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구원할 거창한 리더십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리더십을 찾아보자는 의도에서 진행 중인 ‘리더십의 재해석’ 시리즈 네 번째 주인공은 MC 전현무씨다. 토크쇼에서 출연자들을 고무시키고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능력이야말로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리더십의 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KBS 아나운서 출신인 전씨는 요즘 〈비정상회담〉(JTBC), 〈나 홀로 연애 중〉(JTBC), 〈굿모닝FM 전현무입니다〉(MBC 라디오), 〈나 혼자 산다〉(MBC), 〈수요 미식회〉(tvN), 〈뇌섹 시대-문제적 남자〉(tvN), 〈김구라 전현무의 필살기쇼〉(SBS 플러스)의 진행을 맡는 등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얼마 전 종영된 SBS 〈K팝스타 4〉와 JTBC 〈히든싱어 3〉의 사회도 맡았다.

밉상에 깐족거리는 이미지의 평범한 ‘아나테이너’였던 그는 2012년 KBS를 퇴사한 뒤 최고의 MC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방송 관계자들은 이제 그를 유재석·신동엽·강호동과 함께 4대 MC로 꼽는다. 토크쇼라는 말의 전장에서 그가 어떤 전략과 전술로 임하는지 들어보았다.  

ⓒ시사IN 이명익전현무씨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연예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기존 MC와의 차별화 전략으로 한류 예능을 대비한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토크쇼 주제가 그다지 흥미 없을 때도 있을 것 같다. 직장인들이 관심 없는 주제를 놓고 장시간 회의해야 하는 것처럼. 대다수 직장인들은 그런 회의 시간에 ‘유체이탈’을 한다. 나는 ‘빙의’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새로운 관심과 호기심을 가져보라고 하고 싶다. 토크쇼 진행자들은 자신이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해 자주 방송을 한다. 그럴 때 어떻게 몰입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를테면 ‘플로리스트’가 그날 주제라고 하자. 그럼 나는 플로리스트가 되려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수강하는 사람이라고 자기최면을 건다. 그런 처지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일종의 빙의인 셈이다.

관심 없는 일에 몰입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프로그램을 여러 개 하다 보니 몸이 피곤하다. 몰입해서 빨리 끝내는 게 나로서는 이익이다. 한번 할 때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몰입한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이왕이면 재밌게 해야 하지 않을까? 뒤에서 구시렁대는 것은 자기 손해다.   몰입이란 결국 정보처리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정보의 조합이 중요한 시대다. 포인트와 관점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또한 정보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비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중간고사 벼락치기 공부와 비슷하다. 필요할 때 채워넣고 용도가 끝나면 그냥 비워내야 한다. 그래야 또 채울 수 있다.

밉상에 깐족거리는 ‘아나테이너’ 이미지였는데 이제는 머리 좋고 순발력 있는 MC로 재평가받는다. 예능 프로그램의 리포터가 될지언정 교양 프로그램은 안 하겠다고 했다. 당시 아나운서 실장이 ‘왜 네 이미지를 가볍게 소비하려고 하느냐?’며 충고했지만 가는 길이 명확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 ‘최고의 예능 MC’가 처음부터 목표였다. 그렇다고 예능 PD들에게 ‘저 좀 써주세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컷이 나와도, 몇 초만 나와도 모두 하겠다고 했다. 〈연예가 중계〉 리포터를 할 때는 7시간 기다려서 멘트 하나 얻기도 했다. 제작진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3년 정도 하니 〈스타  골든벨〉 MC 제안이 왔다.

KBS를 나올 때는 어떤 ‘차별화’를 꿈꿨나? 요즘 예능 프로그램은 수요가 다양해지고 콘텐츠 중심이다. 최고는 아니지만 손해는 안 보도록 만드는 진행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박은 없어도 중박 이상은 해주는 ‘연비 좋은’ 진행자가 되기로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차별화’를 자주 얘기하던데, 늘 차별화를 의식하나? 생존 노하우인 것 같다. 처음 언론사에 입사할 때도 어떻게 하면 다르게 답할까를 고심했다(그는 〈조선일보〉 기자, YTN 아나운서, KBS 아나운서에 합격했다). 뻔한 질문에 뻔하지 않게 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KBS 아나운서 시험에서 사장 면접을 볼 때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개그콘서트〉라고 답했다. 다르되 근거가 있게 다르면 기억에 남는다. 극단적인 현실주의자가 되라고 충고하고 싶다.

KBS에서 나올 때 유재석씨의 충고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어떤 충고를 해줬나? 새로운 회사와 계약하기 전날 밤 집 앞에서 만났다. KBS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야생에서 홀로 생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더라. 네 군데 정도 제안이 들어온 상태였다. 판단이 잘 서지 않았는데 유재석씨는 ‘어디로 가라’고 말하지 않고 네 군데의 장점과 단점을 알려주고 스스로 판단하라 했다. 그러면서 ‘어딜 가도 후회는 하게 된다. 너한테 중요한 장점을 살려라’고 말했다.

토크쇼를 하기 전 다른 출연자들과 대기실에서 ‘아이스 브레이킹’은 어떻게 하는가? 안 한다. 가벼운 수인사만 한다. 아이스 브레이킹(어색함 깨기)은 대기실이 아니라 방송에서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을 갑자기 친한 척하는 게 가식적일 수도 있는데, 그러다가 통하면 실제로 친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방송이다.

서로 사이가 안 좋거나 서먹한 사람이 함께 출연할 경우에는 어떻게 중재하는가?

불편한 관계라는 것을 까발린다. 안 친한 게 보인다고 일부러 건드린다. 당황하지만 자연스럽게 인정하면서 서로 관계를 풀어나간다. 배려하기보다 정공법으로 푼다고 할 수 있다.

출연자들과 본인의 ‘케미스트리(공감대)’가 안 맞는 경우도 있을 텐데…. 〈비정상회담〉 진행을 맡았을 때 성시경씨와 합이 맞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 서로 역할이 겹칠 것 같더라. 실제로 초반에는 애를 먹었다. 굉장한 신경전이 있었다. 아마 그 친구도 의식을 했을 것이다. 서로 오디오가 물리는 경우(동시에 발언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3~4회 녹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뉘었다. 성시경씨는 ‘한국 대표’의 마인드로 얘기를 하고 나는 토론 주제를 발제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토크쇼 출연자 중에는 너무 나대는 사람도 있고 반면 방청객처럼 그냥 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 진행자 처지에서는 둘 다 난감할 것이다. 전자는 김구라씨처럼 대하고 후자는 유재석씨처럼 대한다. 김구라씨는 이런 사람에게 대놓고 얘기한다. ‘뭐 해? 주변 반응을 봐. 네가 자꾸 그러니까 저기 작가 얼굴이 썩어가고 있잖아’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나도 정공법으로 무안을 준다. 후자는 유재석씨의 방법을 쓴다. 다른 출연자들에게 기가 눌려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보고 조용히 웃는다. 그러면 카메라가 그를 따라간다. 기회를 주고 그 사람을 살려준다.

다른 토크쇼 진행자들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신동엽씨는 자기 콘텐츠가 많은 진행자다. 자체 발광 스타일이라고 할까? 누구 도움 없이도 프로그램을 끌고 갈 수 있다. 유재석씨는 배려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전체를 아우를 줄 안다. 한 명도 안 버리고 가려고 한다. 강호동씨는 유재석씨와 반대다. 되는 사람을 부각시킨다. 안 되는 사람은 그냥 묻어버린다.

본인은 어떤 스타일의 진행자인가? 신동엽씨가 조정자 역할을 잘하면서도 자기 에피소드를 간간이 넣어서 ‘나 살아 있어’ ‘나 웃기는 사람이야’라는 걸 보여주는데 나도 비슷하다. 굳이 안 해도 되지만 하나 더 쳐주면 재밌겠다 싶을 때 과감히 파고든다. 진행도 하면서 플레이어도 된다. 플레이어는 안 한다고 선을 긋는 사람도 있는데 올드한 방식이라고 본다. ‘패널 못지않게’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자기 색깔을 유지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조화형 혹은 화합형 리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PD나 작가와도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일정한 법칙은 없다. 작가들은 대본을 무시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대본대로만 하는 것도 싫어한다. 대본은 존중하되 더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토크쇼에서는 잘 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처음 토크쇼를 하면 자신이 준비한 것을 쏟아내기에 바쁘다. 그런데 맥락 없이 나온 말들은 편집되기 마련이다. 상대방 말을 잘 들어주다 보면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른다.

 

ⓒjtbc <비정상회담> 화면 갈무리전현무씨는 미리 조율하기보다 정공법으로 토크쇼를 이끌어간다. 위는 JTBC <비정상회담>의 한 장면.
전에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악플’이라는 말도 했는데, 악플에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일단 읽기는 다 읽는다. 대신 신경 쓸 것과 신경 쓰지 않을 것을 구분한다. 근거 없이 감정적인 비난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근거가 확실하고 주장이 합리적이면 댓글을 외운다. 그리고 반성한다. 이런 쓸모 있는 글을 찾기 위해 사금을 캐듯이 댓글을 읽는다. ‘난 안 본다’는 연예인들도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대중과 소통하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얼핏 집단적으로 잘못된 판단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대다수 누리꾼들은 현명하게 원인을 분석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고 있다고 보나? 〈뇌섹 시대-문제적 남자〉는 처음 녹화 들어갈 때 콘셉트가 없었다. 제작진도 답을 못했다. 대본에 오프닝도 클로징도 없었다. 출연자들끼리 서로 공통분모도 없었고 호흡도 안 맞았다. 목요일 밤 11시에 머리를 써야 하는 이런 프로그램을 누가 볼까 싶었다. 그런데 첫 회부터 시청률이 〈썰전〉을 눌렀다. 느낀 것이 많았다. 요즘 시청자들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자들은 가공된 것을 싫어한다. 요즘은 너무 겸손해도 비호감이 된다. 잘난 척만큼이나 겸손한 척도 싫어하는 것이다. 잘난 건 잘난 대로 인정하는 것이 낫다. 시청자들은 ‘생 리얼’을 원한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토크쇼 MC로서 이런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요즘 리더는 1인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코디네이터다. 전통 방식의 리더를 바라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도 카리스마 있는 리더 1명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은 인기가 없다. 우리 사회의 리더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돌격 앞으로’라고 외치는 리더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SNS를 팔로잉하거나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그가 하는 말을 경청한다.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연예인으로 꼽힌다. 방송인은 얇고 넓게 알아야 한다고 본다. 깊이 아는 사람은 학자다.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정초에는 트렌드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사놓고 읽는다. 서점에 가도 스테디셀러가 아니라 베스트셀러를 산다. 흐름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사IN〉도 구독한다.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다고 들었다. 한류 예능은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중국어가 가능하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준비 중이다. 중국어가 가능해지면 기존 MC와 차별화된 경쟁력이 생긴다. 그들의 언어로 방송을 한다면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MC로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나. 이메일 주소로 ‘래리 전 라이브’를 쓴다. CNN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에서 따온 것이다. 시사와 예능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 내공을 쌓으면 나이가 들어서 시사를 재밌게 풀어내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본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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