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 놓인 알록달록한 조형물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든다. 아이들은 작품을 만져보기도 하고 무지개 색깔의 원판을 돌려보기도 하다가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조형물은 설치미술 작가 빠키(Vakki) 씨(38)가 설치한 ‘환영의 나무’라는 작품으로 ‘2015 열린 국회마당(5월16~23일)’ 행사의 부속 전시로 설치되었다. ‘환영의 나무’는 가상의 세계에서 자라나는 식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빠키 작가의 작품은 시민의 놀이터 구실을 톡톡히 했다.

‘열린 국회마당’은 국회를 시민에게 개방한다는 취지로 하는 행사지만 사실 국회 잔디마당은 원래 시민에게 개방된 곳이다. 다만 국회 정문에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어서 평소 시민들은 ‘저곳은 허가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겠거니’ 하며 지나치곤 했다.

‘열린 국회마당’ 부속 전시에 참여할 때 빠키 씨는 국회가 정말 시민에게 열릴 수 있도록 국회의사당 본관 건물을 스크린으로 해서 시민의 모습을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 카메라로 촬영해 빔으로 쏘는 것을 구상했다. 시민 자신이 국회에 비치는 것을 보고 몸을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춤을 추기도 하는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국회는 여기까지는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분수대에 기존 영상작품을 상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사IN 신선영‘2015 열린 국회마당’ 행사에 참여한 빠키 씨가 자신의 작품 ‘환영의 나무’ 앞에 서 있다.

국회에 예술 나무를 심어서 시민의 놀이터를 만든 빠키 씨는 요즘 가장 바쁜 예술인 중 한 명이다. 10년 가까이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나와서 전업 작가가 되었기 때문에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작가’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이 말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표현이다. 빠키 씨는 “계절이 바뀌면 사람들은 지난 계절을 잊는다. 봄이면 겨울을 생각하지 않듯이 기업에서 일할 때 기억은 다 지워졌다. 그리고 기억은 편집된다. 자신의 기억을 사실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의 나를 설명하면서 그때의 나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단순 반복이 주는 의외의 편안함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는 것은 그녀에게 부품에서 완전체로 바뀌는 것을 의미했다. 빠키 씨는 “이런 전공을 하면 이런 기회가 생길 거야 하는 생각으로 세상에 나갔는데 막상 나는 너무나 작은 사람이었다. 갑의 눈치를 보는 을이 있고, 그 을에 고용된 병이 있고, 그 밑에서 일하는 정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판타지가 춤을 추는데 현실의 나는 부품에 불과했다”라고 말했다. 하나의 소우주를 구현한 듯한 빠키 씨의 작품은 부품이 아니라 전체를 그려내려는 욕망을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알록달록한 문양을 새긴 판들이 빙빙 도는 그녀의 작품은 옵아트(기하학적 형태나 색채의 장력을 이용하여 시각적 착각을 다룬 추상미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처음에는 산만해 보이지만 일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계속 보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요즘 말로 ‘멍 때리는’ 기분이 든다. 의외의 편안함이다.

“사람들은 삶의 불안을 반복적인 행위로 치유하곤 한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안이 생기는 것이다.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면 불안감을 해소할 수도 있다. 내 작품에는 단순 반복적인 게 많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해준다면 이런 점을 그리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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