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00명의 젊은이가 감옥살이를 합니다
  • 김은지 기자
  • 호수 400
  • 승인 2015.05.1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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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00명가량의 젊은이가 신념·양심·종교 등의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는다.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자 10명 중 9명이 한국인이다. 병역을 기피하려는 게 아니지만 대체복무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정부는 방관할 뿐이다.
매년 600명의 젊은이가 감옥살이를 합니다
꿈과 미래까지 ‘거부’한 건 아니었는데

5월15일은? ‘스승의 날’은 절반의 정답이다. 1981년부터 지정된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기도 하다. 각자의 양심과 신념 등에 따라 군대에 가지 않는 이들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국에서도 전쟁과 군사주의를 거부한 이들이 2003년부터 5월15일에 모여 자전거 행진을 해왔다. 시민단체 ‘전쟁 없는 세상’과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함께하는 자전거 행진은 올해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여의도 국회까지 달린다.

국제 앰네스티는 5월13일 <평생을 감옥에 살다-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히로카 쇼지 동아시아 조사관이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병역거부자 10명과 그들의 가족, 법률가 등을 만났다(꿈과 미래까지 ‘거부’한 건 아니었는데 참조). 보고서는 한국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 제18조 시민 정치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을 위반했다고 지적한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가 이를 위반했다는 공식 의견을 낸 바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1년 5월15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몸으로 평화(平和)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병무청이 밝힌 지난 5년간 ‘입영 및 집총 거부자(양심적 병역거부자 숫자 문의에 병무청은 입영 및 집총 거부자 통계가 있다고 답했다)’는 △2010년 721명 △2011년 633명 △2012년 590명 △2013년 621명 △2014년 565명이다. 지금까지도 매년 600명가량의 젊은이가 신념·양심·종교 등의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지만,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진부한 이슈 취급만 받고 있는 셈이다.

2006년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살이를 한 박정경수씨(34)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거창한 단어 뒤에 가려진 개개의 삶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우리를 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저버린 개망나니 아니면 강한 신념에 찬 영웅이다. 사실 각자의 삶은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 있다. ‘병역거부자라서 그 사람이 싫어 혹은 대단해’라는 것보다, 각자 신념에 따른 결정을 묵묵히 지지해주는 사회가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전과자나 튀는 사람이라는 사회적 낙인보다 그런 평범한 내심을 지켜주는 사회를 꿈꾼다.”

여기, 매년 쏟아져 나오는 600여 가지 삶이 있다. 이들의 삶을 이어붙이면 국내에서 계속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지난한 싸움 과정을 대략이나마 알 수 있다.

 전과자 아들을 둔 ‘유명인’ 아버지

‘뚜뚜뚜뚜’ 효과음 다음에 나오는 <600만 불의 사나이> 속 스티브 오스틴의 목소리에서 법률 용어가 술술 나온다. “판사가 위헌법률제청을 했으니까, 우리 아들은 헌법소원까지는 안 했고, 그래서 재판이 추정(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재판을 멈춤)되었죠.” 멜 깁슨(<리쎌 웨폰> 시리즈), 해리슨 포드(<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의 목소리 연기를 도맡아 했던 성우 양지운씨(67)는 세 아들이 모두 종교적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다. 뒷바라지하느라 법원을 드나들며 익힌 용어가 이제는 청산유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성우 양지운씨(위)의 세 아들은 종교적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되었다.
육군에서 복무한 양씨는 나이 마흔에 ‘여호와의 증인’ 교인이 되었다. 자식들에게 종교를 강요한 적은 없지만 큰아들은 스무 살이 되던 2000년 영장이 나오자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병역법 개정 전이라, 군에 입대해 집총 거부를 했다. 항명죄로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자기 아들의 문제가 보편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는 지난 15년간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본의 아니게 앞장섰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도 맡았다.

“대중 예술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던 나를 세상이 싸움꾼으로 만들어놓았다(웃음). 죄 없는 아이들이 매년 600명 넘게 감옥에 가는 상황을 방치해도 되나 싶어서 청와대며 법무부 등을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내 양심은 옳고 네 양심은 틀리다’는 게 아니다. ‘다른’ 양심에 대한 존중이다. 나도 가기 싫은데 갔으니 너도 가야 한다기보다는 이미 독일 등이 시행하고 있는 대체복무와 같은 다른 선택의 길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맏아들과 열 살 터울인 둘째 아들이 군대에 갈 즈음이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2007년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도입 검토에 기대가 컸다. “병역 ‘거부’지 ‘기피’가 아니다. 당시 대체복무안으로 ‘소록도 등에서 사회봉사 3년’ 등이 나왔다. 그보다 더한 일로도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는 건데, 정권이 바뀌면서 무산되었다.” 두 번째 실망은 2011년 병역법에 대한 헌법재판소 합헌 결정(7대2)이었다. 헌재는 “병역법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가 제한된다”라는 부분은 인정했다. 하지만 “국가안보 및 병역의무의 형평성 실현은 입법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성의 적합성이 인정된다”라고 밝혔다. 이강국·송두환 재판관만 “양심의 결정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청구인에게 형벌 부과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라며 한정위헌 의견을 냈다.

재판 계류 중이던 둘째 아들은 같은 해 2011년 감옥살이를 시작해야 했다. 양씨의 부인 윤숙경씨(59)는 “교도소로 둘째 면회를 갔더니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셋째만이라도 감옥에 가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마음이 미어졌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스물세 살인 셋째 아들도 재판을 받는 중이다. 올해 1월 전주지법 정읍지원 형사1단독 강동극 판사 등이 또다시 병역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놓은 상태다. 

지난 5월12일에는 8년만의 무죄 판결도 나왔다. 광주지법 형사5단독 최창석 판사는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교인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방의 의무는 전시 전투원뿐 아니라 공익근무, 사회복무 등 대체복무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다. 국방의무 이행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크게 훼손되지 않고도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도 보장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 프랑스 관료가 물었다, “북한 아니고?”

2012년 프랑스 파리, 난민 신청 인터뷰 자리였다. 스물한 살 청년 이예다씨는 “한국에서는 종교, 성적 취향이 아닌 오로지 생명을 해치는 일에 동원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징역을 산다”라고 말하자 프랑스 관료가 되물었다. “북한이 아니고?” 남한 이야기가 맞다는 말에 그들은 놀라워했다. 그 결과, 이씨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 사유만으로 프랑스에서 난민 인정을 받았다.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내놓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2년 기준으로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자 10명 중 9명이 한국인이다. 전체 723명 가운데 한국인이 669명(92.5%), 아르메니아인이 31명, 에리트레아(홍해 서안 아프리카)인이 15명이었다.

 

이예다씨(위)는 한국인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 사유만으로 프랑스에서 난민 인정을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전직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지어준 ‘예수’ ‘붓다’를 합친 이름을 가진 이씨는 중학생 시절 일본 만화가 데쓰카 오사무가 만든 <붓다>의 영향을 깊이 받아 평화와 생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군에 갈 나이가 다가올수록 책에서 보던 이슈가 곧장 자기 이야기가 되었다. 2012년 영장이 나오자, 감옥행 대신 프랑스행을 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심조차 없다는 생각에 감옥행은 ‘좋은 싸움’이 아니라고 여겼다.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야 하는 현실에 대해 국내에 다시 한번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기에 외로운 난민의 길을 택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평범한 권리가 한국에서’는 전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2012년 리스본 조약에 따라 유럽연합 회원국은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the EU Charter of Fundamental Rights)에 병역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했다. EU 기본권 헌장은 구속력 있는 국제법이다. 그는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말 평범한 한국 청년이 단지 병역을 거부했다는 사유만으로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 저는 예비군 훈련을 거부합니다

벌금 1200만원. 8년간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대가였다. 거기에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240시간이 더해졌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가 당시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15조 8항(예비군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아니한 자 등은 1년 이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을 7대2로 합헌이라고 결정한 지 두 달 만에 난 선고였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못하겠다고 선언한 김정식씨(38)의 행동을 국가는 불법이라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예비군 병역거부자인 김정식씨는 입대 후 사격훈련을 하면서 ‘군과 평화주의’에 관한 문제의식이 생겼다.
2002년 육군에 입대해 처음 받은 훈련부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북한군이라도 사람 모양의 마네킹을 향해 사격하라는 명령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결국 영창 갈 각오를 하고 상사에게 총을 들 수 없다고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대 배치를 받고는 수송병이 되었다. 군 복무를 무사히 마쳤지만 ‘군과 평화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졌다.

2005년 첫 예비군 훈련 때 총검술 및 전투 훈련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군대를 가기 전 마음이었으면 요령을 부려 총을 들지 않는 방법을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제대 후 군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 문제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사회운동으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이 민망하다. 자신이 특별히 더 ‘양심적’인 사람도 아닐뿐더러 운동의 전략 차원에서도 괜한 반감만 일으킨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벌금을 완납해 예비군 훈련에서 자유로워졌지만, 헌법재판소를 주시한다. 2013년 수원지방법원 형사12단독 임혜원 판사가 또다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서다. 임 판사는 결정문에서 “양심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이들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인간 존엄과 가치 침해다. 대체복무로 이들을 건전한 국가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면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 김씨가 받았던 벌금 고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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