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은 힘이 있다. 큰 사건 때는 더욱 그렇다. 특별히 검찰은 대통령의 말을 신줏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경향이 있다. 일부 고위 검사들에게 대통령의 말은 종종 헌법보다 상위 개념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은 그대로 수사의 가이드라인이 되기도 한다.

‘정윤회씨 파동’ 때 박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을 ‘지라시’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태에 대해서는 “중요한 사초(史草)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이다”라고 방향을 잡았다. 결국, 검찰 수사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건은 지라시가 되고 말았다. 법원은 정상회의록 초본이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수사 결과를 놓고 보면, 검찰은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받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법무부의 한 고위 인사는 “검찰 수사가 김기춘 전 실장(왼쪽)에게 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

4월16일 남미 순방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의 입에서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전 경남기업 회장) 사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흘러나왔다. “이번 일을 부정부패를 확실하게 뿌리 뽑는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검 마다할 이유 없다”.

‘성완종 게이트’의 핵심은 불법 정치자금 의혹이다. 성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출마했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2012년 대선에서 친박 인사들에게 돈을 건넸다고 했다. 성완종 메모에는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3명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친박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대통령과 가장 먼 위치에 있을 정도였다. 불법 대선자금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검찰의 주된 임무였다.

그런데 대선자금 문제의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남의 일 이야기하듯 선을 그었다. 평소 대통령의 의중을 잘 헤아려왔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 의해서 ‘가이드라인’은 구체화된다. “성완종 리스트에 국한해 수사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리스트대로 수사하자면 정권에 칼을 겨눠야 하는데 검찰이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 아니다. 야권을 동시에 털어서 균형을 잡겠다는 게 검찰의 생각이다.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성 전 회장을 부패한 기업인으로 몰고 가서 ‘정치인들이 원래 더럽지’ 하는 식으로 정리하는 수순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한 고위 인사는 “성완종은 새누리당 의원이다. 민주당에 돈을 줄 이유가 별로 없지만 회사가 로비로 산 기업이어서 조금은 주었을 것이다. 성 전 회장과 관련된 정치권 인사 200여 명의 뒤를 캐고 있다”라고 말했다.

‘리스트’보다 특별사면이 중요하다?

이완구 총리에게 맹렬하게 향하던 여론의 불길은 사퇴를 기점으로 잠잠해졌다. 그러는 사이 검찰은 불법자금 수사가 아닌 성 전 의원 측근들의 증거 인멸 의혹에 매달리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성완종 전 의원의 가족들 집과 사무실 등 10여 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성 전 의원의 비서 이용기 경남기업 팀장을 긴급체포하고, 박준호 전 상무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상무는 회사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끄고,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황교안 장관(오른쪽)은 특별사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위는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 김기춘 전 실장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

검찰은 경남기업의 금고지기였던 한장섭 부사장을 주목한다. 한 부사장은 성 전 의원의 자금 관리를 담당하면서 비자금 내역서를 만들었다고 지목된 인물이다. 한 부사장은 회사 관계자들에게 “이 USB(이동식 저장장치) 하나면 회사가 날아간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실제 이 USB에는 로비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검찰의 한 수사 관계자는 “재무를 담당하던 한 부사장이 불법 자금 수사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성 전 의원이 죽은 상황에서 한 부사장의 입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이번 수사의 결정적인 향방을 가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한 부사장의 재산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중이다. 충북 충주에 있는 한 부사장의 누나와 매형 명의로 된 ㄴ빌딩을 차명 재산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성 전 의원의 측근들을 매섭게 몰아붙이는 사이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말을 바꾸거나 입을 닫고 있다. 유지를 받들겠다던 성 전 의원의 동생들과 아들도 조용하기만 하다. 증거들도 사라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로비 리스트와 관련해 성 전 의원 주변의 입을 막은 꼴이 됐다. 검찰의 다른 수사 관계자는 “경남기업은 정치권 로비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김 아무개가 만든 접대 보고서를 보면 자원사업을 벌이기 위해 외국 정부 인사들을 접대하려고 박정희 대통령 때 에티오피아 대통령 접대했던 내용을 정리해놓기도 했다. 성 전 회장 스타일로 볼 때 로비 장부는 분명히 있는데 드러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불법 자금 리스트 수사가 지지부진한 데 비해 특별사면 논란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성완종 전 의원의 사면은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이명박계 핵심이었던 정두언 의원은 4월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이명박계) 핵심 인사가 성 전 회장의 사면과 공천까지 특별히 챙겼다. 한 번은 핵심 인사가 찾아와 ‘(공천을 달라는) 성완종을 어떻게 주저앉혀야 하느냐’며 하소연하기도 했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은 중요치 않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과 김무성 대표가 주도해서 ‘문재인 책임론’으로 몰아가고 있다. 본질을 흐리는 여권의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그런데 언론과 검찰을 등에 업은 물타기는 효과를 보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특별사면을 두 번 받은 사례 자체가 많지 않다. 다소 이례적인 사면에 대해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라고 논란을 키우고 있다. 법무부가 어떤 절차를 통해 사면을 내렸는지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이 과정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만 있다.

한 대검의 관계자는 “어차피 특검으로 갈 사안이어서 검찰은 성완종 수사를 트집 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있다. 증거나 정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법무부의 한 고위 인사는 사견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대선자금 수사와 사면 건은 정치적으로 풀릴 것이다. 다만 이완구와 홍준표는 검찰 수사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가 이병기 현 비서실장은 물론이고 김기춘 전 실장에게도 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법보다 윗선의 의중이 검찰에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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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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