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올레와 관련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처음 개장한 네 코스 답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서 소감을 말할 때였다. 함께 답사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소감을 밝혔는데 제주올레 올레지기인 김미선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15년 만에 규슈에 다시 왔다. 15년 전에 제주도 농민들과 함께 감귤농사 연수를 왔는데 설움을 많이 당했다. 감귤 가지를 꺾어 가고 농사 기술을 훔친다며 우리 일행을 10m씩 떨어져서 걷게 했다. 그렇게 서럽게 한라봉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랬던 규슈에 다시 제주올레를 전수하기 위해 오다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오랫동안 규슈는 일본이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대문 구실을 하는 곳이었다. 벼농사와 철기 문화를 비롯해 많은 문물이 규슈를 통해 일본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이후 상황은 역전되었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문화와 문명을 일방적으로 전수받는 수입국 위치였다. 100년 넘게 그런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러다 다시 우리 문화가 일본에 전달되는 재역전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한류였다. 그리고 규슈에서는 제주올레를 수입해 규슈올레를 만들었다.


규슈 앞바다

파급효과는 한류가 월등히 크지만 제주올레는 우리의 가치를 전파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새로 길을 내지 않고, 있는 길을 찾는다. 풍경 좋은 곳만 보게 하지 않고, 사람 사는 모습도 보게 한다. 환경 파괴와 동식물 피해를 최소화한다’라는 제주올레의 정신을 그대로 전수했다. 400년 전 임진왜란 때 잡혀 간 조선 사기장들이 규슈에서 처음 만든 자기 이름이 ‘불만 빌렸다’는 의미의 ‘히바카리(火ばかり)’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제주올레가 전수한 규슈올레는 ‘길만 빌렸다’는 의미의 ‘미치바카리(道ばかり)’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봄 다케오 코스를 처음 개장한 후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계속 코스를 확장해 지금은 총 15개 코스(총 177.4㎞)가 되었다. 처음에는 길을 걷고 싶어도 찾아가기가 힘들어서 걷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관련 여행상품도 많이 나왔다. 제주올레가 자리를 잡으면서 제주도 관광객들이 ‘제주도에 온 김에 제주올레를 한번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규슈를 찾는 관광객들이 ‘규슈에 온 김에 규슈올레를 한번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많이 알려졌다.

제주올레를 걸으며 여행에 대한 생각, 길에 대한 생각, 제주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듯이 규슈올레를 걸으며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한 여행사 대표는 “일본 여행 사업을 20년 가까이 하는데 이렇게 목적 없이 일본의 시골길을 걸어본 것은 처음이다. 이렇게 걸으니 일본인들이 사는 모습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현지 자치단체의 한 관광 담당 공무원은 “일본은 고도성장기에 대부분의 시골길을 포장했다. 그런데 새로 길을 찾으며 저쯤에 사람이 다니지 않았을까 하고 가보면 거짓말처럼 길이 있어서 신기했다”라고 말했다.


 

ⓒ규슈관광추진기구 제공 규슈의 전통축제

마음을 열고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장소, 길

규슈올레를 개장할 때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바람은 규슈올레가 제주올레를 일본에 알리는 계기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제주올레를 수입한 규슈올레를 걷겠지만 이것이 마중물이 되어 일본 관광객들도 규슈올레를 걷고 곧 이들이 원조인 제주올레도 찾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일단 규슈올레가 난 지역의 단체장과 공무원들은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대부분 제주올레를 다녀갔다.

규슈올레는 우리의 가치를 수용한 길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길인 동시에 일본을 배울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코스가 지방 소도시와 그 주변에 나 있다. 자생성을 갖추고 있고, 젊은 시장이 다양한 시도로 시에 활력을 더하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지역이나 특산물을 개발해서 맵시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놓은 모습도 볼 수 있다.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의 삶도 풍요로운, ‘선진국 일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규슈는 가면 갈수록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규슈올레 코스 중에는 우리의 동학혁명과 비슷한 농민혁명이 일어났던 지역도 있고 서양 문물을 일찍 받아들여 서양식 건물이 많은 곳도 있다. 제주도처럼 현무암질 토양에 흑돼지가 유명한 곳도 있고, 강원도처럼 산세가 아름다운 고산지대도 있다. 평야가 넓고 물이 풍부한 지역은 우리 전라도처럼 음식 맛이 좋다. 그래서 걸으면 걸을수록 일본이 친근해진다.

그러나 규슈는 또한 우리를 긴장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공항에서 본 멋진 일본 장수의 모습이 임진왜란 때 우리 땅에 쳐들어왔던 왜장이라는 사실에, 광장에서 본 늠름한 영웅의 동상이 정한론을 편 인물이라는 사실에 긴장하게 된다. 고즈넉한 옛 건물이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숨진 형무소였다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한·일 관계를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의 포스터를 길에서 보게 되기도 하고 음식을 먹을 때는 혹시나 후쿠시마 원전 가까운 곳에서 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규슈올레는 걸을 가치가 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일본인들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한이 겹겹이 쌓인 과거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현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의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려면 서로 마음을 열고 만나야 한다. 길은 마음을 열고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 규슈는 어떤 곳?

규슈는 일본을 구성하는 큰 섬 4개 중에서 세 번째 큰 섬으로 한국과 가까운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1시간20분 걸리고 부산공항에서는 50분 정도면 도착한다. 부산항에서 후쿠오카 하카타 항까지는 쾌속선으로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인구 약 1300만명인 규슈 섬은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구마모토, 오이타, 미야자키, 가고시마 등 7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최초의 문명을 꽃피운 규슈는 역사의 고장이자 일본 고대 신화의 배경이 되는 신화와 전설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세계로 열린 창’이기도 해서 외국인에게 개방적이다. 연중 온화한 기후로 1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규슈를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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