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올레 코스 중에서 가고시마 현 이부스키 코스는 제주올레와 많이 닮았다. 주로 평지를 걷기 때문에 어린이와 노약자도 걸을 수 있고 산과 마을과 들과 바다를 전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쿠라지마라는 큰 화산이 있는 가고시마 현은 현무암질 토양이라 흙이 검은색이고 흑돼지의 주산지이며 유채꽃이 만발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제주도와 무척 닮았다.

이부스키 코스는 일본 JR의 최남단 역인 니시오야마(西大山) 역에서 출발한다. 니시오야마 역에서는 역시 일본 최남단 화산인 가이몬다케(開聞岳) 산이 뒤로 보이는데, 최남단 역이라고 호들갑을 떨지 않고 소박하게 표식만 남겨놓았다. 이 역에서 나가사키바나(長崎鼻) 곶까지 들판 길을 걷는다. 등대가 있는 곳에 이르면 광활한 태평양에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하다.

나가사키바나에서 가이몬다케로 향하는 해안가를 가와지리(川尻) 해안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한국 해변과 비슷한 송림이 길게 펼쳐져 있다. 송림은 거센 바닷바람을 피할 때 좋다. 송림 사이로 푸른 바다와 가이몬다케를 보면 무척 아름답다. 가이몬다케는 완벽한 정삼각형 모양이다.

ⓒ이한구 제공가와지리 해변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는 이부스키

이부스키는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는 곳으로 오래전부터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의 배경이 되었던 야쿠시마 섬을 비롯해 남쪽 섬들도 멀리 보인다(야쿠시마 섬에 조성된 원시림 트레일도 인기가 있다. 시간이 되면 이곳까지 가보는 것도 좋다).

이부스키 코스는 대부분이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다. 해변길에서 검은 모래사장을 걷는다. 오리빈(감람석)을 함유한 모래가 있는 모래사장이다. 오리빈은 가이몬다케의 분출물 속에 함유된 광물로, 긴 세월 분출물이 파도에 깎여 투명한 황갈색을 띠는 모래가 되었다. 이부스키는 검은 모래 찜질이 유명한 곳으로 온천 지역이라 모래 속으로 조금만 파고 들어가 누우면 찜질 효과를 볼 수 있다.

ⓒ이한구 제공가이몬 역 주변의 유채꽃 밭
이부스키 코스는 높이 964m로 완벽한 삼각형 모양의 산인 가이몬다케를 바라보며 걷는다. 가이몬다케는 제주도의 오름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제주올레 팀은 이 산에 ‘왕오름’이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가이몬다케 밑의 가와지리 어항을 지난 뒤 산을 휘감는 느낌으로 걷게 된다.

가이몬다케를 휘감고 걸으면 곧 가이몬 산록향료원(꽃과 향을 파는 가게)이 나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일본에 ‘허브(Herb)’라는 말이 알려지기도 전에 ‘방초(芳草)’를 기르던 곳이다. 1941년에 만들어진 이 허브 농장을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허브 관련 상품을 구입하거나 허브 요리로 허기를 달랠 수도 있다.

이부스키 코스 종반부에는 가가미이케(鏡池) 호수가 있다. 맑은 날에는 가이몬다케가 이 호수에 투영된다. 일본인들은 호수에 투영된 모습을 ‘거꾸로 가이몬다케’라고 부른다. 코스의 마지막은 유채꽃이 만발한 가이몬 역이다. 시작점인 니시오야마 역처럼 소박한 곳으로 유채꽃과 어우러져 한적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특히 봄에 좋다.

 코스 안내

JR 니시오야마 역-소나무 숲-레저센터 가이몬-가와지리 해안(川尻海岸)-가와지리 어항(川尻漁港)-가이몬 산록향료원(開聞山麓香料園)-JR 히가시가이몬 역(東開聞駅)-가가미이케(鏡池)-히라키키 신사(枚聞神社)-JR 가이몬 역

 교통편

1. 가고시마 공항-(공항 리무진버스)-JR 이부스키 역-(이부스키 마쿠라자키센 보통열차)-JR 니시오야마 역

2. 후쿠오카 공항, 하카타 항-JR 하카타 역-(신칸센)-JR 가고시마 추오 역-(이부스키 마쿠라자키센 보통열차)-JR 니시오야마 역

 놓치지 마시라

하쿠스이칸 이부스키 코스 근처에는 ‘하쿠스이칸(白水館)’이라는 료칸이 유명하다. 65년 전 이곳에 료칸을 지은 주인 부부는 장수 부부(93·88세)로도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때 묵었던 숙소로, 특히 음식이 맛있다. 무역업을 하다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은 사쓰마 자기전시관을 만들어서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만든 자기를 전시하고 있다.

야쿠시마 이부스키까지 왔다면 야쿠시마(屋久島) 섬에 꼭 가보길 권한다. 7000년 된 조몬스기 나무가 있는 야쿠시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섬이다. 한국에서 산의 바위들이 각기 이름을 가지고 있듯 이 원시림의 나무들에도 이름이 있다. 이끼 낀 숲이 주는 신령스러움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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