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쿠사 제도(天草諸島)의 이와지마(維和島) 섬을 휘감아 도는 코스로 역사적 함의가 큰 길이다. 일본에서는 드물게 가톨릭 관련 유적이 있는 곳이다. 아마쿠사 시에 속한 이와지마는 일본 최대의 농민혁명인 아마쿠사·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났던 곳이다. 아마쿠사·시마바라의 난을 이끈 ‘소년 장수’ 아마쿠사 시로는 천주교도였는데 그가 태어난 곳이 이곳 조조어항(蔵々漁港)에 있다. 그가 일으킨 농민 봉기는 막부에 의해 결국 진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무려 3만6000여 명이 참수당했다. 이런 순교 유적이 있는 이와지마 코스는 천주교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마쿠사 제도가 속한 구마모토 현은 구마모토 성이 유명한데 이 성을 축조한 초대 성주가 바로 임진왜란의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이다(구마모토 성은 벚꽃이 유명하다). 우리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왜장이지만 현지에서는 구마모토의 기틀을 다진 능력 있는 성주로 통한다. 구마모토 현은 우리와 백제 시절부터 교류가 활발한 곳으로 지금도 충청남도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평야 지형에 다도해인 구마모토 현은 우리나라 서남 해안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와지마 코스가 개장할 때 아마쿠사 시의 젊은 시장은 답사 온 한국 기자들에게 성대한 저녁을 대접하며 춤을 추면서까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시장은 시의 경제 사정이 외환위기 때의 한국처럼 안 좋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아마쿠사 시는 규슈올레 조성사업에 가장 열심이어서 이와지마 코스 외에도 마쓰시마 코스와 레이호쿠 코스가 더 놓였다.

ⓒ이한구 제공이와지마 코스에서 만난 검은 자갈밭 해변
어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와지마 코스

이와지마 코스는 일본 어촌 마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다. 센자키 버스정류장을 지나 아마쿠사 시로가 살았던 동네를 거쳐 가는 이와지마 코스 초반 3분의 1은 다른 코스에 비해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선사시대 고분군을 지난다는 것을 빼고는 우리 서해안 마을의 풍광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인돌 지역으로, 돌널무덤이 여기저기에 있어서 직접 누워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카야마 산 정상에서 360° 조망을 한 뒤로는 달라진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일본의 다도해, 야쓰시로카이(八代海)의 풍경을 조우하게 된다. 대나무와 등나무가 뒤섞여 울창한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끝없이 펼쳐진 검은 자갈밭 해변이 나온다. 근처에 집도 상점도 없는 완전히 고립된 해변이다. 바다에서 떠밀려온 고목과 쓰레기만이 문명의 흔적을 전하는 이 이름 없는 해변이 올레꾼들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검은 자갈밭 해변이 끝나는 지점에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발견해낸 오솔길이 있다. 처음 길을 낼 때 규슈올레 조성팀은 해변길 끝의 포장도로로 올레 길을 연결하려 했다. 그때 서 이사장이 “여기쯤 옛날 사람들이 지나다녔던 길이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산등성이와 산등성이 사이를 짚었는데 거짓말처럼 길이 나왔다. 일품 오솔길이었다. 마치 옛사람들이 후손을 위해 아껴두었던 길인 듯 보였다.

이와지마 코스의 묘미는 곳곳의 유자나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은 것인지, 혹은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유자나무들이 방치되어 수백, 수천 개의 유자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유자나무 과수원과 과수원 사이에는 동백꽃잎이 선운사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있었다. 이 길은 봄이 제철인 듯싶다.

일본 열도에서 세 번째로 큰 규슈 섬, 그 규슈 섬에 딸린 아마쿠사 섬, 그리고 그 아마쿠사 섬에 딸린 이와지마 섬, 섬의 섬의 섬을 찾아 들어가는 길은 뭔가 나만의 비밀 장소를 찾아가는 독특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와지마 섬은 어묵이 유명했다. 마을 주민들이 지친 올레꾼들을 위해 어묵을 들고 나와 맞아주었다.

 코스 안내

센자키 버스정류장-센자키 고분군(千崎古墳群)-조조어항(蔵々漁港)-감귤밭-이와 사쿠라 꽃공원(維和桜·花公園)-다카야마 고산-소토우라(外浦) 자연해안-해안 코스-산길-시모야마(下山)-시모야마 마을-센조쿠(千束) 버스정류장-센조쿠 천만궁(千束天満宮)

 교통편

1. 후쿠오카 공항, 하카타 항-JR 하카타 역-(신칸센)-JR 구마모토 역-(쾌속버스 아마쿠사 호)-산파루 버스정류장-(노선버스)-센자키 버스정류장

2. 구마모토 공항-(공항 리무진버스)-구마모토 시 교통센터-(쾌속버스 아마쿠사 호)-산파루 버스정류장-(노선버스)-센자키 버스정류장

 놓치지 마시라

파루칸 아마쿠사·이와지마 코스 내에 있는 과수원에서는 2~3월이 되면 파루칸(パール柑)이라 불리는 귤이 열린다. 파루칸은 이와지마의 특산품으로 깔끔한 과육이 특징이다. 껍질의 흰 부분을 반 정도 잘라서 설탕절임으로 만든 화과자도 인기다.

 주변 규슈올레 코스

아마쿠사 제도에는 이와지마 코스 외에도 마쓰시마 코스와 레이호쿠 코스가 더 있다. 세 코스는 각기 다른 특징이 있다. 이왕 아마쿠사에 간 김에 세 곳을 모두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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