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올레 여러 코스 중에서 사가 현 다케오 코스는 가장 일본스러운 길이라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일본 전원도시 풍경과 일본식 저수지, 일본식 절 그리고 일본식 산행로를 경험할 수 있다. 규슈올레 4개 코스 중에서 제주올레와의 차이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다케오 코스는 규슈올레의 대표 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다케오 코스의 소요 시간은 4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직접 걸어보면 생각보다 더 걸린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릴 곳이 많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일본 소도시의 삶을 밀착해서 볼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집 마당에 무엇을 널어놓는지, 정원은 어떻게 꾸미는지 소소한 것들을 엿볼 수 있다. 다케오 시(武雄市)는 전국적인 명물이 된 시립도서관을 비롯해 공공기관 인프라가 좋은 도시다.

다케오 코스는 후쿠오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다케오 역에서 시작한다. 제주올레의 상징인 간세(조랑말) 문양 표지판이 올레꾼들을 맞이한다. 철도가 발달한 일본은 역에서 파는 도시락인 ‘에키벤’이 유명한데 다케오 역은 특히 맛있는 에키벤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중간에 먹을 점심으로 사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역에서 주택가로 꺾으면 증기기관차를 전시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쇼와(昭和) 시대에 운영되던 기차다.


ⓒ이한구 제공 이케노우치 호수

도심을 지나 시와이와 운동공원 뒷산에서 본격적인 산책로가 시작되면 높고 굵은 대나무들이 올레꾼들을 반긴다. 대나무가 어른 허벅지만큼 굵다. 다케오 시 전경이 보이는 야노우라 고분까지 이르는 이 산책로는 그동안 방치되었던 것을 규슈올레 조성팀이 발견해서 올레 길로 사용했다. 야노우라 고분에서는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토토로 모양 산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미후네야마이다. 평균적인 일본의 산은 한국 산보다 높은데 다케오 시 주변은 낮은 산이 많아서 전반적으로 산세가 한국과 비슷하다.

내려오는 길에는 ‘기묘지(貴明寺)’라는 일본 전통 사찰이 나오는데 교사 생활을 하다 가업으로 절을 물려받은 주지 스님이 올레꾼들에게 차를 내어준다(흔쾌히 인증샷도 함께 찍어준다). 이 절에는 놓치지 않아야 할 명물이 있다. 바로 LPG 가스통으로 만든 범종이다. 의외로 소리가 좋다. 500년이나 된 절의 범종이 가스통이라는 점이 놀랍다.

조금 힘들더라도 ‘A코스’를 걸어야

종교가 혼재된 일본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고, 결혼식은 기독교식(서양식)으로 하며, 죽으면 절에서 장례를 치른다고 하는데 기묘지에 가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인들이 가묘로 쓰는 납골탑을 볼 수 있다. 지장보살 등 석상이 많은데 옷을 입히거나 모자를 씌운 것이 이채롭다. 아이를 잃은 엄마들이 아이의 영혼을 달래주려고 동자승을 세워두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이에게 고까옷을 입히듯 동자승들에게 옷을 입혀놓았다.

산을 내려오면 전원주택 단지가 나와서 집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통 일본식 기와집부터 최근 유행하는 ‘땅콩집(한 필지에 두 가구용으로 지은 집)’까지 형태가 다양하다. 빨래부터 무말랭이 말리는 것까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관개수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인구 5만명의 다케오 시는 후쿠오카에서 전철로 1시간 거리로 출퇴근이 가능한 도시다. 전원주택에 사는 일본인의 삶을 볼 수 있다.


ⓒ이한구 제공 산악유보도

마을을 벗어나면 관개수로의 수원지 구실을 하는 커다란 이케노우치 호수가 나온다. 1625년에 농업용 저수지로 만든 인공호수다. 호수에 나무와 숲이 비친 모습이 아름다워서 사진 찍는 명소다. 호수 옆에 사가 현립우주과학관이 있다. 한국 같으면 가든(음식점)과 파크(모텔)가 있을 법한 자리에 집과 공공시설이 들어서 있어서 평화로운 풍경이다. 호수 옆에 온천이 나오는 곳이 있는데 체육시설을 만들어 운동 후 온천욕을 할 수 있다.

호수를 지나면 A코스와 B코스로 나뉜다. 조금 힘들더라도 A코스를 권하고 싶다. 기가 막힌 일본 전통 산책로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 ‘산악유보도(山岳遊步道)’를 따라 올라가면 계곡 합수 지점에 둑을 막아 만든 저수지가 나온다. 섬처럼 솟은 가운데 언덕에 정자를 만들어 인공 정원 같은 느낌이 든다. 이후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등산보다는 강도가 약하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다케오 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다시 시내를 거쳐 다케오 신사를 지난다. 이곳에는 수령이 3000년 이상 된 신령스러운 녹나무 ‘다케오노오쿠스’가 있다. 다케오 신사에서 녹나무까지는 왼쪽에 삼나무 숲이, 오른쪽에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어서 마치 녹나무가 이들을 다스리는 느낌이다. 또 다른 3000년 이상 된 녹나무 ‘가와고노오쿠스’는 다케오 시 문화회관 근처에 있는데 다가가서 직접 만질 수도 있다. 녹나무가 가장 신령스럽게 보이는 시간은 새벽이기는 하지만 언제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두 녹나무를 보고 난 뒤에는 다케오 시립도서관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정규 코스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코스에서 멀지 않다.


ⓒ이한구 제공 다케오노오쿠스
다케오 코스는 사쿠라야마 공원을 거쳐 다케오 온천의 입구 대문인 ‘로몬’에서 마무리된다. 돌부처 88개가 산 이곳저곳에 숨어 있는 사쿠라야마 공원은 돌부처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로몬은 도쿄 역을 설계한 다쓰나 긴코가 설계한 것으로 일본의 중요문화재다. 로몬을 비롯해 다케오 온천의 건물들은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다. 대부분 이곳에서 코스의 마지막 인증샷을 찍곤 한다.

다케오 온천은 일본 ‘전통 공중목욕탕’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 특산물인 허브티 레몬그라스를 마시면서 10엔 하는 찐빵을 먹어보기를 권한다. 숙소로는 온천 앞에 ‘교토야’라는 100년 전통의 료칸(일본 전통 여관)이 있는데 주인 내외가 무척 친절하다. 소읍이지만 마을 곳곳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다.

 코스 안내

JR 다케오 온천 역-다케오가와(武雄川)-시라이와(白岩) 운동공원-기묘지(貴明寺) 절-이케노우치(池の内) 호수 입구-펜션피크닉 앞 A, B코스 갈림길

A코스 산악유보도(山岳遊歩道)-정상-A, B코스 합류점

B코스 257개의 계단-전망대-호텔 시키노소라(四季の空)-A, B코스 합류점-시라이와(白岩) 운동장-다케오 시 문화회관-다케오 신사 내 녹나무-쓰카사키 녹나무-다케오 시청 앞-나가사키 가도(長崎街道)-다케오 온천 관광안내소-사쿠라야마 공원 입구-다케오 온천 누문(楼門)

 교통편

후쿠오카 공항, 하카타 항-JR 하카타 역-(특급 미도리, 특급 하우스텐보스)-JR 다케오 온천 역

 놓치지 마시라

사쿠라야마 공원과 다케오 온천 1300년 전 험한 돌산기슭에서 뿜어져 나온 다케오 온천은 대지의 힘을 받아 건강을 지켜주는 곳으로 여겨졌다. 온천을 감싸는 사쿠라야마(桜山) 공원은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과 함께 온천의 번성과 대지의 영력을 기원하는 지장보살상 88개가 흐뭇한 미소로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보물찾기를 하듯 공원 곳곳의 지장보살 석상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다케오(武雄) 온천은 보습력이 탁월해 미인탕으로 불리며, 숙박은 하지 않고 온천만 할 수 있는 공중 온천들도 있다. 또한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개성이 풍부한 도예공방에서 도예 체험도 가능하다.

다케오 시립도서관 다케오 시는 일본에서 ‘이주하고 싶은 지방도시’ 중 상위권에 꼽힌다.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다케오 시립도서관이다. 일본 최대 DVD 대여업체인 ‘쓰타야(蔦屋)’가 2013년부터 위탁 운영을 맡았는데, 커피를 마시며 자유롭게 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다. 서고에 있는 책을 모두 개가실로 옮겨 열람이 가능하며 도서관의 운영시간도 밤 9시까지다. 연간 1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도서관이다.

나가사키 가도 다케오 시는 예전 나가사키 항과 후쿠오카를 잇는 길(나가사키 가도·長崎街道)의 역참마을이었다. 에도 시대 쇄국정책으로 문호를 막은 일본 막부는 유일하게 나가사키 항을 개방했다. 나가사키를 통해 들어온 서양 문물이 교토나 에도(지금의 도쿄)로 가는 길에 반드시 들르게 되는 곳이어서 역참마을이 옛길과 더불어 남아 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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