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임지영․고재열 기자

신임 영진위원장은 박근혜 싱크탱크 출신…
연극제 맞춰 문 닫는 극장… 세월호 집회 참여해서?


영화계만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자격 시비를 일으킨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사퇴한 후 단장 자리가 공석이다(〈시사IN〉 제388호 ‘그녀를 임명한 보이지 않는 손?’ 기사 참조). 정형민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채용 비리로 직위 해제를 당한 후 관장직이 6개월 넘게 공석이다. ‘문화 융성’을 도모하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이 엉성하다며 연극인들도 웅성거리고 있다.

올해 서울연극제는 거리에서 시작해서 거리에서 끝이 났다. 보통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막식과 폐막식을 했는데 올해는 이용할 수가 없어서 그 앞 마로니에공원에서 개막식과 폐막식을 진행해야 했다. 연극인들이 대학로 중심 극장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연극 행사의 문을 열고 닫은 것이다.

1977년 시작해 올해 36회째인 서울연극제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연극 축제 중 하나다. 주로 창작 초연이나 재연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 35년 동안 860여 극단의 배우 2만1000명이 연극제 무대에 올랐고 100만명 넘게 연극을 관람했다. 한마디로 연극인들의 최대 잔치라 할 수 있다.
 

ⓒ연합뉴스연극인들이 4월13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앞에서 일방적인 폐관 소식에 항의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연극인들은 이 같은 연극인들의 잔치에 재를 뿌린 곳이 다른 곳도 아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공연예술센터라는 데 분통을 터뜨린다(한국공연예술센터는 아르코예술극장·대학로예술극장 등을 운영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국공연예술센터를 지휘·감독하는 곳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창의적인 방법으로 연극인들의 축제를 훼방 놓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국공연예술센터는 2015년 정기 대관 심사에서 서울연극제가 탈락했다고 서울연극협회(회장 박장렬)에 통보했다. 이유는 ‘대관 신청 서류 미비’였다. 30년 넘게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서울연극제를 치르던 서울연극협회는 당황했다. 연극제라는 행사 특성상 참가작이 미리 정해질 수 없기 때문에 ‘공모와 심사’를 전제로 신청했는데 탈락했기 때문이다(다른 연속 사업은 ‘공연작품 미정’으로 신청했지만 대관이 받아들여졌다).

연극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서울연극제지키기 시민운동본부’를 꾸리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연극인 226명이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했다. 서울연극협회가 한국공연예술센터를 고소하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발 물러나서 고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대관을 약속했다.

그렇게 사태가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올해 서울연극제 시작 직전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다시 발목을 잡았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무대 구동장치에 이상이 확인되었다며 안전점검을 이유로 갑자기 대관 불가를 통보해온 것이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서울연극제 상연작 중 두 편이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유인화 한국공연예술센터 센터장은 기관지염 등을 이유로 병가를 내고 2주일 정도 출근하지 않았다. 서울연극제 기간은 연극인들의 투쟁 기간이 되었다. 한국연극협회, 한국연극배우협회, 한국희곡작가협회,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한국대학연극학과 교수협의회 등 연극계를 총망라한 단체 ‘한국연극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서울연극제지키기 시민운동본부’에 이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박장렬 공대위 위원장은 “고장이 난 무대 구동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장치를 사용하면 되는데 서울연극제 기간에 맞춰 극장을 폐쇄한 점, 대체 극장으로 동숭아트센터 대극장이나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등 비슷한 규모의 극장으로 옮겨주지 않은 점 등은 서울연극제를 무시한 처사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공대위는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제시한 대체 극장에서 공연하지 않고 자체 섭외한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등에서 공연했다.

세월호 유가족 집회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인가

공대위에서는 대학로 연극을 지원하고 격려해야 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원인을 연극인들이 세월호 유가족 집회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많은 현장 연극인들이 유가족 천막 농성장을 지켰고 추모 공연도 여러 편 제작했다. 이번 서울연극제 기간에도 비경연 부문인 ‘맨땅에 발바닥 전’에서 세월호 추모 옴니버스 연극 〈총 맞은 것처럼〉(극단 완자무늬, 김태수 연출) 〈비가 내리면〉(극단 76단, 기국서 연출) 두 편을 공연했다.

갑작스러운 공연장 장기 휴관으로 1억5000만원 정도의 손해를 입은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는 한국공연예술센터를 대상으로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한국공연예술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서로 ‘지시를 받아서 진행했다’거나 ‘원만히 처리하라고 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나 몰라라 하는 중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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