 정가대로 사면 1만8800원이다. 공부한 흔적이 전혀 없는, 2006년판이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출판된 교재였다.

5월11일. 단기 알바를 해야 하나

오후 4시. 점장이 불렀다. 또 꺾기, 즉 강제 퇴근을 하라면 버티겠다고 다짐했지만 점장은 꺾기보다 더한 통보를 했다. 빨간 옷 월급을 80만원에 동결하라는 사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알렸다. 점장은 “이제 6시간 초과로는 일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노동시간이었다. 주 40시간을 일해 최저임금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점검해보고 싶었다. 전제인 주 40시간 노동시간 확보가 무너졌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꺾기’ 등으로 수입이 줄어들어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중고 휴대전화를 7만원에 팔았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토요일 단기 알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생활비에 보태려고 중고 휴대전화도 7만원에 팔았다. 미래를 위해 투자한 토익 시험도 취소했다. 4만6200원 전액을 환불받았다. 환불받은 돈은 고스란히 통신비로 나갔다.

토익은 취소했지만 ‘미래를 준비한다’는 수칙은 지키고 싶었다. 고시원과 가까운 서울대도서관을 찾았다. 책은 빌릴 수 없었다. 관악구 주민이면 보증금 5만원, 그 외 지역민은 보증금 10만원을 내야 했다.

5월17일. 월급날 바뀐 시급

잘렸다. 지난주 ‘5월20일까지 일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점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날 오후 4시, 사장이 다녀간 뒤 점장은 그만 나오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꺾기를 당했다. 음식점에서 나온 뒤 사흘간 호텔 연회장 서빙 일자리를 찾았다. 여기도 최저임금이었다.

음식점 월급이 들어온 날 통장을 확인해보니 88만3000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내가 일한 시간은 155시간. 시급 6000원으로 계산하면 93만원이 들어와야 맞다. 내가 착각했나 싶어 점장에게 근로시간과 시급을 전화로 물었다. 그제야 점장은 내 시급이 5800원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주었다. 사장과 상의한 결과 첫 달은 5800원을 주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근로시간은 154시간이었다. 지각한 날짜를 집계한 결과 총 1시간을 깎았다고 했다. ‘10여 분 일찍 오고 10분 늦게 간 날은 왜 계산하지 않았느냐’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다 좋다. 154시간이라고 해도 1만원이 모자랐다. 점장은 “사장이 실수로 그런 거 같다”라며 1만원을 다음 날 입금했다.

생존이 아닌, 생활을 원했다. 한 달 동안 단기 알바를 뛰어서라도 일주일에 평균 41시간을 일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법 1조에 나오는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법조문과 현실의 차이는 컸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를 시작하며 세운 4계명도 지키지 못했다. 식당에서 일했지만 내 점심은 챙겨 먹을 수 없었다. 마지막 주 친구와의 약속은 돈이 없어서 취소했다. 식비와 주거비로도 적자가 나는 판에 헬스클럽에 등록할 수는 없었다. 당장 급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토익 시험도 취소했다. 출산한 친구의 아기를 위한 선물과 어버이날 선물은 1만원짜리 티셔츠를 샀다. 카드 포인트로 화장품을 사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래도 남은 건 마이너스 9만6630원. 단기 알바까지 포함해 한 달간 108만4500원을 벌었다. 17번 꺾기를 당해 애초 회사에서 지급받은 116만6220원에 미치지 못했다. 생활비는 118만1130원을 썼다. 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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