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은 러닝타임이 3시간16분이나 된다. 긴 상영 시간을 붙들 만한 스펙터클도 없고 흥미를 일으킬 만큼 갈등 구조가 복잡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관객을 영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를 보다 보면 황량하고 이국적인 풍경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보고 난 다음에는 고전 한 권을 읽고 난 것 같은 묵직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윈터 슬립〉을 연출한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다. 2003년 〈우작〉으로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으며 〈기후〉(2006)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쓰리 몽키스〉(2008)로 감독상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2011)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해 〈윈터 슬립〉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롱 쇼트와 롱 테이크가 자주 쓰이는 〈윈터 슬립〉은 서정적이다. 영화의 배경인 터키 카파도키아의 바위굴 주택 지역은 〈스타워즈〉 1편의 촬영지였던 곳으로, 얼핏 황량해 보이지만 집들이 옹기종기 앉은 모습이 따뜻해 보이기도 한다. 바위들도 가까이서 보면 기괴하지만 멀리서 보면 우리가 익히 보던 암산을 닮아 묘한 친근감을 준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포스터도 마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멀리서 영화를 보던 관객은 점점 영화에 빨려 들어가 주인공의 격한 감정에 동화된다. 영화의 백미는 주인공들의 ‘설전’이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훌륭한 사람(Excellent People)〉과 〈아내(The Wife)〉를 모티브로 한 〈윈터 슬립〉에는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볼테르 등의 영향을 받은 대사가 들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알베르 카뮈의 〈칼리굴라〉의 포스터도 영화에 등장하는데, 연극적 대사가 영화의 화면 안에 무리 없이 녹아들어 있다.

주인공 아이딘은 배우 출신 지식인으로 풍경 좋은 관광지인 고향에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호텔을 운영하며 지역 신문에 칼럼을 쓴다. ‘아이딘’은 터키어로 ‘깨어 있는 지식인’이라는 의미다. 아이딘은 이혼한 여동생 네즐라와 젊고 아름다운 아내 니할과 함께 살고 있다. 번역가인 네즐라는 책을 읽으며 소일하고 아내는 오지 학교를 지원하는 자선단체를 이끌고 있다. 경치 좋은 곳에서 경제적으로 여유를 즐기며 지내는 전형적인 지식인 가정의 모습이다.

평온한 이 가정이 세입자 이스마엘의 아들이 던진 돌멩이 하나 때문에 파문이 인다. 아이가 돌을 던진 이유는 집세를 못 낸 집에 아이딘이 보낸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어가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압수해가고 아빠를 때렸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아이딘의 위선이 드러난다. 그는 방금 전까지 집사에게 세입자들이 버텨서 집세를 제대로 받을 수 없고 법은 세입자 편이라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고도 아이딘은 자신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해석한다. 10㎞가 넘는 길을 걸어서 사과하러 온 세입자의 동생 함디에 대해서는 이맘(이슬람교 성직자)의 발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린다. 남의 속마음을 간파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는 눈을 감는 이중성을 보인다.

자신이 쓰는 글에서는 약자를 대변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는 작은 왕국의 왕처럼 군림한다. 자기 짐은 무조건 집사에게 들리고 사소한 심부름도 가정부에게 시킨다. 곤란한 상황이 되면 자신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집사가 중간에서 해결하도록 한다. 돈으로부터 초연한 듯 행동하지만 동생에게는 “기생충처럼 도움 받으며 사는 데 익숙하지? 온 세상에 받을 빚이라도 있는 듯 행동하고”라고 비난하고 아내에게는 “최저임금 일자리 구해서 8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퇴근 후에 기력 남으면 구호사업도 계속해 봐”라고 비꼰다.
 

주인공 아이딘(맨 왼쪽)은 카파도키아에서 호텔을 운영한다. 젊고 아름다운 그의 아내 니할(가운데)은 자선단체를 이끌고 있다. 세입자의 아들(오른쪽)이 던진 돌멩이가 이들의 위선을 드러낸다.
인간의 기만에 대해 끝까지 몰아붙이는 감독

감독은 동생과 아내의 시선을 빌려 그런 아이딘을 비난한다. 그러면서 동생과 아내의 이중성도 드러낸다. 여동생 네즐라는 아이딘의 아내 니할에 대해 “니할은 무슨 수호천사인 척하지만 사실은 아무 일도 안 해. 자선이란, 굶주린 개한테 뼈 던져주는 게 아니라 자기도 배고플 때 남과 나누는 거야”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네즐라 역시 자신이 아끼는 컵을 실수로 깨뜨린 여종업원을 맹렬히 비난한다. 관념 속에서는 관대하지만 현실에서는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인간의 기만에 대해 감독은 끝까지 몰아붙인다. 아이딘과 네즐라와 니할은 모든 것을 상대방과 세상 탓으로 돌린다.

영화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선악구도를 피한다. 약자를 묘사하며 그들을 대변하지만 그들의 모순 역시 드러낸다. 세입자의 동생인 이맘 함디가 “닦달 안 해도 되는데 괜히 하셨어요. 저희 자존심도 지켜주시는 게 나은데. 안 그래요? 저희도 자존심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여러 차례 사전 통보를 무시했다는 것 역시 비켜가지 않는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보여줌에 약자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감독은 아이딘을 통해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고 편리하게 해석하는지 보여준다. 아이딘과 니할의 봉사단체 동료인 초등학교 교사 레벤트의 설전은 저항 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인식 차이를 보여준다. 레벤트가 셰익스피어를 인용해 “양심이란 겁쟁이들이나 쓰는 단어로 본디 강자를 위협하고자 만들어낸 말이다. 우리의 튼튼한 팔이 우리 양심이고 칼이 우리 법이니라”라고 비꼰다. 그러자 아이딘은 “자네가 인용한 구절에 대해 화답하겠네. 우리는 반드시 속을 운명. 온갖 시도도 부질없으리. 매일 아침 근사한 계획을 세우고는 종일 빈둥거리지”라고 대응한다.

인문학이라는 말이 남용되다시피 하는 시대에 〈윈터 슬립〉은 진정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아낸 영화라 할 수 있다. 존경받는 한 지식인의 이중성을 폭로하며 진실이 얼마나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지, 사람이 얼마나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지, 자선이 얼마나 자기기만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나를 가장 잘 알고 늘 함께 있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아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보여준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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